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타나. 야구팬들이 롯데 에이스 손민한에게 붙인 별명입니다.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수상자 요한 산타나의 이름을 따서 붙인 명예로운(?) 닉네임이지요. 광속구가 없어도 절묘한 제구력과 현란한 변화구, 영민한 수싸움으로 상대 타자를 바보로 만
요즘 한국 프로야구의 '3대 에이스' 논쟁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더군요. 오랜만에 등장한 손민한, 배영수, 박명환-'도미넌트 에이스'들의 모습은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이 글에선 이 가운데 올시즌 가장 꾸준한 페이스를 보이고 있는 손민한 투수를 중심으로 '에이스 전쟁'을 조명해 보려고 합니다. 세이버메트릭스의 관점으로도 여러모로 흥미로운 면이 많더라구요.
1. 전에도 한번 소개한 적이 있는데, 지난 2001년에 세이버메트릭스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글이 발표됐습니다. 'www.baseballprospectus.com'에 실린 보로스 맥크래캔이라는 공대생의 논문이었는데요, 이 글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에게, '인 플레이된 타구'가 안타가 되는 걸 막는 능력의 차이는 별로 없거나 아예 없다.
There is little if any difference among major-league pitchers in their ability to prevent hits on balls hit in the field of play"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인 플레이된 타구'란 '수비수가 수비를 해야 하는 타구'와 동의어입니다.타자가 친 타구가 홈런이 되거나 관중석으로 넘어가 파울이 되지 않으면 '인 플레이된 타구'가 되지요.
이런 '인 플레이된 타구'가 '안타'가 되는 걸, 다른 투수들보다 더 잘 막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선수가 없다는 거죠.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 뛰어난 투수-예를 들어 랜디 존슨의 공을 치면 빗맞아서 범타가 될 가능성이 높죠. 만만한 투수의 공은 잘 맞아서 안타가 될 가능성이 높구요.
그런데 보로스 맥크래캔은 이 상식을 뒤엎은 거죠. 가령 랜디 존슨이 '인플레이된 타구'를 범타로 유도할 수 있는 능력은,가즈히사 이시이의 그보다 높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지난해 랜디 존슨의 '인 플레이타구의 안타 확률 (BIPA : Ball In Play Average)'은 이시이의 BIPA보다 높습니다.
너무나 '비상식적인' 주장이었기에 격렬한 논쟁이 뒤를 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어느 정도 결론이 난 상태입니다. '인플레이된 타구를 범타로 유도하는 능력은 존재한다. 하지만 투수별로 그 능력차는 무시해도 될 만큼 작고, 시즌별로 널뛰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게 현재 세이버메트릭스계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만약 어떤 투수의 BIPA가 다른 투수들보다 지나치게 낮거나 높다면,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ㄱ. 행운 : 세이버메트리션들은 낮은 BIPA의 가장 큰 이유가 행운이라고 말합니다.어떤 시즌에서 BIPA가 지나치게 낮은 투수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투수는 안타를 덜 허용했기에 방어율도 낮고, 승수는 높았을 가능성이 높겠죠. 세이버메트리션들은 다른 지표가 특출한 게 없는데 BIPA가 낮아서 성적이 잘 나온 투수들은 다음 시즌에 성적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소위 '운빨'이 계속 유지될 수는 없다는 거죠.2003년 'BIPA 10걸' 투수들 가운데, 다음 시즌에 방어율이 낮아진 투수는 한 명(제이크 피비) 뿐입니다.
ㄴ. 동료들의 뛰어난 수비 : '인플레이된 타구'란 '야수들이 수비를 해야 하는 타구'와 동의어잖아요. 당연히 야수들의 수비 능력이 뛰어나다면 '인플레이된 타구가 안타가 될 확률'도 줄어들겠죠. 실제로 수비가 좋은 팀의 투수들은BIPA가 낮은 경향이 있습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최강의 수비진으로 평가됐던 LA 다저스의 야수들은, 동료 투수 세 명을 'BIPA 10걸' 안에 포함시켜 줬습니다.
2.'인플레이된 타구를 범타로 유도하는 능력'이 행운이거나 동료들의 도움에 불과하다면... 투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위에 쓴 것처럼, '인플레이된 타구'란 '야수가 수비를 해야 하는 타격 결과'와 동의어입니다. 그러면 '야수가 수비를 할 수 없는 타격 결과'도 있겠죠. 삼진, 사사구, 홈런이 그것입니다. 즉 삼진, 사사구, 홈런은 '야수는 책임이 없고, 오직 투수 혼자서 책임을 져야 하는' 타격 결과입니다.
'야수가 개입하는 타격 결과'에 대해 투수가 할 수 있는게 없다면, 투수는 '혼자서 책임지는 타격 결과'에 대해서만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겠죠. 앞에서 '투수 혼자서 책임지는 타격 결과'가 삼진, 사사구, 홈런 세 가지라고말씀 드렸죠? 그렇다면 투수의 임무는 이런 거겠죠.
ㄱ. 삼진을 늘린다
ㄴ. 사사구를 줄인다
ㄷ. 홈런을 줄인다
3. 잘 아시는 것처럼손민한은 삼진을 특출나게 많이 잡는 투수는 아닙니다. 데뷔 9년 동안 삼진 5걸 안에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죠. 고로 '과제 ㄱ : 삼진을 늘려라'는 그다지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하는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과제 ㄴ'에서 손민한은 단연 돋보입니다. 9이닝당 볼넷수가 1.87개에 불과하죠. 2.64개의 배영수, 4.78개의 박명환을 압도하는 수치입니다.
앞선 글에 등장했던 '주자상황-득점 가능성'표에 의해 계산하면 사사구 하나는 약 0.33점의 득점 가치를 가집니다. 그렇다면 손민한은 박명환에 비해 '사사구에 의해 발생하는 득점'이 0.9점 가량 적은 셈이죠.
4. 위에 적은 투수의 세 가지 과제 중 세번째, 즉 '홈런을 줄인다'는 항목은 손민한의스탯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26일 현재,손민한의 피홈런수는 7개. 14이닝당 한 개꼴이니까 그리 많이 내주고 있는 건 아니지만 배영수(3개), 박명환(0개)에 비해서는 확실히 많은 홈런을 내줬습니다.
그런데 과연 '앞으로 홈런을 허용할 잠재적 가능성'에 있어, 손민한이 다른 두 투수보다 높은가 하면...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홈런을 줄이는 방법은 확실한 게 하나 있습니다. 타구를 땅볼로 유도하는 거지요. 땅볼이 홈런이 될 가능성은 플라이볼이 땅볼이 될 가능성보다 무지하게 낮으니까요. 홈런 뿐만이 아니라 장타도 줄이는 효과가 있습니다.아무래도 땅볼보다는 플라이볼이 장타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손민한이 '박-배'와 비교해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바로 이 '땅볼 유도'입니다. 손민한의 '땅볼/플라이볼' 비율은 2.17. 즉 플라이볼 하나 당 땅볼을 2.17개 유도한다는 이야기지요. 배영수의 1.159, 박명환의 1.01에 비해 확실히 높은 수치입니다. 싱커볼러들이 득실대는 메이저리그에서도 2.17이라는 '땅볼/플라이볼' 비율은 전체 9위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올시즌 땅볼투수로 변신한 코리안특급 박찬호의 '땅볼/플라이볼' 비율도 1.62로 손민한보다 낮습니다.
5. 현재 손민한의 성적은 12승 2패, 방어율 2.36입니다. 방어율은 박-배보다 0.04 뒤질 뿐이고, 승수는 박명환보다 2승, 배영수보다 4승 많지요. 단연 올시즌 현재까지 최고 투수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손민한은 올시즌 남은 기간 동안 박-배를 능가할 수 있을까요?
위에서 '낮은 BIPA 때문에 성적이 잘 나온 투수는 성적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씀드렸습니다.바꾸어 말하면 BIPA가 높은 투수는, 이후 성적 향상을 기대해봄직 하다는 거죠. 현재 세 투수의 BIPA는 이렇습니다.
배영수 : 0.250
박명환 : 0.235
손민한 : 0.230
박-손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고, '박-손'과 '배'의 차이는 조금 벌어져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BIPA가 '운에 좌우된다'는 명제만 놓고 보면, 셋 중에서 가장 성적이 향상될 가능성이 높은 투수는 배영수라는 거죠.
6.여기서 하나 더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BIPA는 '행운' 혹은 '동료 수비들의 도움'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죠.즉 수비가 좋은 동료들이 인 플레이된 타구를 더 많이 아웃으로 연결한다면, 투수의 BIPA는 내려가게 됩니다.
'수비력'은통계적 측정이 매우 힘든 영역으로 꼽힙니다. 한국에서는 '실책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예전에 한번쓴 것처럼, '실책'은 수비력 측정에 별반 도움이 안되는 수치입니다. 수비 범위가 넓은 선수 혹은 팀일수록 실책숫자가 늘어나게 마련이거든요.
세이버메트릭스에서는, '팀 수비력'을 측정할 수 있는 툴로 'Defensive Efficiency'란걸사용하기도 합니다.Defensive Efficiency는 BIPA의 반대 개념으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까. 즉 '수비 가능한 타구 즉 인플레이된 타구' 가운데 '얼마나 아웃으로 연결시켰나' 하는 개념입니다. 식으로 나타내면 이렇습니다.
Defensive Efficiency=(전체 아웃카운트-삼진)/(전체 타석-삼진-사사구-홈런)
이 식을 통해서 구해 본 삼성-두산-롯데 세 팀의 Defensice Efficiency는 다음과 같습니다.
삼성 : 0.723
두산 : 0.698
롯데 : 0.695
수비의 중요성을 누누히 강조하는 선동열 감독의 철학처럼, 삼성의 수비력이 다른 두 팀을 능가하고 있네요. 만약 배-손-박이 똑같이 100개씩의 '인 플레이된 타구'를 허용한다면, 배영수는 '손-박'이었으면 안타로 기록됐을 타구를 세 개 정도는 동료들의 도움으로 아웃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7. 여러모로 볼 때, 올시즌 내내 전개될 '에이스 전쟁'에서 조금 유리해 보이는 쪽은 배영수 같습니다. 하지만 모 해설위원의 유명한 말처럼, '야구, 몰라요...'. 하긴 누가 알겠습니까. 배영수의 무릎이 계속 말썽을 부릴지, 양배추를 못쓰게 된 박명환의 투구는 어떻게 변할지, 소주를 좋아한다는 손민한의 속이 탈을 부리지는 않을지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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