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 안녕하세요. 영국 로열 발레단이 지난주 서울을 다녀갔습니다. 10년만의 내한공연이었다지요. 대표작 신데렐라와 마농을 선보였습니다. 저는 DVD로만 접했던 영국 로열 발레단의 공연을 무대에서 직접 본다는 생각에 기대가 아주
영국 로열 발레단이 지난주 서울을 다녀갔습니다. 10년만의 내한공연이었다지요. 대표작 '신데렐라'와 '마농'을 선보였습니다. 저는 DVD로만 접했던 영국 로열 발레단의 공연을 무대에서 직접 본다는 생각에 기대가 아주 컸습니다.
신데렐라-뜻밖의
해프닝
프레데릭 애쉬톤이 안무한 '신데렐라'는 고전발레의 형식에 충실하면서도 신데렐라의 두 언니를 남자 무용수에게 맡기는 등 익살과 해학을 더해 경쾌하게 안무한 작품이었습니다. 무대도 예쁘고, 화려한 군무도 볼만했지만, 저는 좀 아쉬웠습니다. 주역 무용수들의 춤에 매력이 덜했기 때문입니다. 안무 자체가, 뭐랄까, 너무 교과서적이랄까, 단순하다고 할까요. 춤이 인간의 희로애락과 감정선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데는 좀 미흡해 보였습니다.
게다가 '신데렐라' 첫날 공연에는 무대 장치가 엉키면서 공연이 15분간 중단되는 해프닝까지 있었습니다. 저는 첫날 공연 보러 갔다가 갑자기 일어난 공연 중단 사태에 잔뜩 긴장해야 했습니다. 혹시나 중단사태가 길어져 관객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대거 환불을 요구하는 상황이 될까 싶어 카메라 기자를 부르고, 원인을 취재하고, 회사에 보고하고 하느라 공연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무용수들도 불안했는지 실수가 잦았습니다. 제가 '신데렐라'에 상대적으로 깊은 인상을 못 받았다면 그런 원인도 클 것입니다.
신데렐라는 영국 밖에서 공연된 적이 이전에는 없었다고 합니다. 무대장치를 새로 옮겨서 설치하고 하느라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다행히 무대장치가 엉킨 것일 뿐 사람이 다치거나 하는 사고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로열 발레단으로서도 공연 지연이라는 해프닝이 별로 자랑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관객들은 별 동요 없이 끝까지 공연을 잘 관람하고 격려의 박수도 보내줬습니다. 로열 발레단은 감사와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마농-이래서
'명불허전'
로열 바레단의 진가를 보여준 작품은, 저로서는 '신데렐라'보다는 '마농'이었습니다.비록 '마농'은 취재 때문에 시간이 안 맞아 1막이 끝난 뒤부터 볼 수밖에 없었지만, 전막을 다 본 '신데렐라'보다 훨씬 포만감이 컸습니다. 케네스 맥밀란의 안무에 대해서는, DVD로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그의 작품을 봤던지라, 많이 기대를 했었고, '마농'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사치와 향락에 들뜬 파리에서 미국 루이지애나의 황량한 늪지대까지 생생하게 표현해낸 무대장치도,화려한 의상도, 모두 좋았지만, 무엇보다 '극적인 안무'가 빛났던 것이지요.
제가 봤던 마지막 날은 로열 발레단의 스타 다시 버셀이 신데렐라에 이어 또다시 주역을 맡았습니다. 버셀은 첫날 '신데렐라'에서보다 이 날 훨씬 더 돋보였습니다. 조각 같은 몸매로 우아함과 관능미를 함께 뽐낸 버셀이 두 아이의 엄마라니(이 대목에서 또 제가 친근감을 안 느낄 수가 없습니다^^), '아줌마 만세!!'입니다.
마농은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풍기는 여인입니다. 현실적이고 계산적이지만, 앞 뒤 안 가리는 열정에 빠져듭니다. 부와 화려함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파멸에 이르는 비극적인 사랑에 자신을 바친 마농, 그 복합적인 캐릭터를 버셀은 생생하게 표현해 냈습니다.
특히 처절하면서도 관능적인 3막의 2인무는 압권이었습니다. 루이지애나의 습지로 함께 도망친 마농과 데 그리외. 극도로 쇠약해진 마농은 비틀거리며, 곤두박질치며, 쓰러지며, (이 춤에서 취해서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같은 '그랑파 데브리스'라는 발레 용어가 탄생했다고 합니다) 춤추고 또 춤춥니다. 데 그리외는 이미 죽음으로 향하고 있는 마농을 삶의 세계로 돌려놓으려 애쓰지만, 그의 처절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농은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맙니다. 절규하는 데 그리외. 아! 어떻게 이런 장면을 춤으로 표현해낼 수 있었을까. 제 가슴은 마구 아파왔고, 어느새 눈물이 고였습니다.
막이 내렸는데도, 저는 바로 박수를 치지 못했습니다. 마농의 처절한 사랑과 죽음, 그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탓이었지요. 커튼 콜. 조금 전 숨진 마농과 절규하던 데 그리외가 다른 무용수들과 함께 멀쩡한 모습으로 서서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주역 무용수들이 따로 나와서 인사할 때, 저는 오랜만에 주저 없이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마농'은 7월 5일과 6일,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에서도 공연됩니다.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마음 같아서는 당장 휴가를 내고 대전으로 달려가고 싶습니다. 이구동성 '환상적'이었다고 전한 ‘마농’의 1막 침실 2인무까지, 마저 보고 싶습니다. 영국 로열 발레단, 과연 '명불허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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