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문명기 5권BR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BR(At of Mosaic and G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BR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nsp;
--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2.이탈리아
1,2,3)로마(Rome) 1,2,3
4,5,6,7)바티칸(Vatican)
8,9,10,11)오스티아(Ostia)1,2,3,4
12)폼페이(Pompeii)
13,14)에르콜라노(Ercolano)1,2
15,16,17,18, 19, 20,21,22, 23,24,25)나폴리(Napoli)1,2,3,4,5,6,7,8,9,10,11
26,27)팔레르모(Palermo) 1, 2--오늘 이야기
28,29,30,31,32,33,34,35,36)피아짜 아르메리나(Piazza Armerina)
26)팔레르모 (Palermo) 1
◆1. 팔레르모(Palermo) 1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반도 남쪽의 섬이다. 유럽 대륙에서 보자면 지중해 최남단이다. 아프리카 북부 튀니지와는 넘어지면 코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다. 고대부터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길목으로 다양한 민족과 문명의 교차로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면적은 2만 5천㎢이니 남한의 4분의 1 크기다. 기후가 연중 온화해 사람 살기 제격인데다 적지 않은 땅덩이 전체가 가는 곳마다 풍광이 독특하고 아름답다. 시칠리아의 상징은 지금도 시커먼 연기와 검붉은 화염을 토해내는 유럽 최고봉 3천 295m의 애트나. 만년설은 아니지만 1년 중 8개월을 머리에 흰 눈을 얹은 채 천하를 굽어보는 애트나의 당당한 위용은 자연의 신비를 머금은 절경중의 절경으로 손색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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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 카타니아에서 바라본 애트나산. 뒤로 검은색 윤곽이 애트나. 2월초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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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트나 기슭.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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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나 해협. 필자가 선곳은 시칠리아 메시나이고, 건너편 육지는 이탈리아 반도. ⓒ김문환 |
시칠리아의 해안은 깍아지르는 절벽이 솟아 장엄하다. 그러나, 내륙으로는 드넓은 밀밭이 펼쳐진다. 로마인들은 시칠리아를 정복한 뒤 밀을 수탈하면서 부터 빵(식량) 걱정을 덜 수 있었을 정도다. 그 만큼 시칠리아 곡창은 기름지다. 야트막한 구릉의 목초지도 끝없이 이어지는데 어디선가 많이 본 듯 눈에 익다. 영화 대부(Godfather). 영화에서 배우 알파치노가 반대파 두목과 경찰서장을 살해한 뒤 은신하던 장소가 시칠리아. 아버지(말란브란도 역)의 고향. 시칠리아 구릉을 배경으로 사냥 다니며 세월을 낚던 알파치노의 모습은 목가적이란 단어와 딱 어울린다. 은인자적(隱忍自適)이랄까. 여기에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알파치노가 시칠리아 처녀와 눈이 맞는 장면은 두고두고 가슴 설레는 서정시로 남는다. 자동차 폭발사고로 사랑하는 신랑 알파치노와 유명(幽明)을 달리하는 시칠리아 새색시의 비극적인 최후는 가슴 시린 잔상으로 기억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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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2층의 북쪽 로마조각 전시관 바닥에 펼쳐져 있다. 꽃과 나뭇잎 사이로 사계절을 의인화한 여인상을 표현했다. 팔레르모 박물관. ⓒ김문환 |
낭만적이고, 애수 어린 주제음악에 한없는 그리움이 배어있는 것과 달리 시칠리아 마피아는 참 쓰라린 기억을 많이 되살려 준다. 악명 높은 범죄조직이다. 알파치노가 연기하던 미국 마피아는 시칠리아에서 20c 초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의 조직으로 미국사회에서 갖은 불법을 일삼았다. 시칠리아 본토에서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까지 마피아는 정치권과 검은 연결고리를 맺으며 시칠리아 사회의 모든 영역을 쥐고 흔들었다. 각종 정치 스캔들과 암살사건...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울 때 어김없이 깡패가 등장하던 지난 시절 대한민국의 모습을 연상하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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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모자이크방 전경--바닥을 장식하는 포세이돈 모자이크와 벽에 걸린 오르페우스 모자이크의 위용을 느껴볼수 있다. 팔레르모 박물관 ⓒ김문환 |
2차 세계 대전 이후 시칠리아에는 각종 차관과 원조가 들어왔다. 그러나, 지역발전에 쓰이지 못했다. 마피아가 독식을 한 탓이다. 아직도 시칠리아의 생활 수준이 유럽평균은 물론 이탈리아 내에서도 뒤쳐지게 된 원인이다. 지금은 이탈리아 정치가 부패를 청산하고 개혁에 일정부분 성공하면서 정치권과 더러운 공생관계를 유지하던 마피아의 위세도 많이 꺾였다. 한국에서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특히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 이후 정치권과 검게 얽혀 있던 주먹들의 끈이 떨어져 나가듯이... 정치가 맑아져야 사회가 깨끗해지는 원칙을 시칠리아와 한국에서 기세등등했던 폭력조직의 부침(浮沈)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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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페우스의 연주--팔레르모 시가지 승리의 광장에 있던 한 로마저택에서 1868년 까발라리가 발굴했다. 3c 작품이다. 팔레르모 박물관 ⓒ김문환 |
시칠리아의 여러 그리스 로마 유적지 가운데 모자이크와 관련해서는 2곳을 주목할 만하다. 팔레르모와 피아짜 아르메리나. 팔레르모는 박물관에, 피아짜 아르메리나는 야외의 유적에 모자이크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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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페우스--나뭇옆 바위에 걸터앉은 모습. 왼손에 키타라를 들었다. 지금까지 발굴된 오르페우스 모자이크 가운데 용모가 가장 곱다. 팔레르모 박물관 ⓒ김문환 |
먼저 괴테가 이슬람권 최대, 최고의 도시라고 칭송(괴테가 다른 이슬람 도시를 충분히 탐방해보지 못한 가운데 내린 결론이지만...)했던 팔레르모의 국립 박물관부터 탐방한다. 팔레르모 국립 박물관에는 페니키아에서 그리스 로마를 거쳐 만들어진 각종 조각이 볼만하다. 도자기도 다수 소장하고 있다. 조각과 도자기 사이를 비집고, 3층에 모자이크 전시관이 탐방객을 맞는다. 이탈리아 반도에서 유행한 흑백모자이크 보다 헬레니즘풍의 컬러 테세라 모자이크들이 화려한 그리스 신화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이는 그만큼 시칠리아가 로마제국의 한 부분 이라기 보다는 그리스인들이나 카르타고 인들이 개척한 땅으로 로마의 식민지가 된 역사적 경험을 반영하기 때문이리라. 현지 주민들은 헬레니즘적인 전통이나 북아프리카의 전통에 충실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모자이크 가운데 오르페우스의 연주와 유로파의 납치가 인상적이다. 오르페우스에 대해서는 다음기회에 자세히 알아본다. 2층 로마조각 전시관 바닥에도 모자이크 한 점이 외로이 자리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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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를 듣는 짐승들--오르페우스의 연주회에 모인 짐승들. 팔레르모 박물관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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