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꼽아 기다렸던 발레리노 김용걸의 솔로 공연을 지난 일요일, 드디어 봤습니다. BR 아트 프런티어 ‘The Move 김용걸. Move라는 제목대로, 김용걸의 기량과 삶이 응축돼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 공연이었습니다. 이 공연은 그의 춤 뿐 아니
손꼽아 기다렸던 발레리노 김용걸의 솔로 공연을 지난 일요일, 드디어 봤습니다.
아트 프런티어 ‘The Mover' 김용걸.
'Mover'라는 제목대로, 김용걸의 기량과 삶이 응축돼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 공연이었습니다. 이 공연은 그의 춤 뿐 아니라 파리 생활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상영으로 감동을 더했습니다. 4장으로 이뤄진 다큐와 춤을 번갈아 선보였습니다.
공연 시작 시각. 객석에 불이 꺼지자 무대 중앙으로 흰 스크린이 내려왔습니다. 영사기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파리 오페라 발레, 가르니에 극장의 화려한 전경이 비칩니다. STEP BY STEP. 다큐의 제목입니다.
1장. 여정을 시작하며.
파리 오페라 발레의 유일한 동양인 남자 무용수, 김용걸이 땀 흘리며 연습하고 있습니다. 이 다큐는 파리 오페라 발레의 동료인 사뮈엘 뮈레즈가 찍은 것입니다. 김용걸은 프랑스어로 이 동료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습니다. 파리. 그가 마술 같은 곳이라고 부른 도시. 그는 파리에서 새로운 인생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한국에서 주역 무용수였어. 참 많은 춤을 췄지. 라 바야데어, 백조의 호수, 파키타....... 팬도 많았었지.”
스크린이 올라가고 막이 오릅니다. 김용걸과 파리 오페라 발레의 솔리스트인 로랑스 라퐁이 무대에 섰습니다. 지젤 2막의 파드되. 신비로움이 서린 밤의 숲. 두 사람의 호흡은, 죽은 뒤 정령이 되어서까지 자신을 배신한 애인을 지켜주려 하는 가슴 아픈 사랑을 생생하게 보여줬습니다.
2장,
낯선 곳에서
김용걸은 파리 오페라 발레의 드미 솔리스트입니다. 오랫동안 군무 생활을 해왔습니다. 지금 그는 외로워 보입니다. 슬퍼 보입니다. 그는 ‘내가 한국에서 주역무용수였다는 사실을 잊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2000년 파리 오페라 발레에 입단해 오랜 군무 생활을 거치는 동안, 그는 좌절도 절망도 많이 해 본 것 같습니다. 그는 '아, 젠장!‘ 하고 크게 소리도 지릅니다. 그의 아픔이 가슴 저리게 느껴집니다.
김용걸이 혼자 무대로 나왔습니다. 이번 작품은 베스트리스. 이탈리아 출신의 걸출한 무용수 G 베스트리스를 기리는 작품입니다. 1969년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제 1회 모스크바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금상을 받을 때 췄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김용걸의 춤과 연기는 원숙했습니다. 고난도 기교를 소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계속해서 ‘보이지 않는 가면’을 바꿔 쓰며 천의 얼굴을 보여줬습니다.
3장. Work.
절망하고, 슬퍼할 시간이 없습니다. 김용걸은 이제 ‘In the middle somewhat elevated(상승의 한가운데)'를 연습하고 있습니다. 로랑스 라퐁과 연습하면서 계속 두 사람은 동작이 엇갈립니다. 파리 오페라 발레를 위해 윌리엄 포사이드가 안무한 이 작품은 강한 비트의 음악에 난해한 동작이 쉴새없이 이어집니다. 안무자에게서 직접 안무 의도를 들었던 아네스 레떼스튀가 연습을 도와줍니다. 아네스는 지난 2002년 내한 공연에서 이 작품을 처음 선보여 갈채를 받았던 파리 오페라 발레의 수석 무용수입니다. 그의 연습은 반복됩니다. 춤추는 김용걸과 아네스의 실루엣이 커다란 창에 비칩니다......
조금 전 스크린에서 봤던 ‘In the middle~'이 무대 위에 재현됩니다. 김용걸과 로랑스 라퐁은 환상의 커플입니다. 한 치만 어긋나도 무너질 동작들이 정교하게 이어집니다. 관객도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숨 막히는 고난도 발레 기교가 현대적 안무에 고스란히 녹아들었습니다. 귀를 때리는 음악이 그치고, 두 사람이 조각처럼 멈춰선 가운데, 암전. 다시 불이 켜졌을 때, 절로 ’브라보‘를 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4장. Good Steps.
그는 독특한 의상을 입고 연습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뛰고 구르고 땀 흘립니다. 피나 바우슈 안무의 ‘오르페와 유리디체’. 그는 지옥의 문지기를 맡아 춤춥니다. 비중 있는 역할입니다. 그는 무대 위에서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무대 뒤편 바닥에 누워버렸습니다. 줄줄 흐르는 땀은 어쩐지 눈물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커튼 콜. 그는 무대 위에서 열광적인 환호를 들으며 관객들에게 인사합니다.
그는 ‘자신을 찾는 여정’을 계속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원하는 것을 이뤘을 때의 허망함,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의 절망감보다는, 한걸음 한걸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순간처럼 행복한 순간이 있을까. 나는 나 자신과 당신들을 위해 춤추고 있고, 그러기에 나는 너무 행복하다.”
STEP BY STEP. 이 다큐의 제목이 다시 떠오르고, 상영이 끝납니다.
이제 공연 마지막 순서.
김용걸은 얼굴에 흰 분칠을 하고 강렬한 붉은 색 의상을 입고 무대에 나왔습니다. 모리스 베자르가 파리 오페라 발레에 경의를 표하며 안무한 ‘아레포(AREPO. ‘오페라’를 거꾸로 한 단어)‘입니다. 원초적이고 강렬한 힘과 매력이 느껴지는 이 작품에서 김용걸은 원숙해진 기량을 마음껏 선보였습니다. ’춤추고 있어서 행복하다‘는 그의 말이 실감났습니다. 그의 춤을 보면서 저도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곧 공연이 끝난다는 게 아쉬웠습니다.
삶이
담겨있는 그의 춤
열광적인 커튼 콜. 관객들의 갈채는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땀과 눈물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기에 더욱 그랬을 겁니다. 공연장 로비에서는 팬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제 딸 은우는 저와 함께 줄을 서서 공연 프로그램에 그의 사인을 받았습니다. (‘미취학 아동’인 은우는 공연장에 들어갈 수 없어서 아빠와 함께 로비의 대형 화면으로 공연을 봤습니다. 저 혼자만 공연을 봐서 남편에게 미안했습니다.)
김용걸은 공연 직전 리허설 때 한 인터뷰에서, 한국에서는 자주 접할 수 없지만 ‘파리 오페라 발레’을 대표하는 작품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에 대해서는, 지금도 자신은 쑥스러워서 못 본다고 했습니다. 다큐를 찍어준 동료와 다큐멘터리 편집 방향을 놓고 다투기도 많이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큐를 찍을 당시, 자신의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는 데 결국 동의하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공연에서 관객들이 한 인간으로서 무용수의 삶을 느낄 수 있다면 성공’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번 공연은 ‘완벽한 성공’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관객들은,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를 마다하고 낯선 도시 파리로 간, 김용걸이라는 한 무용수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려 하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예술에는 예술가의 삶이 오롯이 녹아들어있게 마련입니다. 눈물과 땀과 연륜이 묻어나는, 인생이 담겨있는 김용걸의 춤을, 저는 앞으로 더욱 좋아하게 될 것 같습니다.
또 뵙겠습니다.
**김용걸의 인터뷰 내용은 제 블로그의 ‘인터뷰-사람들 이야기’ 카테고리에서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ublog.sbs.co.kr/shkim0423)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