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문명기 5권BR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BR(At of Mosaic and G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BR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nsp;
--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2.이탈리아
1,2,3)로마(Rome) 1,2,3
4,5,6,7)바티칸(Vatican)
8,9,10,11)오스티아(Ostia)1,2,3,4
12)폼페이(Pompeii)
13,14)에르콜라노(Ercolano)1,2--오늘 이야기
15,16,17,18)나폴리(Napoli)
19,20)팔레르모(Palermo)
21,22,23,24,25,26,27)피아짜 아르메리나(Piazza Armerina)
13)에르콜라노(Ercolano)
◆1. 에르콜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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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콜라노. 로마시대 마차가 다니던 도로와 양옆은 사람이 다니던 인도다. 로마시대 주택의 벽들이 용암과 진흙에 묻혀있다가 그대로 발굴된 모습니다. ⓒ김문환 |
에르콜라노(Ercolano). 베수비오 분화때 사라졌다가 폼페이처럼 다시 햇빛을 본 로마도시다. 화산의 희생양 폼페이가 베수비오 산에서 좀 떨어진 장소라면 에르콜라노는 거대한 베수비오 산자락에 바로 붙었다. 그래서, 화산 분화시 먼저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진흙더미에 깊게 묻혔다. 도시 위에 무려 27m 두께로 진흙과 용암이 쌓였다. 반면 폼페이는 진흙보다 2차 화산분출물인 화산재 등으로 뒤덮였다. 이는 무슨 차이를 낳았을까? 에르콜라노의 경우 순간적으로 미세한 진흙더미에 묻혀 공기가 그만큼 덜 섞였다. 이런 특징이 갖는 의미는 크다. 목재, 가구, 섬유, 음식물 등 썩기 쉬운 물품까지 고스란히 원래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공기가 없어 부패하지 않은 까닭이다. 에르콜라노의 유적과 유물은 로마인의 세세한 생활상을 폼페이보다 더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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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콜라노. 필자 뒤는 에르콜라노 유적지. 먼발치로 보이는 건물든은 신시가지. 신시가지 너머로 보이는 산이 베수비오다. 베수비오의 분화로 에르콜라노는 한순간 용암과 진흙더미에 묻혔다. ⓒ김문환 |
탐방을 위해 나폴리에서 기차를 타고 출발할 경우 폼페이 보다 먼저 나타나는 도시 에르콜라노는 도시 성격도 폼페이와 다르다. 에르콜라노는 전원도시다. 번잡한 상업과 무역의 도시 폼페이를 피해 한적하고 쾌적한 주거환경을 원했던 부유층이 거주하던 보금자리다. 그러니, 도시 규모가 작을 수 밖에. 그러나, 집들은 세련되고 화려하다. 서울 옆 과천일 수 있고, 분당, 일산의 고급주택가라고 봐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여유있는 계층의 휴양 겸 주거도시. 가장 적합하기로는 만들기도 전에 부동산 시장을 들썩거리게 만들고 있는 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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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의 집] 현관 입구 복도인 파우케와 바닥을 장식하는 흑백 모자이크. 나무문은 로마시대 것은 아니고, 복원해 놓은 것이다.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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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집] 실내정원인 아트리움과 바닥 모자이크. 에르콜라노. ⓒ김문환 |
암죽같은 진흙과 용암을 뒤집어 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에르콜라노. 발굴의 역사로 치면 폼페이보다 오히려 빠르다. 앞서 살펴본 대로 폼페이는 1748년부터 본격 발굴됐다. 에르콜라노는 이보다 훨씬 앞선다. 1594년에 첫 삽을 떴다. 당시 나폴리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그 왕조가 에르콜라노의 화산재 아래서 보물이나 조각품을 찾아내 본국으로 실어간 게 기원이다. 1700년대로 넘어 오면서 약탈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유적지를 마구 파헤쳤다. 다행히 이후 체계적인 발굴을 거쳐 오늘에 이른다. 물론, 아직도 상당수 유적은 발굴되지 않고, 신시가지 아래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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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아트리움의 집]. 로마시대 벽을 장식했던 프레스코 일부가 그대로 남아있다. 바닥은 커다란 대리석을 크게 조각내 포장한 오푸스 섹틸레.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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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의 집] 회랑의 바닥 모자이크. 에르콜라노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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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니움 집] 실내정원 아트리움을 둘러사고 설치돼 있는 바닥 모자이크. 가운데 네모난 시설은 빗물받이다. 2층짜리 집의 규모를 로마 시대 모습 그대로 볼 수 있다. 에르콜라노 ⓒ김문환 |
에르콜라노는 원래 규모도 작은 도시인데다 아직 발굴 안된 부분도 넓은 탓에 폼페이처럼 많은 프레스코나 모자이크가 나오지 않았다. 물론 양이 적다고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군데 군데서 탐방객의 발길을 붙잡는 흑백 모자이크, 오푸스 무세움은 멋진 모자이크의 세계를 유감없이 선보인다. 오늘날 에르콜라노 유적지로 들어가는 입구. 입구로 사용되는 로마시대 여관에서부터 흑백 모자이크를 만난다. 중앙 목욕탕 여탕에서 기다리는 바다 관련 모자이크는 에르콜라노 흑백 모자이크의 백미다. 특히, 약간 뒤틀리긴 했지만, 로마 당시대로 남아있는 트리톤과 미로(labyrinth)가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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