어느 날 페르시아의 왕이 신하들에게 마음이 슬플 때는 기쁘게 기쁠 때는 슬프게 만드는 물건을 가져올 것을 명령했다. BR 신하들은 밤새 모여앉아 토론한 끝에 마침내 반지 하나를 왕에게 바쳤다. 왕은 반지에 적힌
어느 날 페르시아의 왕이 신하들에게
마음이 슬플 때는 기쁘게
기쁠 때는 슬프게 만드는 물건을
가져올 것을 명령했다.
신하들은 밤새 모여앉아 토론한 끝에
마침내 반지 하나를 왕에게 바쳤다.
왕은 반지에 적힌 글귀를 읽고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만족해 했다.
반지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 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다만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그대에게 미소 짓고 기쁨과 환희로 가득할 때
근심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
세속적인 것들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이 진실을 조용히 가슴에 새기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안녕하세요? 설은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저는 설 연휴 마지막 날 야근으로, 지금 국제부 사무실에 앉아 있습니다. 연휴 첫날 당직 근무에 마지막 날 야근이라니, 정말 연휴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습니다.
위의 글은 박정자 씨가 출연하는 연극 ‘19 그리고 80’에서 만난 것입니다. 프로그램에는 ‘랜터 윌슨 스미스’라는 사람이 쓴 글로 나와 있는데, 류시화 씨의 책 ‘사랑하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에도 수록돼 있다는군요. 유대교의 문헌 미드라시에 있는 일화라고도 하고요.
19살
소년과 80살 할머니의 사랑?
‘19 그리고 80’이라는 제목은 주인공의 나이입니다. 이 작품은 19살의 소년 해롤드와 80살의 할머니 모드가 펼쳐나가는삶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심심하면 자살을 시도하고,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에 가는 것이 취미인 19살 소년 해롤드. 무채색이었던 그의 삶은 어느 장례식에서 괴짜 할머니 모드를 만난 뒤로 다른 색깔을 띠게 됩니다.
모드는 젊은이 못지않은 활력과, 자신을 둘러싼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넘치는,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때로는 사람들을 옥죄는 규범과 도덕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깨우친 자’이기도 합니다. 눈부신 ??음 한 가운데서 죽음을 꿈꾸던 해롤드에게, 죽음 가까이 있지만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모드는, 그 자체로 경이로운 해답이었습니다.
이 연극을 단순히 ‘19살 소년과 80살 할머니의 사랑 이야기’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나무’에 관해 이야기하고, 나무를 새로 심고, 나무에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보는 모드는 ‘생명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삶과 죽음, 사랑의 의미를 묻는 이 연극의 메시지는 꽤나 묵직합니다. 하지만 연극을 보는 일은 굉장히 유쾌한 체험입니다. 귀여운 할머니 모드의 저 좌충우돌이라니. 저는 참 많이 웃었습니다. (특히 모드의 발명품 ‘냄새 기계’는 정말 기막힙니다. 이런 거 하나 진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삶
속에 녹아든 지혜의 언어들
모드의 대사는 이른바 ‘선’의 느낌이 물씬한 ‘경구’와 ‘금언’ ‘일화’로 가득합니다. 작가인 콜린 히긴스는 아마 동양 사상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나 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기 시작한다’, ‘인생은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게 물건’, ‘이제 사랑을 모르는 다른 이들을 더욱 사랑하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간이 되는 것을 두렵게 느끼지 않는 것이다’........
이런 대사들은 자칫하면 어색하기 쉽지만, 박정자 씨의 원숙한 연기 덕분에 ‘삶 속에 녹아든 지혜의 언어‘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이런 대사들 중에 가장 마음에 남은 것이 바로 ’이것 또한 언젠가는 지나간 일이 되고 말리라.‘이었습니다. 저는 이 말 자체를 처음 접한 것은 아니었지만, 삶의 근원적 지혜를 체득한 할머니 모드의 음성으로 생생하게 들으니, 새삼 곱씹어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름답게
나이 들기'를 꿈꾸며
저는 박정자 씨가 ‘19 그리고 80’에 처음 출연했던 2003년 1월, 공연 전에 열린 기자 간담회에 다녀와서 이 연극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갑자기 정치부로 발령받는 바람에, 이 연극을 실제로 볼 기회를 놓쳤었습니다. 결국 3년이 지나서야 이 작품을 실제로 보게 된 셈입니다. 그 때도 봤더라면 비교해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앞서 두 차례 공연의 파트너였던 이종혁, 김영민 씨에 이어 윤태웅 씨가 해롤드로 무대에 섰습니다. 윤태웅 씨는 88 올림픽 개막식에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굴렁쇠 소년’입니다. 그 때 그 소년이 이렇게 훤칠한 청년이 됐다니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됩니다. 아직 대사와 동선 처리가 어색한 부분이 많지만, 첫 출연작이라니, 미래를 기대해 봅니다.
박정자 씨는 2003년 이 작품에 처음 출연할 당시, 매년 이 작품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었습니다. 자신의 나이가 실제로 80이 될 때까지요. 60대 중반인 박정자 씨는 자신의 소망을 차근차근 실현시켜 가는 중입니다. 이번 공연은 2003년과 2004년에 이어 세 번째로 올려졌으니까요.
박정자 씨는 인터뷰에서 항상 ‘언제나 신인이며, 언제나 초연이다’라는 마음을 갖는다며, 그 마음에 자신이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언제나 초연인 듯 뜨거운 열정으로 만들어내는 박정자 씨의 ‘필생의 역작’인 셈입니다. '아름답게 나이 들기'를 꿈꾸게 하는 이 작품을 저는 이번에 처음 봤지만,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아마 제가 나이를 먹는 만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대사도, 또 다른 무게로 저에게 다가올 터이지요.
한 살 더 먹은 새해, 모두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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