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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천후를 뚫고 인간승리를 일구기까지 그의 생명을 지킨 주인공은 장안의 혼이 서린 국산 수제 스키화였습니다.
[산악인/허영호 :
남극점, 북극점 다 송림제화 신발신고 우리 대한민국 국기 다 꽂았는걸요 뭐.]
산악인들 사이에서 수제 등산화 명가로 소문난 송림제화 !
푸른 소나무숲이란 이름처럼 69년을 오롯이 한자리를 지킨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신발가게입니다.
등산화와 특수화 전문점인 송림은 지난 96년 창업주 이귀석옹이 작고한뒤 차남 이덕해씨가 뒤를 잇고 있습니다 .
신발은 당시만해도 전망있는 사업이 아니었습니다.
가업을 잇겠다고 마음을 먹기까지 적지 않은 갈등을 겪었지만 장애우와의 만남을 계기로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
[이덕해 대표/송림제화 :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신발이라고 굉장히 고맙게 여기고 계속해서 이 사업을 해달라고 부탁도 하고...]
이런 가업승계에는 창업주와 함께 송림을 이끈 고종 사촌형 임효성씨의 힘도 컸습니다.
반세기에 걸친 세월을 신발과 함께 살아온 그는 발만 봐도 고객의 속내를 읽을 정도입니다.
창업 초창기부터 송림은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장애우들의 특수화를 제작해왔습니다.
최근 기성화에 밀리면서 주력상품이 된 장애인 신발은 전국 각지에서 손님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가 높습니다.
[송경춘/3년 단골 : 저는 평범한 신을 신으면 피곤해서 걷지를 못해요. 이걸해 신고나서 부터는 제가 너무나 편하고 너무 행복하죠.]
충격흡수 기능이 뛰어나서 송림의 비법으로 통하는 천연콜크 중창은 임효성씨 작품입니다.
신발 한컬레 만드는데 10가지 공정에 꼬박 하루가 걸립니다.
직원 6명이 온종일 매달려도 10컬레도 못만듭니다.
더디가는 걸음이지만 그는 부친이 물려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신발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이 길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창업주 이귀석옹은 신사화로 출발해서 당시 등산화로 유행하던 영국 군화 밑창을 갈아주다가 미끄럼을 방지하는 고무밑창을 개발했습니다 .
송림의 가보로 이어져 오고 있는 쇠창틀은 지난 1963년 첫 선을 보인 국산 수제 등산화 1호의 산증인입니다.
그 후 방수비법을 개발하면서 송림은 등산화 명가로 입지를 굳혔습니다 .
70년대초, 송림 등산화 한컬레 값이 사천원에서 만팔천원선이었습니다 .
당시로선 목돈이었던 만큼 등산화계가 유행할 정도로 명성을 누렸습니다 .
[허영호/산악인 :
등산화 하나 가지면요. 잠도 안자고 머리맡에 놓고 자고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국산 등산화 개발로 명성을 얻자 주위의 유혹이 많았지만 이옹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덕해 대표 /송림제화 : 자기 분수를 알았던 분이에요. 더 확장을 하고 수출을 하라 그러고 명동같은데 진출하라 그래도 다른분들은 명동같은데 진출시키고 본인은 이 자리를 고수했어요.]
평생 신을 신발을 만들겠다던 창업 초기의 다짐을 지킨 그의 장인정신은 고객들의 신뢰로 이어져서 오늘까지 명맥을 유지해온 비결일 것입니다.
그러나 기성화의 저가공세가 날로 거세지는 요즘 송림은 특수화와 찾아가는 서비스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초고속 성장신화가 난무하는 시대에 70년 가까이 이어져온 송림제화의 한우물 경영에서 우리나라도 오래된 가게...노포가 맥을 이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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