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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노트르담 드 파리'

김수현

입력 : 2006.01.19 13:11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다시 봤습니다. 세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저보다 훨씬 여러 번 보신 분들도 많겠지만, 각각의 만남이 제게 준 인상이 조금씩 달랐기에, 세 번째 만남의 감흥이 식기 전에 적어봤습니다. BR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다시 봤습니다.

세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저보다 훨씬 여러 번 보신 분들도 많겠지만,

각각의 만남이 제게 준 인상이 조금씩 달랐기에,

세 번째 만남의 감흥이 식기 전에 적어봤습니다.


첫 만남-음악이 압권


2001년 가을, 파리 모가도르 극장에서 '노트르담 드 파리'를 처음 봤습니다.

유럽에서 엄청난 인기를 끈 뮤지컬이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출장길에 어렵게 시간을 냈었죠.


하지만 '그나마' 친숙한 영어도 아니고 프랑스어로 진행되는 뮤지컬이라,

관람하는 내내 답답했습니다. 몇몇 단어 외에는 알아듣는 말이 없으니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만 들어도 잊을 수 없는 감미로운 노래들은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작품이 시작되자마자 나오는 '대성당의 노래'는,

금방 따라서 흥얼거리고 싶어질 정도였습니다.

대사 없이 노래만으로 이어지는 공연은 마치 콘서트 같았습니다.

프랑스어가 정말 음악적인 언어라는 생각도 다시 하게 됐고요.


다른 뮤지컬들에서는 배우들이 노래와 춤을 같이 하는 것과는 달리,

노래하는 배우들과 춤추는 무용수를 분리한 것도 독특했습니다.

무용수들의 역동적인 움직임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시대는 15세기말이지만, 무대나 의상은 현대적이고 상징적이었습니다.


커튼 콜 때 관객들이 입을 모아 뮤지컬 넘버를 함께 부르는 광경을 보면서,

이거 정말 프랑스 국민 뮤지컬이구나, 실감했었습니다.


두 번째 만남-'문학'이 보였다


'노트르담 드 파리'가 서울에서 공연된다는 얘기를 처음 들은 게 재작년입니다.

저는 공연계 사람들과 이 작품에 대해 얘기하면서

'좋은 작품이고, 특히 음악이 뛰어난데,우리가 통상 접해오던 뮤지컬들과는 많이 달라서,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고 했었습니다.


지난해 2월, 서울에서 올려진 공연을 보니, 이건 첫 만남 때하고는 느낌이 또 달랐습니다.

이번에는 한글 자막을 읽으며 내용을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만남에서 '음악'에 가장 끌렸다면, 이번에는 '문학'이 보였다고나 할까요.


물론 처음 볼 때도 작품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알고 있었지만,

가사 하나하나를 파악하며보는 것과는 천지 차이였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인물 하나하나가 명료하게 부각됐습니다.

극이 시작되자마자 저를 사로잡았던 서곡 '대성당의 시대'를 부르는 사람이,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이

첫 만남 때와는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었죠,.


사실 프랑스에서 볼 때 저를 가장 헷갈리게 했던 인물이 바로 그랭그와르였습니다.

'나레이터' 같은 역할을 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중간중간 또 극의 진행에'개입'하는 것도 같은데,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었습니다.

원작 소설을 읽었더라면 조금은짐작했을 터인데,

불행히도 제가 어릴 때 읽었던 '노틀담의 꼽추'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축약판이었는지, 그랭그와르라는 인물은 ‘생략’돼 있었습니다.


서울 공연에서새롭게 만난 음유시인 그랭그와르는,

'대성당의 시대'가 끝나가던 때, 변화하는 사회와 역사를 지켜보고 증언하는,

때로는 이 변화에 동참하기도 하는'예술가'였습니다.

빅토르 위고가 생각한 예술가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랭그와르와 프롤로가 함께 부르는 노래, '플로렌스'는,

신 중심 시대에서 인간 중심 시대로 옮겨가는 당시의 변화상을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노래 가사는, 비록 번역된 것으로 접했으나, 큰 감동으로 제 가슴을 쳤습니다.

콰지모도와 푀뷔스, 프롤로가

에스메랄다에 대한 사랑을 각각 토로하는 노래 ‘아름답도다’의 가사 중

“내 눈은 에스메랄다의 치마를 만지고 있는데, 기도가 무슨 소용 있습니까. 노트르담이여!‘

같은 절규들이 그랬습니다.

가사와 대본을 쓴 뤽 플라몽동은 빅토르 위고의 원작이 갖고 있는 예술적 향기를

노래 속에 제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습니다.


세 번째 만남-춤이 다가왔다


'노트르담 드 파리'가 국내 초연 1년 만에 다시 서울에 왔습니다.

지난해 공연에서 엄청난 호응을 얻은 덕분입니다.

처음 프랑스 뮤지컬을 접한 관객들의 반응이 뜨거웠을 뿐 아니라

언론과 평단도 이구동성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공연을 다시 보기 위해 해외 원정까지도 불사하는 열성 팬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이 작품을 아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버린

프랑스 제작사가 제대로 장사를 하려고 작정했는지,

앙코르 공연에서는 더 높은 개런티를 요구했나 봅니다.

65억 가까운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관람료는 VIP석 20만원, R석 15만원 등으로 책정됐습니다.

아무리 해외 배우들의 내한공연이라 해도,

녹음 반주로 진행되는 공연으로서는 비싸게 느껴졌습니다.)

1년만에 다시 만난 ‘노트르담 드 파리’.

음악의 힘은 여전했습니다. 이제 모든 노래들이 다 '멜로디는 아는' 노래들이었습니다.

프랑스어 가사만 알았다면 몇몇 노래들은따라 부를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지직거리고, 웅웅 울리는 음향 문제만 아니었다면, 아마 더 큰 감흥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예전과 비교한다면, 춤이 많이 보였습니다.

흔히 이 뮤지컬을 '대사 없이 음악만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작품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춤도 극의 진행과 심리 묘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서운하겠다고 느꼈습니다.


발레와 현대무용, 아크로바틱과 브레이크 댄스를 오가는

안무는 파격적이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무용수들은매트, 움직이는바리케이드 등의 도구를 사용해,

역동적인 움직임을 연출했습니다.

마치 곡예 같은 아찔한 고난도 동작도 너무나 쉽게 해냈습니다.


그들은 때로는 벽을 종횡무진 가로지르고,

때로는 천장에서 거대한 종과 함께내려왔고,

쉼없이 뛰어다니고, 구르고, 매달렸습니다.


그들은집시들이었고, 거리의 부랑자들이었고, 군인이었고,성난 군중이었습니다.


푀뷔스가 에스메랄다와 자신의 약혼녀 사이에서 방황할 때,

엷은 막 뒤편, 핀 조명으로 비춰지는 무용수들의 현란한 움직임을 보면서

저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푀뷔스의 노래도 노래지만, 어지럽고 현란하고 때로는 뒤틀리는 듯한 이 동작들은

그의 심리를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용수들의 '몸'은 정말이지, 아름다웠습니다.


안무를 맡은 마르티노 뮐러가 NDT,네덜란드 댄스 시어터출신이며,

리옹 국립 오페라단,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등 유수 단체에서 활동했다는 사실도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그 유명한 NDT의 지리 킬리안('이리 킬리안'이 맞는 발음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리 킬리안'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므로 이렇게 씁니다)에게 발탁돼

활동했던 안무가라는 것이죠.


(**'지리 킬리안'에 대해 더 아시고 싶은 분들은 좀 지난 글이고, 길긴 하지만,

2002년에 제가 지리 킬리안을 만나고 썼던 칼럼을 참고하시길->.

https://news.sbs.co.kr/sbsnews_NewsDetail.jhtml?news_id=N0311307154)


어제 공연장에서 만난한 무용가는,

이 작품의 안무가 요즘 현대 무용의 '퓨전' 추세를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또 무용수들의 기량도 '환상적'이라며 감탄했습니다.

무용수 중 한 명은 한국에서 열렸던 국제무용 콩쿠르에서

상을 받았던 사람이라며, 반가워했습니다.

프로그램에 무용수들은 자세한 약력 없이 이름만 쓰여 있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좋은 예술작품은 '여러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노트르담 드 파리'를 다시 보게 된다면,

아마 저는 또 다른 얼굴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다시 뵙겠습니다. 건강하세요.

**노트르담 드 파리 출연 배우들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서,

블로그 https://ublog.sbs.co.kr/shkim0423에 올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