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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오스티아 2-이탈리아

김문환

입력 : 2005.09.01 10:15

지중해 문명기 5권BR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BR(At of Mosaic and G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BR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nsp;


--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2.이탈리아

 

1,2,3)로마(Rome) 1,2,3

4,5,6,7)바티칸(Vatican)

8,9,10,11)오스티아(Ostia)1,2,3,4--오늘 이야기

12)폼페이(Pompeii)

13)에르콜라노(Ercolano)

14,15,16,17)나폴리(Napoli)

18,19)팔레르모(Palermo)

20,21,22,23)피아짜 아르메리나(Piazza Armerina)

 

9)오스티아(Ostia) 2

 

◆2. 항구상인조합 구역(Square of the Guilds, Piazzale delle Corporazioni)

 

조합구역 전경--기둥과 벽으로 구획진 한 칸씩이 별도의 사무실이다. 23개의 사무실이 일렬로 늘어선 모습에서 거대한 규모의 상업지구였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사무실 바닥은 다양한 모자이크로 가득하다. 오스티아 ⓒ김문환

등대와 목재상--오스티아의 등대를 사이에 두고 두 척의 배가 양쪽으로 정박한 모습이다. 윗 부분 글자는 목재상 사무실임을 말해준다. 목재상은 건축에서 아주 중요한 자재여서 목재상들은 국가로부터 특별 관리를 받았다. 오스티아 ⓒ김문환

 

오스티아는 항구였다. 지중해 각지에서 온 화주나 선주의 사무실이 항구 상인조합 구역을 가득 메운다. 요즘의 고속버스 터미널이나 공항, 혹은 여객선 터미널을 생각해 보자. 버스회사, 혹은 각국의 항공사, 해운사 별로 자기 사무실을 운영한다. 표도 팔고, 고객들에 대한 이런 저런 서비스도 담당하고... 로마시대에도 그랬다. 지중해 각지에서 온 선주나 선사는 항구에 사무실을 뒀다. 이 사무실에는 자기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특산물이나 상징을 표시해 누가 봐도 어디서 왔는지 출신지역을 알 수 있도록 했다. 글자로 지역명을 표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표시나 글자는 바닥 모자이크의 형태로 설치돼,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요즘도 사무실에 '00항공'이라든지, '00해운', '00고속'등의 이름을 걸고, 자기 회사만의 로고를 붙이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인류의 삶, 좀더 구체적으로 경제활동 방식마저 수 천년 동안 변함없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미수아 선주 사무실--미수아는 북아프리카 카르타고 근처에 있던 도시다. 미수아에서 온 선주 사무실이다. 거대한 등대와 대형 범선이 인상적이다. 오스티아 ⓒ김문환

미수아에서 온 2대의 배 가운데 한대. 오스티아 ⓒ김문환>

밀 수입상--곡물수입은 시민들의 식생활과 직결된 분야다. 알렉산드리아와 시칠리아, 사르디니아등에서 들어오는 밀은 로마의 빵이었다. 시칠리아나 사르디니아가 오늘날 이탈리아 영토이니까 이탈리아 인가 보다 하지만, 로마시대 시칠리아나 사르디니아는 식민지였다. 밀은 오스티아 항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됐다. 곡식 측정기구에서 곡식의 분량을 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오스티아 ⓒ김문환

브라타 선주--코끼리그림이 그려진 이곳은 북아프리카 리비아의 사브라타항에서 온 선주의 사무실이다. 사브라타는 사하라 사막 너머 아프리카 특산품인 상아와 서커스, 검투용 코끼리 무역의 거점이었다. 사브라타는 오늘날까지 거대한 로마시대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에메럴드빛 바다 옆 흰 백사장을 배경으로 한 로마시대 유적은 자연과 인간이 합작으로 빚어 낸 보배로 손색없다. 오스티아 ⓒ김문환

마우레타니아 선주--돌고래를 타는 에로스와 계절의 여신을 상징하는 2개의 인물상이 자리한다. 오늘날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 서쪽 끝 지방인 마우레타니아(오늘날 모로코)에서 온 선주 사무실이다. ⓒ김문환

사르디니아 선주--이탈리아 반도옆 사르디니아 섬에서 온 선주 사무실이다. 사르디니아는 1차 포에니 전쟁 이후 카르타고로부터 가장 먼저 빼앗은 해외 식민지였다. 범선 옆에 곡물 저장고인 요즘 식의 사일로가 보인다. 사르디니아는 밀을 수입해 오는 주요 곡창이었다. ⓒ김문환

카르타고 선주--상인조합 구역 북쪽 맨 끝에 위치한 사무실이다. 위에 오스티아항의 등대가 있고, 그 아래로 2척의 큰 범선, 밑으로는 큰 돌고래가 두 마리 그려져 있다. 카르타고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나라다. 고대를 풍미했지만, 로마와 사활을 건 전쟁에서 패해 빛을 잃었다. 그러나, 만약 카르타고가 승리했다면 거꾸로 로마가 지구상 역사에서 사라질 뻔했다. B.C 146년 3차 포에니 전쟁이후 초토화 된 카르타고는 이후 폐허의 불모지가 됐다. 그러나, 제정 로마 시대 다시 개발돼 로마 본토와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중심지로 성장했다. 로마, 알렉산드리아 함께 제국의 3대 도시였다. ⓒ김문환

 

신라 말기 청해진이나 고려 시대 벽란도 역시 규모는 작더라도 오스티아 같은 분위기였을까? 사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까지 활발한 뱃길 무역을 펼쳤다. 백제는 서해를 통해 중국이나 일본을 넘어 심지어 월남지역까지 다녀왔다는 주장도 나온다. 신라도 뱃길로 중국과 일본을 오갔다. 고구려나 발해 역시 뱃길로 일본과 무역했다. 고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후로는 이런 해상 대외활동이 거의 자취를 감췄다. 중국과의 정기적인 육로 소통 이외에는 뱃길이 사실상 의미를 잃었다. 일본으로 보내는 사절이 수십 년 마다 한 번씩 뱃길을 이용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알게 모르게 우리의 역사 인식 속에는 해상활동이 빠져 있다. 고대 우리 조상은 물론 다른 나라들이 바다를 동네 연못처럼 누비고 다닌 사실에 어둡다. 아주 움츠러들어 중국의 속국 차원에서만 존재를 인정 받았던 조선의 시각에 머문 탓이다. 이제 여기서 벗어나 우리 역사와 세계 역사를 다시 보는 눈을 키워야 바른 역사인식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다.

 

선주 사무실. ⓒ김문환

<72. 제국내 각지에서 온 선주 사무실. ⓒ김문환>

저장고. ⓒ김문환

 

상인조합 구역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오스티아 극장 위에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지역과 반대 왼쪽으로 펼쳐지는 지역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23개 선주 사무실 모자이크는 오른쪽 사무실에 자리한다. 왼쪽에도 똑같은 구조로 사무실 유적이 남아있지만, 모자이크는 풍부하지 못하다.

 

올리브기름 항아리--23개 사무실 반대쪽으로도 사무실 밀집지역이 또하나 있었다. 그가운데 큰 항아리와 야자나무를 그려놓은 사무실이다. 항아리는 올리브기름을 담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에서 온 올리브 기름 화주나 선주의 사무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문환

왼쪽 지역 선주 사무실. ⓒ김문환

왼쪽 지역 선주 사무실. ⓒ김문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