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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탄광에서 번돈으로 구멍가게를 차리겠다던 꿈도 잠시, 부친일을 돕던 형님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그는 다시 옹기 가마터로 돌아왔습니다.
[유수봉/양협토기대표 :
(형님 장례 치르러) 내려와서 돌아가려고 했는데 동생들이 엄청 말리더라고요. 내가 안하면 공장이 완전히 없어지는 거니까 한번 맡아서 해보라고..그래서 주저 앉게
됐어요.]
일년 후, 장작가마에 불을 때다가 실수로 불이 나는 바람에 순식간에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또 다시 닥친 시련에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유수봉/양협토기 대표 :
이 참에 그만둘려고 했는데 매제랑 동생들이 많은 도움을 주더라고요. 또 나 자신도 막 일어나려고 하는 참에 그런일을 당하니까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가업이 끊길 위기를 이겨낸 힘은 가족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논밭을 잡혀서 마련해
준 재기자금 6천만원으로 장작가마 대신 기름가마로 바꿨습니다 .
1200도 고온에서 잘 익은 옹기가 경쾌한 쇳소리로 화답합니다.
가마에 백개의
옹기를 넣으면 그 중 일흔개 정도가 성공합니다 .
부친 권유로, 일찌감치 옹기장이의 길을 선택한 아들은 가마에 불때는 일을 배우며 6대째 대물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유상근/3년전부터 옹기 수업중 :
대를 이어서 여기까지 해왔으니까 그만 두기엔 아깝잖아요. 대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플라스틱과 스텐레스에 이어 5년전부터 김치 냉장고 바람이 불면서 가정용 생활옹기는 점점 수요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유사장은 인테리어 소품용 옹기에 기대를 거는 한편 일본시장 진출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시장에서 우리 옹기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난생 처음 ,옹기장이로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유수봉/양협토기 대표 :
일본사람들이 저를 잘 안믿더라고요.처음엔..그런데 술이 숙성이 잘되고 맛이 있더라는 거에요.]
5대째 옹골차게 옹기의 전통을 이어온 부자의 꿈은 사라져가는 옹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전통가마 체험관을 세우는 것입니다 .
흙의 생명력이 살아 숨쉬는 옹기야말로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끈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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