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40대 기수론을 생각한다
- 우리의 의무는 말이 아닌 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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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과 가을은 무척 힘든 시기였다. 우리
당이 모처럼 의욕적으로 나섰던 양극화해소를 위한 민생탐방과 그 성과의 정책화 노력은 대통령의 대연정론 한 방에 어이없이 나가떨어져 버렸다.
그런가 하면 추락하는 당의 지지도에 불안감을 느낀 사람들의 민주당 합당론 역시 계속해서 제기되었다. 연이은 패배로 백척간두에 선 부대에서
자기들끼리는 아무리 분발해봐야 못산다고 결론짓고 대장은 한나라당과, 부하들 일부는 민주당과 합쳐야 산다고 주장하고 나선 격이니 이건 누가
보더라도 안되는 집안이었다. 입장을 바꿔 내가 유권자라고 하더라도 이런 우스운 모습의 정당을 계속 지지한다는 것은 원초적인 애정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는가? 그것은 우리당조차 구성원들의 공유된 정치철학에 의해 창조된
정당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당 당시의 깃발은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당구조 해체였다. 지역주의 정치는 기존 정치의 현상과 본질을 설명하는 규정
원리였고, 정치의 건강한 발전, 합리적 정책 경쟁을 가로막는 결정적 장애물이었다. 그 부작용이 너무 극심했기에 지역주의에의 도전은 2003년의
시점에서 다른 어떤 문제보다 중차대한 과제로 인식되었고, 우리당 창당의 주역들은 기꺼이 그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였다. 그 결과가 열린우리당의
창당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한가지 지점에서 보다 중요한 숙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이륙하였다.
그것은 열린우리당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목표의 공유였다. 지역주의 해소라는 극히 당위적이고 오랜 노력을 요하는 과제 이외에 국민들이 특히 국가 경영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문제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 공유가 부족하였다.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과 발전 모델은 어떻게 설정하고, 남북 관계의 경제, 정치적 제
요소에 대한 입장은 무엇이며,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우리의 수용은 어디까지가 한계인가? 날로 심화되는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라는 구조적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불과 2년 전이었는데도 우리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정면 승부를 ‘새로운 정치’라는 말로
얼버무린 채 뒤로 미루어 버렸다.
이는 불과 원내 47석의 소수 여당으로서 거대 야당에 도전하는 승부 호흡으로는 괜찮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지역주의에 기반한 골리앗의 이미지였으므로 우리는 그들의 구태와 오만을 고발하면 그뿐이었다. 그들은 실제로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었고, 국민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도장을 찍어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의 출현은 호남과 영남,
그리고 전국의 유권자 모두에게 대안의 선택이 될 수 있는 심각한 도전이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탄핵 후폭풍의 큰 물결로 재작년
총선에서 우리당은 일약 과반수가 넘는 거대 여당이 되었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쉽게 승리에 취하고, 너무 쉽게 패배주의에
휩싸인다는 것이다. 총선 승리 이후 우리당은 뒤늦게라도 미루어놓았던 국가경영 비젼과 국정 중심세력으로서의 시스템을 갖추는데 우선 주력해야
했었다. 하지만 승리에 도취된 우리는 먼저 할 일을 소홀히 한 채 시류의 바다를 표류하기 시작하였다. 당의 중심 노선과 정책을 확정하는 문제는
참으로 어려운 과제이지만, 그러나 이 복잡다기하고 천변만화하는 현실 속에서 당의 중심노선도 없이 국민의 지지를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정당은
있을 수 없다. 있다면 철권통치의 수단으로 기능하는 독재적 정당들이거나 강력한 차기대권 후보, 혹은 지역맹주가 몰표를 몰아오는 지역주의
정당들밖에 없다.
과거사 문제 관련 입법 등은 분명 민족정기와 역사적 정의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개혁작업이었지만 지금 당장의 삶의
고달픔을 해결해 주기 바라는 민중들의 입장에서는 옳긴 하지만 한가한 이야기일 수 있다. 요는 그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열린우리당이
국회다수당이고 여당인 바에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당은 국민들의 고달픈 삶에 대한 도움도 실감나게 주지 못했고, 참고 기다리면 밝은 미래가
온다는 꿈과 희망도 제시하지 못했다.
이같은 목표 제시의 실패는 국민들에게뿐 아니라 우리 당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우리당은 대통령부터 의원들을 거쳐 일선 당원들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일의 우선 순위에 대한 생각이 제각각이었다. 우리당 위기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더 큰 문제는 항간의 보통 국민들까지도 우리당의 문제가 바로 이런 것들이라고 정확하게 알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인 우리당 의원과 당원들은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대연정론과 합당론은 이러한 혼란을 책임있게 정리하지 못하고 패배주의적 발상으로 문제를 더 확대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국면에서 신40대 기수론의 정치적 의미를 확인한다. 내가 분석한 열린우리당의 위기는 결국
우리가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낡은 정치 패러다임의 산물이다. 정치가 철학과 노선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물과 지역 고정표들에 의해
움직여진다는 불변의 신앙이 아직도 살아있는 셈이다. 우리 스스로가 거기에 도전했으면서도 여전히 그 낡은 교리와 산법(算法)에 의지해 타개책을
찾는 자가당착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아직 새로운 진리에 대한 믿음이, 신앙이 약한 것이다.
이 새로운
진리에 대한 믿음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무기가 바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국가발전의 청사진이고, 그 구체적 실천 방안이다. 이는 이번
열린우리당의 전당대회에서 40대의 도전자들이 길을 닦아야 할 일이기도 하다. 우리당의 발전과 국가발전의 비젼을 놓고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고,
도전해야 한다. 이제 우리도 외국의 정당들처럼 전당대회가 단순히 인물경쟁만이 아니라 당의 노선 정리를 위한 공간이 되기도 해야 한다. 후보들
간에 경제문제, 분배문제, 남북관계, 대미외교 등 예민한 이슈들에 대한 토론이 뜨겁게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누구라도 빛좋은 개살구같은
구두선이 아니라 구체적 청사진과 실시설계도를 제시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만들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 그 모범을 보여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열린우리당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 정당인지를 국민들에게 명확하게 전달하고 그 목표를 일관되게 실천할 때 우리당의 부활은
결정적인 것이 될 것이다. 다행히 지난 12월 국회에서 우리당은 몇 가지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다. 사립학교법과 부동산대책 입법, 복지예산안 등의
통과가 그것이다. 이로써 우리당의 정체성이 막연한 것이 아닌 실체로서 국민들에게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우리당이 추구하는
국가발전 모델의 총체적 목표와 그 실현 가능한 경로에 대한 제시이다. 이것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가건물을 짓고 다음 대통령후보 전당대회에서
완성되어야 한다.
아울러 향후 정치 과정에서 당의 확고한 자주성과 정치 주도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당은 대통령의
부속물이거나 거수기여서는 아니 된다. 당의 노선에 걸맞는 통치행위는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고, 반대로 위배될 때는 비판과 견제가 따라야 한다. 그럴
때 우리당은 5년짜리 정당의 운명을 면하고 백년정당의 초석을 닦을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동지적 협력자의 위상을 분명히 할 때, 당에
대한 정치적 무시나 당의 중심노선에 대한 부정도 쉽게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은 특히 당장의 대권 주자들이 이런저런 고려 때문에 쉽사리
제기하지 못하는 문제이다. 또한 나이 드신 중진들이 여권 전체의 운명에 대한 걱정 때문에 본질을 놓치고 현상적 안정성을 선택하기 십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으로나, 선진국 정당들의 모델을 보아도 집권자에 대한 자주성은 젊은 신진들이 온 몸으로
밀고 나가야 할 당의 사활적 생존 관건이다. 이런 식으로 당내 정치, 정책 노선의 정립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한국 정치의 신기원을 여는
역사이다. 적어도 다음 전당대회까지는 그 노선이 당을 지배하는 지침이 되고, 내부 비판자들에도 불구하고 그 지침은 규율적으로 실행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열린우리당의 지지기반도 확고히 안정화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면 한나라당도 언젠가는 경쟁적으로 안 따라 올 수가 없을 것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자신의 정책노선을 분명한 형태로 정립한 연후, 국회 내에서 합리적으로 토론하고 의결하는 현대정당의 모습으로
탈바꿈시키는 역사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 역사적인 작업에 40대 초재선 그룹들이 앞장서야 한다. 40대의 큰 장점은 어느 정도 정치적,
사회적으로 훈련이 되었으면서도 구태정치의 벽에 도전할 수 있는 젊음의 에너지를 보유한 세대라는 점이다. 우리들은 국민들의 새로운 정치 희구의
산물인 다수 젊은 의원들의 건강한 총의를 모아서, 그리고 전체 유권자의 70%를 차지하는 40대층 이하와 정치의 선진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을
대변하여 우리 정당과 국회를 지배하는 사이비 교리들을 추방하고 현대적 정치를 확립해야 한다.
나는 지난 과정을 돌이켜 평가해
보면서 40대 정치인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대로 중간허리 역할에만 자족한다면 우리가 바라는 정당의 모습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허리는 허리일 뿐 방향을 결정할 수는 없다. 어떤 영역이든 발전적 도약은 새로운 비전과 실행계획으로 무장한 신진세력들이 등장해서 기존의 사고와
실행체계를 가진 세력과 치열한 경쟁에 나설 때 가능한 일이다.
지금 열린우리당은 한국 정치의 발전과 퇴보를 가름할 분수령 위에 서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정치인들이 시간은 내 편입네 하며 장막 뒤에서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무대 위로 올라가서 다가오는
시대를 예언하고 스스로 그 길을 닦는 노력에 앞장서야 한다. 열린우리당의 젊은 정치인들조차 나이와 선수의 위계질서에 억눌린 채 솟구쳐 오르는
젊은 세대의 정치적 요구를 대변하는 데 실패한다면 우리 정치는 총체적 부정의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다수 젊은 세대, 그리고 건강한 국민들이 지향하는 정치는 개혁적 발전과 통합의 정치이다. 사고의 좌, 우는 존재하지만 그 차이가 적대적이고
사활적이지 않다. 그들은 국가발전과 사회 통합을 위해 제대로 된 논리로 서로 경쟁하는 정치를 원한다. 합리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건강하게
토론하고 경쟁하고 승복하는 정치, 지금의 젊은 정치인들이 꿈에도 소망하는 모습이 아니던가? 정치적 교리는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 선도와 추돌의
노력이 필요하며 여기에 신 40대 기수론의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