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 안녕하세요. 며칠 전 가을비가 내리고 나더니, 하늘이 한층 더 높아진 것 같습니다. 이 가을, 어떻게 보내고 계세요? BR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정작 하나도 하지 못한 채 지난 몇 주를 보내버렸습니다. 조용필 씨 평양 공
안녕하세요. 며칠 전 가을비가 내리고 나더니, 하늘이 한층 더 높아진 것 같습니다. 이 가을, 어떻게 보내고 계세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정작 하나도 하지 못한 채 지난 몇 주를 보내버렸습니다. 조용필 씨 평양 공연 취재를 다녀오고 나서 뒤늦은 휴가, 그리고 업무에 복귀하자마자 ‘역사적인’ 니벨룽의 반지‘ 공연에 1주일을 온전히 바치고 나니, ’글감‘은 많은데, 공연 보느라, 뉴스 보도 하느라 바빠서 정작 글을 쓸 여유는 내지 못했습니다. 할 이야기는 많은데, 지금 하려니 ’뒷북‘인 것 같기도 하고...... 일단 오늘 만났던 사람 이야기부터 하려고 합니다.
'억만장자
지휘자' 길버트 카플란
오늘 저는 지휘자 길버트 카플란 기자회견에 다녀왔습니다. (카플란의 인터뷰 전문은 제 블로그 https://ublog.sbs.co.kr/shkim0423에 올릴 예정입니다.) 카플란은 말러 교향곡 2번만을 연주하는, 전 세계 말러 애호가들에게는 아주 유명한 지휘자입니다. 이번 주 개관하는 성남아트센터 개관기념공연에서 KBS 교향악단 연주로 말러 2번을 선보입니다.
그는 ‘아마추어’입니다. 다른 음악가들이 거치는 전문 교육과정을 마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말러 2번에 있어서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의 위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는 ‘이중생활자’입니다. 전세계에서 14만 부 이상 팔리는 금융 전문지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터‘의 발행인이자, 경제 칼럼니스트입니다. 월스트리트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억만장자‘라고들 합니다.
말러와
사랑에 빠졌다
전문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그가, 어떻게 해서 말러 2번에 있어서만큼은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는 지휘자가 됐을까? 그는 말러의 음악과 처음 ‘사랑에 빠지게 된 때’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어린 시절 3년 동안 피아노를 배웠죠. 하지만 연습을 게을리 해서 저희 어머니가 레슨을 중단시켰죠. 하지만 음악은 꾸준히 들었어요. 20살 쯤 됐을 때에는 클래식 레퍼토리를 웬만큼은 섭렵했죠. 하지만 그 때까지 말러 음악은 듣지 못했어요.
처음 말러 음악을 들은 것은 1965년, 뉴욕 카네기 홀에서였어요. 스토코프스키 지휘로 말러 교향곡 2번을 들었죠. 그 느낌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항상 음악을 들을 때마다 어떤 ‘감성’을 느끼긴 하지만, 그런 격정이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것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어요.“
‘말러 사랑에 빠졌다‘는 카플란. 그는 이 사랑은 드물게 아주 오래 가는 사랑이며, 아내까지도 허락한 사랑이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음악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다 지휘자로 나서지는 않습니다. 그도 처음부터 지휘를 해 볼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말러와 사랑에 빠진 뒤에도 15, 6년간은 그냥 듣는 것에 만족했습니다. 그러다 나이 마흔에 지휘 공부를 시작합니다.
나이
마흔에 시작한 지휘 공부
“내가 지휘를 할 수 있게 되면 이 음악을 왜 이렇게 사랑하게 됐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직접 지휘함으로써 제가 겪은 그대로의 감흥으로 음악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지휘 공부를 시작하면서 그는 ‘감당해야 할 위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봤다고 합니다. 그가 꼽은 위험은 이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 지휘를 해서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는 것.
두 번째, 지휘를 하지 않고 평생을 내가 왜 그 때 시도해 보지 않았나 후회하는 것.
그는 첫 번째 위험을 선택했습니다.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평생 후회하면서 사는 것은 참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1981년, 줄리아드 음대 졸업생으로부터 지휘 레슨을 받기 시작합니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5시간씩 말러 2번을 지휘하기 위한 공부를 했습니다. 음악 애호가로서, 음악에 대해 상당한 지식이 있었지만, 다시 악보와 음악을 ‘읽는’ 방법을 배웠고, 지휘 테크닉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이렇게 7달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해 전 세계에서 열린 말러 2번 공연을 모두 쫓아다녔습니다. 리허설을 빠짐없이 보고 지휘자를 만나서 얘기를 나눴습니다. 물론 그 때도 회사는 계속 경영했습니다. 그는 이 때를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도 멋진 한 해였다고 회상했습니다.
타의
추종 불허하는 '말러 전문가'
다음해인 1982년, 그는 자비를 들여 링컨 센터에서 개인 콘서트를 열고 아메리칸 심포니와 말러 2번을 연주했습니다. 그야말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연 공연이었습니다. ‘아마추어’였기 때문에 비평가들도 절대 공연 평을 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오케스트라는 연주에 응했습니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뒤 두 명의 평론가가 약속을 깨고, 공연 평을 썼습니다. ‘아주 훌륭한 연주’였다는 호평이었지요. 그는, ‘그 두 평론가 덕분에 제가 오늘날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후 오직 말러 2번만으로 빈 필, 런던 심포니, 프라하 심포니, 러시아 국립 오케스트라 같은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공연을 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1984년에는 카플란 재단을 설립하고 말러의 음악을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말러 2번 교향곡의 원본 악보를 구입했고, 말러의 사진과 저서, 레코딩 같은 관련 자료들을 방대하게 수집했습니다.
이번에 그는 성남아트센터에서 말러 2번 교향곡의 ‘새 판본’을 처음으로 선보입니다. 말러는 2번 교향곡 초고를 쓰고 난 뒤에 10번 이상 직접 지휘를 하며, 그 때마다 곡을 조금씩 수정했는데, 마지막 수정이 출판본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번에 자신이 지휘할 판본은 기존의 판본과 비교해 500곳 이상의 변화가 있었다면서, 구체적인 예까지 들어 설명했습니다. 아마 말러 2번 애호가라면 이번 연주에서 확실히 달라진 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중생활은
매력적"
사업가로서의 인생과 음악가로서의 인생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그는 지휘자 게오르그 솔티와 나눴던 대화를 소개하며 기자들을 웃겼습니다.
“솔티를 만났을 때 저는 너무 많은 음악적 질문으로 그의 시간을 빼앗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고 말씀드렸었지요. 그랬더니 그의 대답은 이랬어요.
‘이렇게 월스트리트에서 온 사업가와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기쁩니다. 왜냐하면 내 음악가 동료들과 얘기할 때는 항상 돈 얘기만 하기 때문이지요.’
‘이중생활’은 매력적입니다. 제가 한 번은 러시아에 가서 아침에는 고르바초프와 인터뷰를 하고, 오후에는 오케스트라 리허설을 한 적이 있어요. 고르바초프는 제가 지휘자인 줄 몰랐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제가 고르바초프를 만나는 사업가라는 사실을 몰랐죠. 이렇게 ‘이중생활’을 즐길 수 있어서 저는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아마추어"
그에게 말러 2번 외에 다른 곡을 지휘할 계획은 없는지를 물었지만, 그는 자신은 ‘아마추어’라면서, 지금까지는 그런 계획이 없다고 했습니다.
“현재 제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100퍼센트 제 자신이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아마추어가 프로의 세계에서 너무 많이 활동하는 것은 안 좋다고 생각해요. 지휘자가 어느 곡을 훌륭하게 연주하면 다음에는 다른 곡을 연주해 달라는 요청도 받게 마련이니까, 미래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언젠가는 다른 곡도 지휘해 봐야지 하는 날도 올지 모르지요. 하지만, 저는 ‘유혹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어 웃으면서, ‘딱 한 번의 예외가 있었다’며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과 헐리웃 볼에서 연주했을 때였죠. 그 공연장에서는 항상 미국 국가를 연주하는 게 관례라고 하더군요. 저는 이전에 한 번도 국가를 연주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상당히 겁에 질렸었죠. 하지만 그리 어려운 곡은 아니었어요.
나중에 신문에 비평가가 그 날 연주에 대한 평을 실었는데, 말러 2번의 2악장 템포는 낯설었다고 하면서도 국가 연주는 최고였다고 평했더군요.“
돈
많은 사람의 호사?
그는 ‘부활’로 불리는 말러의 교향곡 2번이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말러의 곡을 연주할 때 많은 사람들이 ‘순수한 기쁨’을 느끼게 된다면서, 이 곡이 ‘천국에의 초대‘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명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성남 아트센터 개관 콘서트에서 지휘하게 돼 영광입니다.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가 담긴 말러의 음악은 개관 축하 공연에 가장 적합한 곡’이라고 밝혀 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의 음악 활동에 대해 ‘돈 많은 사람의 호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경제력이 없었다면 과연 그가 지휘자로 데뷔할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그래도 저는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젊은 시절 벼락처럼 찾아온 말러의 음악과 사랑에 빠졌고, 그 사랑을 위해 나이 마흔에 지휘 공부를 시작한다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모두가 이런 ‘결단’을 내리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뜨거운 ‘열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웠습니다.
카플란의
열정이 부럽다
저는 카플란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피아니스트를 꿈꾼 적이 있었습니다. 피아노를 전공한 이모한테 한 10년간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카플란보다는 훨씬 오래 레슨을 받은 셈입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물론 저 자신의 적성과 재능, 노력 부족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만)으로 일찌감치 이 길을 포기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탈락’이란 말이 더 맞을 듯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학 입시를 치르고 난 겨울, 당시 음악 공부하는 학생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던 피아니스트 스타니슬라브 부닌의 첫 내한공연을 보고, 계속 피아노를 치지 않았던 것을 뼈아프게 ‘후회’ 했었습니다. 그리고 꼭 피아노를 다시 쳐야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제가 아는 많은 곡들이 부닌의 손가락 끝에서 황홀하게 울려나오는 것을 보면서, ‘아, 내가 부닌의 10분의 1만큼이라도 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비록 음악 전공자는 아니더라도 '멋진 아마추어'가 되겠다고 결심했지요.
하지만 부끄럽게도 저는 ‘알차게 놀면서 지냈던’ 대학 시절에는 그저 생각나면 가끔 ‘뚱땅거리는’ 수준에 그쳤고, 회사에 들어와서는 그나마 피아노 뚜껑은 내내 덮어두고 지내고 있습니다. 부닌의 연주를 눈앞에 접했던 그 날의 ‘벼락 같았던 감동’ 이후 20년이 다 되도록 저는 그 때의 다짐을 아직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카플란을 만나고서 저는 ‘피아노를 다시 치고 싶다’는 욕망을, 오랜만에, 아주 강하게 느꼈습니다. 카플란은 마흔이 돼서 지휘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는데, 저는 아직 마흔이 되려면 몇 년 남았으니, 아직은 여유가 있는 셈인가요. 물론 저는 피아노를 다시 시작해서,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나 꽤 잘 치게 된다 해도, 카플란처럼 자비를 들여 공연을 열 형편은 못 되지만 말이지요.
'멋진
아마추어'의 공연에 거는 기대
그는 자신을 ‘아마추어’라고 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도 개런티를 받지 않고 항공료와 체재비만을 주최측으로부터 제공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아마추어’의 첫 내한공연은 이미 한국의 음악 팬들 사이에서도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웬만한 프로를 능가하는 ‘멋진 아마추어’의 공연,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곧 다시 뵙겠습니다.
**덧붙입니다.
저 다음 편지도 빨리 쓰라고 재촉 좀 해 주세요^^ 항상 ‘곧 다시 뵙겠습니다’라고 인사했던 것 같은데, 그 약속 지키기가 요즘은 쉽지 않네요. 정해진 마감이 있는 원고 외에는 거의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글 쓴다는 일이, 어떨 때는 참 즐겁고 재미있다가도, 어떨 때는 굉장히 어렵고 부담스러운 일로 다가와서 말이죠. 오랜만의 편지에대한 변명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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