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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는 무고한 대중을 향해 "당신의 일상은 이제 더이상 어제 같지 않다"는 선고를 내리는 것이다.
그 선고가 노리는 것은 공포효과다. 수십년을 매일 같이 오가던 출근 길을 오늘부터는 무심코 걸을 수 없다는 은근하고 무거운 공포다.
런던 폭탄 테러는 그런 면에서 아주 효과적으로 수행된 플랜이다. 출근 시민으로 붐비는 시각을 이용했다는 점, 런던의 명물인 지하철과 2층 버스를 타겟 삼았다는 점, 그리고 시내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도시의 상징인 것과 동시에 일반 시민들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계된 대상을 노린 수완은 911 테러보다 한 수 위다.
이런 상념을 수첩에 끄적이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 새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런던, 2005년 7월 8일 8시. 참혹한 테러가 발생한 지 만 하룻 만에 나는 911 이후 과거의 뉴욕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옛 대영제국의 고도 런던도 이제 볼 수 없으리라는 아쉬움을 안고 공항 터미널을 빠져 나왔다.
보나마나 버킹컴 궁 앞에는 장갑차와 바리케이드가 관광객의 시선을 제압하고 있을 것이고 지하철이든 대영 박물관이든 공공장소의 입구마다 투박한 금속 탐지기가 문지기를 대체했을 게 분명했다. 테러를 당한지 4년이 지난 뉴욕과 워싱턴도 여전히 그러니까. 하지만 출근길 정체를 뚫고 들어선 런던 시내는 나의 선입관을 비웃고 있었다.
사건 발생 24시간이 못돼 대부분 지하철이 다시 개통됐고 도로 곳곳에 빨간 2층 버스가 시민들을 분주히 실어 나르고 있었다. 무슬림들이 모여 사는 거리에 逆 테러를 우려한 경비 경찰이라도 볼 수 있겠거니 했지만 business as usual 이 전부였다.
호텔에 도착하자 마자 텔레비전을 켰다. BBC1, BBC2... 채널을 돌리면서 테러 사건 속보를 찾았지만 아침 교양 프로그램이나 낡은 영화 뿐이다. 프론트에 전화를 해 혹시 뉴스 채널이 따로 있나 물었다. "지금은 뉴스 시간이 아닙니다." 프론트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서울에서 시청역과 종각역을 비롯한 지하철역 세군데가 테러집단의 공격을 받아 700명의 사상자가 났으면 우리 뉴스가 어땠을까 궁금했다. 아니 궁금하지 않았다. 적어도 사흘은 방송을 통째로 열어 뉴스 특보를 진행했을 게 뻔하니까.
런던 시민들의 이런 침착한 대응에는 이유가 있었다. 10년 전까지 시내 곳곳에서 빈번하게 벌어졌던 북아일랜드 공화군의 테러에 익숙해진 면이 컸다.
잇딴 테러의 교훈은 간단했다. 흥분하면 진다는 것이다.
테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건 발생 불과 사흘만에 버킹검 궁 앞에서는 2차 대전 승전 기념 행사가 거대하게 열렸다. 행사장에 별다른 경비병력도 보이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비롯한 왕실 인사들이 수만명이 운집한 광장에 모습을 드러내 행사를 지켜봤다.
길에서 영국군 장교복을 입은 한 신사를 만났다. 2차 대전 참전 군인의 아들인데 오늘 행사에서 아버지 부대의 기수를 한다고 했다. 행사의 의미를 물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무차별 폭격을 견디고 승전했듯이 누가 어떤 무기를 들고 위협해도 여왕 폐하는 건재하고 영국인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과시하는 행사입니다." 교과서적인 대답을 어찌나 진지하게 하는지 내가 오히려 머쓱했다.
나흘간의 출장을 마치고 많은 생각을 하면서 다시 히드로 공항으로 향했다. 나흘동안 끊임없이 던졌던 질문을 다짐하듯 택시 기사에게 또 물었다.
"큰 사건이 났는데 시민들이 참 침착하군요."
"We have to carry on. We can't let them win"
(일상대로 살아가야지요. 그 자들이 이기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비행기에 타 몇시간을 무심코 그 대답을 되뇌며 졸고 있는데 익숙한 기내 안내 방송이 들린다. "워싱턴 레이건 공항 도착 30분 전입니다. 미국 국토안보부의 대 테러 보안 규정상 지금부터는 착륙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실 수 없습니다."
어느 새 그 칙칙하고 호들갑스러운 도시에 다시 돌아온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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