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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뉴스>
<앵커>
이 한일 회담 내내 일본은 '독도 폭파'를 먼저 주장하면서 독도 문제를 집요하게 국제 분쟁화 하려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당시의 치열했던 한-일 외교전을 임상범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수교회담이 타결단계에 접어든 62년 9월, 일본 외무성에서 예비 절충회의가 열렸습니다.
일본측은 회담 의제도 아닌 독도문제를 거론하며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것을 제의했습니다.
이세키 외무성 아주국장은 독도는 무가치한 섬이라면서 폭발이라도 해서 없애버리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우리측은 중요하지도 않는 섬에 왜 집착하냐며 독도문제는 수교회담과 무관한 만큼 국교정상화 후에 별개로 다루자고 맞섰습니다.
두달 뒤인 62년 11월, 김종필-오히라 회담.
오히라 외상이 국제사법재판소 제소에 응할 것을 약속해 달라고 요구해 오자,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은 제3국에 의한 거중조정이라는 대안을 내놨습니다.
일본의 분쟁지역화 시도를 차단하고 독도문제를 미해결 상태로 유지한 채 수교 협상을 마무리짓자는 계산에서였습니다.
이에 대해 오히라는 생각해 볼 만한 안이라면서 제3국으로 미국을 지목했습니다.
[전현수 (경북대 교수)/한일 외교문서 심사반 민간위원 : 우리 정부에서는 회담이 타결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문제는 협의 대상으로 넣을 수 없다는 강력한 태도를 견지했습니다.]
거듭된 공방 끝에 65년 최종적으로 체결된 한일 기본관계 조약에서 독도문제는 결국 제외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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