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내용에 영화 내용을 상당부분 밝히는 스포일러가 있으니 이점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박찬욱 감독이 복수3부작의 마지막 편에 해당하는 [친철한 금자씨]를 완성했습니다. 평단의 관심과 더불어 관객의 관심도 높아 개봉 첫 주 예매율에서도 [아
박찬욱 감독이 '복수3부작'의 마지막 편에 해당하는 [친철한 금자씨]를 완성했습니다. 평단의 관심과 더불어 관객의 관심도 높아 개봉 첫 주 예매율에서도 [아일랜드]를 압도적인 차이로 제치고 1위에 올라섰습니다. 칸느의 영광에 빛나는 박찬욱 감독의 이름값과 더불어 전 국민의 드라마였던 [대장금]의 이영애에 대한 관심이 함께 모여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박찬욱 감독은 자신의 작품이라기 보다는 기획의 입김이 더 셌던 [공동경비구역 JSA]의 흥행여세를 몰아 감독의 컬트적이고 B급 영화적인 정서를 한껏 발휘했던 [복수는 나의 것]은 흥행에 참패를 겪었습니다. (당시 편집과정에서 투자·제작 관계자가 지루하고 재미없는 몇몇 부분을 들어내자고 했더니 박 감독 왈 '제가요... 박찬욱입니다.'라며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극장에서 내려진 이후 계속 평론가들과 매니아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일종의 저주받은 걸작의 반열에 드는가 싶더니, [올드보이]의 흥행 성공과 칸의 영광으로 세계 영화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의 자리에 올라섰습니다.
[복수는 나의것]이 높은 완성도와 치밀한 연출,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실패했던 이유로는 당시로서는 신인에 다름없는 감독의 작품이라는 성격에 관객들이 익숙하지 않았고 기본적으로 차가운 느낌의 연출에 주제도 관객들이 보기에 그리 편치 않은 우리 사회의 계급 갈등을 다루었기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이에 비해 개인대 개인의 문제로 인한 복수를 다룬 [올드보이]는 최민식의 광기에 가까운 연기와 폭발적인 클라이막스 등 에너지로 똘똘 뭉쳐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습니다.
[친절한 금자씨]는 이전 두 작품들과 비교해 볼때 자신만의 스타일에 더 충실하고, 또 블랙코미디적인 요소가 더 많고, 개인의 복수와 그 복수의 사회성을 통해 법과 징벌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금자(이영애)씨는 20살 처녀 나이에 유괴범의 혐의를 뒤집어 쓰고 13년이라는 기나긴 수형생활을 마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옵니다. 금자씨의 교도소 생활은 글자 그대로 회개와 봉사, 성실 그 자체로 모범수로 평가받았고 또 몇몇 감방 동료들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끈끈한 인간적인 정을 쌓아놓았습니다.
금자씨는 교도소에서 그를 교화했던 전도사가 건네주는 하얀 두부를 거부하면서 무표정한 얼굴로 그 유명한 대사인 '너나 잘하세요'를 던집니다. 금자씨는 13년 동안 치밀하게 계획했던 백선생(최민식)에 대한 복수만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희생자 부모를 찾아가 그 앞에서 손가락을 잘라 속죄를 구하고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는 교도소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거처를 마련하고 빵집에 취직하고, 사제 총 주문에 들어가고, 멀리 호주까지 날아가 자신이 낳은 딸을 다시 만나면서 백선생에 대한 복수를 차근차근 그러나 집요하게 준비합니다. (영화에서 금자씨가 잠을 자는 장면은 딱 한번만 나오고 계속 이곳 저곳 바쁘게 돌아다니기 때문에 '피곤한' 금자씨라는 말도 나온다더군요.)
드디어 자신이 낳은 딸을 호주로 입양 보내버리고 13년간의 세월을 빼앗은 백선생의 신병을 확보해 산속 폐교에서 자신만의 복수를 실행하려는데 백선생의 또다른 행적이 드러나면서 금자씨는 마음을 고쳐먹게 됩니다.
[올드보이]의 가장 큰 매력이 최민식의 광기에 가까운 연기였다면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이영애의 혼신을 다한 연기가 압권입니다. 배우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게 만드는 능력은 감독의 능력 가운데 가장 뛰어난 부분인 듯합니다. 무표정하고 멍한 표정으로 툭툭 던지는 대사 스타일은 기존의 이 배우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며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예쁘고 천사같은 얼굴과 마음을 지닌 대장금의 이미지와 유명 대기업의 화려한 모델로 접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경이롭게 여겨질 정도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쁜 얼굴로 데뷔한 뒤 미모에 뒤쳐지지 않는 연기력을 갖추는 단계를 지나 이제는 최고의 완숙미에 이른 듯합니다.
백선생으로 나오는 최민식 뿐 아니라 감독의 이전 작품에 주연으로 출연했던 강혜정, 송강호, 신하균, 배우들이 곳곳에서 카메오로 나오는데 감독으로서는 나름대로 3부작의 완결편이라는 의미에서 출연시켰다고 하는군요.
의상과 분장뿐 아니라 벽지같은 세세한 소품에까지 스며있는 스타일의 꼼꼼함은 이전 작품들보다 더욱 정교해졌습니다. 각각의 분위기와 장소에 맞게 치밀하게 계산된 스타일은 비발디의 때로는 가녀린 때로는 격정적인 현악기의 선율과 잘 조화됩니다. 하지만 스타일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전체적인 이야기를 끌고가는 힘은 다소 떨어집니다. 교도소 동료들에게 베풀었던 금자씨의 친절에 보답하는 그들의 헌신의 폭도 그렇고 영화의 전환점이 되는 중반 이후에 금자씨의 심경 변화 부분이 그녀가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집요하고 치밀하게 준비했던 과정에 비해 설득력이 약하게 느껴지지만 스타일에 취하다보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전 한국영화에서 가장 뒤떨어졌던 미술 분야, 미국에서는 프로덕션 디자인이라고도 하는 분야에 유달리 집착을 보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데 이는 몇몇 역량있는 감독들의 공통된 특성으로 보여집니다. 스타일에 집착하면서 자칫 작품의 내러티브나 이야기의 힘에는 소홀해지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 염려스러운 부분입니다.
심각한 상황에서 툭툭 던지는 유머아닌 유머가 심각한 몰입에서 깨어나 분위기를 환기시켜주는 역할을 하지만 작품 전체의 흐름에서 보면 그다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는 못합니다. 감독이 복수라는 화두로 인간을 성찰하고자 했는데 특히 이 작품에서는 악에 대한 법과 제도의 징계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징벌의 의미에 대해서 질문을 던집니다.
이 의식에 참여를 준비하고 또 실제로 참여한 뒤 보여주는 반응을 통해 감독은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주제의식이 과하게 넘쳐나는 것 같습니다. 복수와 속죄의 마지막 의식에서 친절한 금자씨가 만들어 서로 나누어 먹은 초콜릿 케이크의 맛이 과연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을 느끼며 극장문을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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