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타임스의 주디스 밀러 기자의 구속을 계기로 취재원 보호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봤습니다. 밀러 기자가 법정 모독죄로 구속된 것이 지난 6일이니 벌써 일주일이 됐군요. 아시다시피 자신에게 CIA 요원의 이름을 알려준 사람이 누구인지 증언하라는
뉴욕 타임스의 주디스 밀러 기자의 구속을 계기로 취재원 보호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봤습니다. 밀러 기자가 법정 모독죄로 구속된 것이 지난 6일이니 벌써 일주일이 됐군요. 아시다시피 자신에게 CIA 요원의 이름을 알려준 사람이 누구인지 증언하라는 판사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 구속 이유였습니다.
미국의 경우 법정에서 판사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본안과는 상관없이 강한 처벌을 받게 됩니다. 민사소송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테면 자료제출 명령을 거부할 경우에도 곧바로 형사 처벌을 받게 되는 거죠. 이 때문에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 가운데는 이런 미국식 사법제도를 상당한 위협 요소로 보고 있더군요. 겁이 나서 함부로 소송을 못한다는 겁니다. 판사가 각종 경영자료 등을 공개하라고 할 경우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죠. 특히 국내 본사의 자료까지 내놓으라고 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본론으로 다시 돌아가서, 기자는 취재원을 어디까지 보호해야 할까요. 흔히 취재원 보호는 기자의 직업 윤리라고 합니다. 밀러 기자도 이러한 취재원 보호라는 직업 윤리를 지키기 위해 구속을 감수한 것이죠.
저도 15년째 기자생활을 하면서 몇 차례 취재원 보호 문제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벌써 상당한 시간이 지난 이들이긴 합니다. 첫 번째 기억에 남는 사례는 한 호텔의 슬롯머신 업소의 뇌물 상납 사건이었습니다. 제보를 한 분도 직접 그 일에 관련된 분이었는데 용기를 내어 제게 자료를 건넸고 스스로 처벌을 감수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일로 당시 인천지검 직원도 구속됐는데 당시 인천지검은 자진 출석한 저의 제보자를 구속해 버리더군요. 제가 이 분을 어떻게 한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취재원 보호에 실패한 사례로 남아있습니다.
다음은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분유에서 발암물질을 검출해 놓고 이를 은폐하고 있던 사건입니다. 당시 후배인 김승필 기자와 함께 취재를 했는데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났었습니다. 저희가 알지도 못하던 사람이 스스로 저희들의 꼬임에 넘어가 자료를 훔쳐 건네줬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지요.
이 일로 김승필 기자는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기까지 했습니다. 저희의 취재원을 자처했던, 그러나 저나 김승필 씨는 알지도 못했던 이 사람은 법정에서도 자신이 취재원이라는 주장을 계속해 결국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물론 실제 저희의 취재원은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았습니다. 일이 이상하게 꼬이긴 했지만 이 사건은 취재원 보호에는 성공한 사례입니다.
세 번째는 저의 모교 교수와 벌였던 5억원 짜리 소송 건입니다. 지금 회사 정책팀에 있는 엄재용 기자와 함께 모교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사건을 보도했었는데 언론중재에 형사 진정, 손해배상 소송을 줄줄이 제기하면서 취재원 공개를 요구했습니다. 취재원이 누구 아니냐, 그것만 확인해주면 당신들을 괴롭힐 이유가 없다... 이런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와 엄재용 기자는 취재원을 끝까지 보호했고, 명예훼손이라는 진정과 관련해서는 검찰 조사까지 받았고 소송 대응하느라 고생은 했지만 역시 취재원 보호라는 측면에서는 성공 사례입니다. 당시 취재에 도움을 준 분들은 여전히 ‘안전하게’ 자신들의 생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이렇게 뒤의 두 사례에서 취재원 보호를 하고도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사법제도 덕분이기도 합니다. 만약 요즘 유행처럼 되어버린 미국식 사법제도가 예전에 도입됐더라면 법원은 저나 김승필, 엄재용 기자를 법정으로 소환해 증언을 명령할 수 있었을 겁니다. 물론 저희들이 거부하면 장기간에 걸친 구속을 피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나마 그런 제도가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각종 소송이 남발되다 보니 이런 취재원 보호 문제에 조금 무신경한 경우도 간간이 들립니다. 당상 급한 불을 끈다며 취재원을 알려주는 경우도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취재원 보호는 기자가 사실(팩트)에 접근하기 위한 열쇠와도 같은 것입니다. 이 열쇠를 잃으면 기자는 항상 홍보 담당자가 정리해주는 것만 기사로 쓰는 대서소 같은 일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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