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국제

"로제타 스톤 절대 못 돌려준다"

김성준

입력 : 2005.07.17 11:13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하다가 눈길을 붙잡는 기사를 발견했다. "빼앗긴 로제타 스톤 돌려달라.” 이집트 정부가 영국, 프랑스, 독일에 대해 과거 약탈해 간 유적들을 반환하라고 요구했다는 기사였다. 갑자기 죄를 지은 듯 미안한 기분이 마음 한구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하다가 눈길을 붙잡는 기사를 발견했다. "빼앗긴 로제타 스톤 돌려달라.” 이집트 정부가 영국, 프랑스, 독일에 대해 과거 약탈해 간 유적들을 반환하라고 요구했다는 기사였다. 갑자기 죄를 지은 듯 미안한 기분이 마음 한구석에 돋아났다. 조금 심하게 표현하자면 도둑 집에 초대받아 밥 얻어먹고는 찜찜해 하는 격이라고나 할까.

지난 주 런던 출장 때 시간을 쪼개 취재팀 전원이 대영 박물관을 찾았던 기억이났기 때문이었다. 일주일을 돌아봐도 모자란다는 박물관을 바쁜 일정을 틈타 한 시간에 주파하려니 팜플렛에 나오는 “대표 선수”들만 주마간산으로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대표 선수들 가운데 으뜸이 바로 문제의 로제타 스톤이었다. 무려 700 kg이 넘는 돌 판에 이집트어를 비롯한 여러 가지 다른 언어로 된 문장을 조밀하게 새겨 놓았다. 각 언어의 단어와 단어가 직접 비교돼 고대 문자의 뜻을 해독하는 열쇠를 제공하기 때문에 이집트 고고학의 기념비적 발견으로 꼽히는 유물이다.

이집트에 미안하다는 느낌이 든 것은 로제타 스톤 반환 요구에 대한 대영 박물관측의 답변 때문이었다. “세계의 유수한 유물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전 인류에 계속 제공해야 한다” 결국 나 같은 관광객이 로제타 스톤을 이집트에 돌려주지 않는 핑계거리가 된 셈이었다.

그러고 보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같은 나라들의 박물관은 말이 박물관이지 장물아비 창고나 다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런던 어느 박물관에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14세기 중반의 초기 르네상스 회화 컬렉션이 있다”는 말을 알기 쉽게 풀자면 “이 박물관은 이탈리아 플로렌스와 베네치아에서 엄청 훔쳐온 작품들로 가득 차 있다”는 뜻이 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이집트관만 해도 그렇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관람객을 집어 삼킬 듯이 압도하는 거대한 전시관이다. 미이라 같은 것은 말 그대로 널려 있고 심지어 거대한 석조 건축물을 통째로 뜯어 와 전시해 놓기도 했다.

통째로 뜯는 재주로 따지면 영국도 뒤지지 않는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이 왜 저렇게 기둥만 남았나 했더니 나머지는 영국 사람들이 다 뜯어다가 대영 박물관에 고스란히 복원해 놓은 탓이었다.

박물관 얘기를 이어가다 보니 프랑스가 우리나라에 떼제베를 팔아 보려고 대뜸 제안했던 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가 생각난다. 대통령끼리 약속하고 정부 문서로 남은 것을 박물관 학예사라는 사람 몇이 결사 반대한다고 해서 못 주겠다고 외면하는 프랑스의 문화적 욕심이 얄미우면서도 부러웠다.

반면 이탈리아는 무솔리니가 에티오피아에서 약탈해 왔던 오벨리스크를 올해 자진해서 반납했다고 한다. 세상에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에서 “자진”이 어디 있겠는가. 다 무슨 속셈이 있겠지. 하지만 속셈이 무엇이든 그런 정책을 용인하는 국민 정서가 놀랍다. “도처에 널려 있는 유물 가운데 오벨리스크 하나 돌려준다고 해봐야 흔적도 안 남는데 생색이나 좀 내지” 정도의 자부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프랑스 같은 욕심도 이탈리아 같은 자부심도 없다. 일본이 빼앗아 간 그림 몇 장, 도자기 몇 점이나마 되찾아 보려고 자기 돈 쓰며 동분서주하는 일부 뜻있는 사람들이 일하기 어려운 이유가 따로 없다. 박물관은 지루하고 고급 문화는 “그들만의 것”이라고 여기는 천박함을 두고 무얼 바랄 수 있을까. 하긴 요즘은 문화도 돈이라니 정부 말대로 국민소득이 2만 달러 넘어서면 좀 달라질 지도 모르겠다. 하다 못해 남는 돈 투자하는 셈으로라도 문화에 관심을 기울일 테니까.

돈 얘기 나온 김에 한가지 덧붙이자. 자기 문화에 대한 투자로 따지면 역시 일본이 압권이다. 일본이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면 지난해 새 건물로 다시 개관한 뉴욕 현대 미술관에 가 보시라. 입구부터 꼭대기까지 엔화 냄새가 절절 흐른다.

현대 세계 미술의 흐름을 대표하기에는 뭔가 미흡해 보이는 일본의 회화와 조각과 건축 작품들이 층마다 눈에 띤다. 아무리 미국의 미술관이라지만 일본 돈으로 기둥을 올린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히로히토의 일본이 진주만까지 불사르고도 결국 실패한 일을 아키히토의 일본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서서히 해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