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문명기 5권BR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BR(At of Mosaic and G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BR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2.이탈리아 1,2,3)로마(Rome) 1,2,3 4,5,6,7)바티칸(Vatican) 8,9,10,11)오스티아(Ostia)
--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2.이탈리아
1,2,3)로마(Rome) 1,2,3
4,5,6,7)바티칸(Vatican)
8,9,10,11)오스티아(Ostia)1,2,3,4
12)폼페이(Pompeii)
13,14)에르콜라노(Ercolano)1,2
15,16,17,18, 19, 20,21,22, 23,24,25)나폴리(Napoli)1,2,3,4,5,6,7,8,9,10,11
26,27, 28,29)팔레르모(Palermo) 1, 2, 3, 4--오늘 이야기
30,31,32,33,34,35,36,37,38,39)피아짜 아르메리나(Piazza Armerina)--오늘 이야기
32)피아짜 아르메리나 (Piazza Armerina) 3
◆2. 목욕탕 실내 체육관(Palestra)
이어 전차경기 장면을 묘사한 모자이크의 방이 나타난다. 이 곳은 목욕탕의 실내 체육관 자리였다. 로마시대에는 목욕탕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근육운동을 하는 게 관례였다. 근육운동을 위해 목욕탕 야외나 실내에 체력 단련장(팔레스트라, Palestra)을 마련했다. 카잘레 빌라의 팔레스트라 바닥에 그려진 전차 경기장은 수도 로마의 키르쿠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키르쿠스 막시무스에서 펼쳐지고 있는 콰드리가(Quadriga, 말 4마리가 끄는 경주) 경주를 묘사했다. 이 기회에 로마제국 대중문화의 꽃으로 불리던 전차 경기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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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경주를 벌이고 있는 경기장의 왼쪽 모습--가운데 중앙분리대가 보이고, 그 앞뒤로 전차가 달린다. 왼쪽 트랙 끝이 보인다.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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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경주를 벌이고 있는 경기장의 가운데 모습--가운데 중앙분리대. 4대의 전차. 오벨리스크, 나팔수등이 보인다.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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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경주를 벌이고 있는 경기장의 오른쪽 모습--중앙분리대 오른쪽으로 트랙의 우측 끝이 자리한다.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로마 사회에 처음 전차경기가 등장한 것은 B.C 6c 무렵. 전차 경주장 히포드롬( Hipodrome, 혹은 키르쿠스 Circus)의 대명사인 키르쿠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가 들어선 것은 B.C 5c경이다. 팔라티노 언덕과 반대편 아벤티노 언덕 사이 계곡이다. 나무로 만들었던 키르쿠스 막시무스는 1c 로마 4대 클라우디우스 황제 시절 대리석으로 재건축됐다. 2c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이를 초대형 건축물로 증축했다. 키르쿠스 막시무스의 크기는? 길이 600m, 너비 100m다. 카잘레 빌라 팔레스트라에서 보는 모자이크는 이 어마어마한 경기장을 옮겨 놓은 것이다. 키르쿠스 막시무스는 25만명에서 최대 38만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로마에 키르쿠스 막시무스만 있었던 게 아니다. 모두 5개의 전차경기장이 있었다. 요즘 서울과 비교해 보면. 키르쿠스 막시무스는 상암의 월드컵 경기장. 동대문이나 잠실의 축구장은 로마의 나머지 전차 경기장에 견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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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와 기수--4마리 말이 끄는 콰드리가 경기다.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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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4마리의 말.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전차경기의 종류는 3가지다. 전차를 끄는 말의 숫자에 따라 2두 전차 비가(Bigae), 3두 전차 트리가(Trigae), 4두 전차 콰드리가(Quadrigae). 보통 4두 전차 경기가 널리 선호됐다. 경기장에선 최대 12대의 전차가 동시에 달릴 수 있었다. 경기를 주선한 집정관이나 황제가 흰 수건을 흔들면 출발이다. 전차는 경기장 한가운데 설치된 길이 344m의 중앙 분리대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았다. 7바퀴를 돌아 승부를 가렸다. 중앙 분리대 위에는 돌로 만든 7개의 달걀과 돌고래 모양 조각이 있었다. 전차가 한 바퀴 돌 때마다 돌고래가 움직였다. 중앙 분리대는 관중석으로도 이용됐다. 타원형의 경기장에서 관중들은 어느 한쪽 스탠드에 앉을 경우 중앙 분리대 반대편을 달리는 전차를 볼 수 없다. 따라서, 분리대 위에 올라가 이쪽저쪽으로 옮겨 다니며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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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전차경기 기수(騎手)는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최고의 선수들이었다. 기수들은 팀에 소속돼 있었다. 쉽게 프로축구 구단이 여럿 있고, 이 가운데 박주영은 서울 FC 선수이듯이... 옥타비아누스 황제이후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로마(Rome)에는 4개 팀이 존재했다. 각 팀은 고유의 유니폼 색을 가졌다. 요즘도 한국 축구팀은 붉은색, 이탈리아는 하늘색, 영국은 흰색, 프랑스는 푸른색으로 자국을 대표하듯이... 유니폼 색깔의 전통은 이렇게 유구하다. 로마에서는 흰색 알바타(Albata), 붉은색 루사타(Russata), 푸른색 베네타(Veneta), 녹색 프라시나(Prassina)팀으로 나뉘었다. 각 팀은 때로 정치색을 띠기도 했다. 녹색 유니폼의 프라시나팀은 아프로디테 신에게 바쳐졌으며 황제와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다. 서민팀이다. 푸른색 베네타팀은 포세이돈에게 바쳐졌는데 상원과 귀족을 대표했다. 부자팀. 흰색 알바타팀은 최고신 제우스신에게 헌정됐다. 정치적인 반대세력을 나타냈다. 전쟁의 신 아레스에게 바쳐진 붉은색 루사타팀도 반대세력의 지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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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로마의 키루쿠스 막시무스 관중석 너머 카피톨리나 언덕에 설치한 신전 3곳의 모습도 보인다. 제우스, 헤라, 아테나를 기리던 신전으로 이후 제국내 각 도시에는 이를 본따 3신전을 만들고 카피톨리움이라 불렀다.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기수는 말을 관리하는 마부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요즘 카레이스의 정비사에 해당한다. 황제이자 너무 많은 직업을 갖고 있던 예술가 네로는 마부역을 맡았다. 전차경기는 무척 위험했다. 영화 '벤허'에서 로마 호민관 메살라(벤허의 어릴적 친구)가 사망하는 사건처럼 전차가 뒤집힐 경우 목숨을 잃기도 했다. 위험부담이 커서 그랬나, 전차기수들은 최고의 인기스타였다. 전차 경기는 황제나 집정관, 총독등이 취임축하로 돈을 대 치러지는 경우가 많았다. 관중들이 전차경기에 열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박진감 넘치는 경주 외에 한가지가 더 있었다. 도박이다. 무료로 입장하는 관중들은 입장하기 전에 전차와 말의 상태등을 점검해 돈을 걸었다. 요즘도 경마장에서 목격하는 풍경이다. 스포츠와 도박은 백지 한장 차이인지... 사람 사는 모습이 동서고금에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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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벨리스크와 나팔수--전차 경기장에는 오벨리스크를 세웠다. 일종의 기념물로 이집트에서 가져왔다. 대형 건물 지어놓고, 거대한 기념조각 세워 놓는 요즘 방식도 로마시대에 기원을 둔다. 로마 키르쿠스 막시무스에 세운 오벨리스크는 B.C 천 2백년 람세스 2세가 만든 것을 B.C 10년 옥타비아누스가 이집트에서 가져왔다.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전차 경주장에 오벨리스크가 서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문명의 산물인데... 어찌된 일일까? 황제의 권위다. 옥타비아누스 황제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멸망시킨 뒤 람세스 2세 오벨리스크(지금은 로마의 포폴로 광장에 있음)를 가져다 세워 놓은 게 기원이다. 357년 콘스탄티우스 2세도 투트모스 3세 오벨리스크(B.C 1490년 만들어졌고, 지금은 로마 라테라노의 산 지오반니 광장에 있음)를 가져다 키르쿠스 막시무스에 세웠다. 이스탄불에 있는 오벨리스크도 이때 콘스탄티우스 2세가 가져온 것이다. 레바논의 티레, 요르단의 제라쉬 전차 경주장은 많이 무너졌지만, 그래도 전차경주장의 위용을 볼 수 있는 전체 틀이 비교적 남아 있어 탐방객을 로마시대로 데려가 준다.
◆3. 화장실(Latrine)
화장실(Latrine)도 실내 체육관 옆으로 남아 있다. 여러 명이 칸막이 없이 동시에 앉아서 사용하던 로마 화장실은 수세식이었다. 용변을 본 뒤 나무에 매단 스펀지에 물을 적셔 닦았다. 사용한 스펀지 막대는 잘 씻어 걸어둬, 다음 사람이 다시 이용하도록 했다. 화장지가 없던 시절 얘긴데. 훗날 이슬람권에서는 손에 물을 묻혀 닦고, 요즘은 비데란 것이 물을 뿜어 닦아 낸다. 화장실 바닥은 난방이 됐으며 모자이크를 설치해 운치있는 예술적 감각을 살렸다. 지금은 쓸쓸하게 흔적만 남았지만, 예술품을 바라보며 볼일 본 로마인들의 생활상이 색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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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실네 체육관에 붙은 목욕탕 화장실 모자이크다. 오른쪽에 10여명이 앉을수 있는 변기의 일부가 보인다. 조롱박같은 구멍에 1명씩 앉아 일을 본다. 각종 짐승이 오가는 모습을 새겼다. 오물은 위쪽으로 보이는 통로를 따라 하수도로 흘러간다.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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