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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가게] 장인의 혼, 안성유기

이병태

입력 : 2005.08.18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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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전, 추운 겨울.

여인네들은 놋그릇 주발에 밥을 담아서 따듯한 아랫목에 묻어두곤 했습니다.

가족사랑을 대변하던 정겨운 풍경은 '스테인레스'의 등장과 함께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경기도 안성의 '안성마춤 유기공방'.

한때 스무 곳이 넘던 이 지역 유기가게 가운데 유일하게 안성유기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제작하는 유기제품은 놋쇠를 두들겨서 만드는 방자유기부터 장식품을 만드는 주물유기까지 수십가지가 넘습니다 .

장식품이나 화로처럼 고온에서 견뎌야하는 유기는 주물기법으로 만듭니다.

갯토로 판을 다져서 본을 뜬 뒤 쇳물을 부어서 주전자 고리를 만드느라 구슬땀을 흘리는 김수영 사장은 2대째 가업을 대물림했습니다.

섭씨1000도가 넘는 쇳물을 다루는 고단한 일이지만 30년전, 가업을 숙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김수영 대표/안성마춤 유기공방 : 집에서 가업으로 했으니까 눈으로 아름아름 배웠죠. 힘들다 그런 생각은 안했어요. 항상 봐왔던 일이니까.]

아들의 작업을 지켜보는 창업주 김근수 옹.

지난 1983년, 주물유기 부문, 중요무형 문화재 제 77호로 지정된 장인입니다.

김 옹이 유기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그의 나이 10대중반이던 지난 1930년대.

일본인이 경영하는 유기회사에 판매사원으로 취직을 하면서부터입니다.

손재주가 뛰어났던 김 옹은 판매사원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유기일을 배웠습니다.

해방 후인 지난 1946년 스승 김기준 옹과 함께 유기공장을 차렸습니다.

안성유기의 명성덕분에 공장은 최대의 호황을 누렸습니다.

[김근수 옹/안성마춤 유기공방 창업주 : 이렇게 만드는데 와서 기다려서 사갔어요. 그때는 처녀가 시집을 가려면 요강, 대야, 밥그릇, 수저는 꼭 사갔잖아요.]

스승이 작고한 뒤 김옹은 독립해서 '안성 유기공업사'를 차렸습니다.

그러나, 6.25전쟁을 겪으면서 유기공장은 위기를 맞았습니다 .

[김근수 옹/안성마춤 유기공방 창업주 : 우리나라에 연탄이 쓰이면서 이게 연탄에는 산화가 되고 또 그 때는 전쟁때니까 재료가 없으니까 모두 물건을 엉터리로 만들어서 신용을 잃었어요.]

주위의 유기공장이 문을 닫는 상황에서도 김 옹은 신용과 손재주를 자산으로 무역회사를 차려서 활로를 모색했습니다.

지난 1950년대말, 한미재단의 도움으로 장식용품 유기를 만들어 미국으로 수출을 했습니다.

[김근수 옹/안성마춤 유기공방 창업주 : 배가 가끔 들어오니까 선적 맞추는것도 힘들고 그랬거든요. 그래도 그 애를 쓰면서도 보람을 느꼈어요. 그때 손으로 만든 것을 10만불씩 수출했으니까 내가 상도 많이 타고..]

그러나, 해외시장을 무대로 힘겹게 유기의 생명줄을 이어온 김 옹에게 또 다시 시련이 닥쳤습니다.

지난 1970년대 중반, 인건비가 싼 동남아 국가들과의 가격경쟁력에서 밀리게 된 것입니다.

힘겹지만 '전통 문화 전도사'라는 자부심 하나로 안성유기의 맥을 이어온 부자.

최근, 또 다시 기운이 나게 만드는 일이 있습니다.

웰빙바람을 타고 창업초 안성유기 공방이 있던 자리에 세운 매장을 찾는 발길이 점차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장은 김옹의 손자 3형제가 맡아 운영하면서 대를 이어갈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안성유기의 명맥을 이어갈 차세대 주자들의 꿈은 사라져가는 유기의 전통을 전해줄 문화공간을 세우는 것입니다.

[김범진/3대째 대물림 준비중 : 워낙 어르신들이 해놓은 것이 많아서 앞으로 저희가 박물관도 개장할 계획이고, 다른 사람들이 와서 보고 아! 이게 우리 문화구나 (느끼게 하고 싶다).]

세상의 외면속에서도 옹골차게 지켜온 장인정신과 변화를 모색하는 도전정신이, 반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안성유기의 전통을 이어온 비결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