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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아스카니우스

김문환

입력 : 2005.06.14 17:41

지중해 문명기 4권BR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7장. 아에네이드와 로마의 건국 BR 1. 베르길리우스와 아에네이드 2. 아에네아스, 트로이 탈출 3. 카르


-- 지중해 문명기 4권--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7장. 아에네이드와 로마의 건국


1. 베르길리우스와 아에네이드

2. 아에네아스, 트로이 탈출

3. 카르타고와 디도

4. 아스카니우스--오늘 이야기

5. 로물루스와 레무스, 로마건국

6. 부르투스와 공화정

7. 옥타비아누스와 황제정

4. 아스카니우스

 

◆1. 로마의 탯줄 알바롱가를 세우는 아스카니우스

 

아에네아스는 트로이에 살 때 프리아모스왕과 왕비 헤카베 사이에서 태어난 적통 공주 크레우사와 결혼했다. 둘 사이에서 한명의 아들이 태어났으니, 아스카니우스다. 아카이아 연합군의 목마 작전이 성공하고, 트로이가 멸망하던 날 밤 아스카니우스는 아버지 아에네아스의 손을 잡고 트로이를 탈출한다. 그러나, 그날밤 어린 아스카니우스는 가슴속에 큰 상처를 입는다. 어머니 크레우사의 실종. 아버지 아에네아스가 할아버지 안키세스를 업고, 자기 손을 잡고 도피하느라 어머니 크레우사를 돌보지 못한 것. 어머니를 잃고 무려 7년간 아버지 아에네아스의 손에 이끌려 지중해 각지를 방랑한 아스카니우스. 이곳 저곳을 떠돌며 숱한 고초를 겪는다. 바다 한가운데서 배가 난파 당해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여러번이다. 이런 고난의 행군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던 할머니 아프로디테. 제우스에게 읍소하기로 마음 먹는다. 베르길리우스가 지은 [아에네이드]에는 이 대목이 자세히 그려진다.

 

라티움 도착. 로마시대 부조. 아에네아스가 아들 아스카니우스의 손을 잡고 라티움에 도착하는 순간을 그렸다. 돼지가 나와 마중하는 장면에서 라티움이 낙후된 농촌 지역이었음을 말해준다.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아프로디테가 제우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손의 무사를 빈다. "전능하신 제우스여! 제 아들 아에네아스와 트로이 사람들이 당신께 무슨 큰 잘못을 했는지 말씀해 주세요. 말씀 못하시는 걸 보니 큰 잘못이 없는 것인가 보군요. 그런데 왜 그들에게 그렇게 큰 시련을 안기시나요? 배를 난파시켜 숱한 사람들이 바다 한가운데서 사라졌습니다. 언젠가 말씀 하셨죠. 트로이가 멸망하면 그 후예들이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신다고요. 그런데 지금 그 약속을 잊으셨나요?"

 

제우스 왈(曰) "사랑스러운 아프로디테여! 서운하게 생각 말라. 내가 그대 자손에게 해준 약속을 어찌 잊었을 손가? 아들 아에네아스 문제로 많은 신경을 쓰는 모양인데 그러지 않아도 된다. 그대의 아들 아에네아스는 많은 싸움을 벌인 뒤에 3번의 여름이 지나면 왕으로 옹립될 것이다. 참 아에네아스의 아들도 있지? 일루스(Illus)라고 부르던 이울루스(Iulus) 말이야. 아스카니우스. 그 애는 아버지가 세운 라비니움을 벗어나 알바 롱가(Alba Longa)를 튼튼한 요새로 만들 게 되지. 그리고, 아버지 아에네아스를 이어 무려 30년간 왕의 자리를 지킬 것인데, 내가 이를 약속해. 아스카니우스 이후에도 3백여년간 아에네아스의 자손들이 번창할 거야. 그러다 마침내는 말야. 일리아(Ilia, 레아)라는 후손이 나오는데 아주 아름다울 게 틀림없어. 그러니, 전쟁의 신 아레스가 그녀를 탐해 동침하겠지... 거기서 쌍둥이 형제가 나와. 그 형제로부터 로마족속이 본격적으로 인간 역사에 이름을 드높이게 되니... 아프로디테여! 그 정도면 되겠는가?"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연인관계였던 두사람. 그러나, 두사람은 동시에 로마인의 조상이 되는 것으로 [아에네이드]에는 기록된다. 아프로디테는 아에네아스의 어머니이고, 아레스는 아에네아스의 후손인 일리아라는 여인과 관계해 아들을 낳는다. 루브르 ⓒ김문환

아프로디테는 처음 기뻐하는 모습에서 갑자기 짜증난 듯 이맛살이 약간 찌푸려지는 표정으로 바뀐다. 먼저 기쁨. 자손이 트로이를 계승해 번창한다는 게 기쁜 것이요. 다른 한편으로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최고신 앞에서 결례를 범한 이유는? 아에네아스의 후손 일리아가 전쟁의 신 아레스와 합방한다는 대목이다. 아레스는 자신과 연인관계를 유지하는 신이 아닌가? 남편 헤파이스토스가 있지만, 아프로디테는 주로 아레스와 밀회를 즐겼다. 그런데, 비록 3백년 뒤 이야기지만, 아레스가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한다는 말에 질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미의 여신이라도... 그렇다고 제우스가 정해 놓은 일정표에 화를 낼 수도 없고.

아무튼 아스카니우스는 제우스의 예언대로 아에네아스가 죽은 뒤 왕위에 올랐다. 에트루리아 사람들과 치열한 전쟁을 벌인 뒤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스카니우스는 나라의 중심을 옮겨야 했다. 아버지 아에네아스가 세운 라비니움은 양어머니 라비니아의 이름을 딴 도시. 라비니아와 같은 부족인 라티움족의 세력이 강한 곳이었다. 라비니아는 아에네아스와 사이에 실비우스라는 아들을 뒀다. 여기서 벌써 골육상쟁의 피비린내 나는 조선시대 왕권 쟁탈전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 숱한 사람이 사약을 마시고 피를 토하며 쓰러졌는데... 라비니아는 아스카니우스가 실비우스를 죽일까 봐 몸을 피하기도 했다. 라비니움에 사는 라티움족의 심기가 불편해진 것은 당연한 일. 아스카니우스는 근처에 알바 롱가라는 새로운 터전을 일궈 라비니움을 떠났다. 알바 롱가는 아에네아스가 살아 생전 흰색 멧돼지 한마리와 새끼 멧돼지 30마리를 신들에게 제물로 바쳤던 성스러운 장소로 로마(Rome)의 실질적인 출발지다. 알바 롱가를 다스리던 아스카니우스는 제우스의 예언대로 30년간 왕위에 있다가 죽었다. 그리고, 알바 롱가의 권력은 이복동생 실비우스에게 넘어갔다. 알바롱가는 나중에 로마의 터전이 됐고, 주인공들은 로마인의 직접 조상이 됐다.

 

얘기를 정리해 보면 아에네아스와 라비니아의 결혼으로 트로이와 라티움이 한 나라가 됐고, 아에네아스가 각각의 민족에서 낳은 아들 아스카니우스와 실비우스가 교대로 왕위를 차지한 뒤 그 통합 민족의 자손들이 로마를 세운 것이다. 한편, 아스카니우스와 관련된 다양한 이설도 존재한다. 아스카니우스가 로마를 세운 게 아니라 트로이로 돌아가 폐허 속에서 트로이를 재건했다든가, 죽지 않고 살아 남은 아스티아낙스(헥토르의 아들)와 함께 트로이를 되살렸다는 등의 얘기다.

 

◆2. 카이사르의 조상 아스카니우스

 

[아에네이드]를 계속 보자. 지은이 베르길리우스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제우스가 아프로디테에게 말한다. "앞으로 트로이의 훌륭한 자손으로 태어날 사람을 눈여겨 봐야 해. 카이사르라고 말야. 이울루스(Iulus)의 이름을 따 그의 이름은 율리우스(Julius)가 될 것이니. 그의 후손이 만들어 내는 왕국은 넓은 바다의 끝에 미치고, 그의 명성은 하늘의 별자리에 까지 울려 퍼지겠지. 지상에서 임무를 다한 카이사르는 때가 되면 세상사 고통을 접어 두고, 하늘 나라에 와 아프로디테 그대를 만나게 될 텐데... 갈등과 전쟁의 시대는 가고, 평화의 시대가 무르익을 것이야."

 

울고 있는 아스카니우스. 트로이 전쟁에서 다친 아버지 아에네아스가 치료를 받고 있는 동안 아들 아스카니우스가 울면서 바라보고 있다. 로마시대 프레스코. 나폴리 박물관. ⓒ김문환

바로 이것이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그리고, 그의 조카손자 뻘인 옥타비아누스. 황제 가문으로 숭배의 대상이 된 옥타비아누스와 카이사르 일족을 미화하기 위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임을 한눈에 확인하게 된다. 베르길리우스는 [아에네이드]를 지으면서 두가지 목표를 세웠다. 하나는 지중해 제국(당시 로마인들의 관점으로는 세계 제국)이 된 로마인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것. 또 하나는 제국의 초석을 다진 카이사르와 제국을 실현한 옥타비아누스를 신격화해 로마인들의 자발적인 복종과 숭배를 이끌어 내는 일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로마는 공화국의 전통을 이어갔다. 그러다, 카이사르와 옥타비아누스가 이를 깼다. 이들은 독재체제를 구축하고 나아가 세습 왕정을 꿈꾸고 있었다. 로마의 역사에서 왕정이란 상상할 수 없는 괴물이었다. 이 괴물을 현실의 구세주로 만들기 위해서는 괴물의 주인공이 될 사람들을 조상부터 미화해 신격을 부여하고 통치의 정당성을 찾는 게 필요하다. 카이사르가 하늘 나라에 가 아프로디테와 만나게 될 것이란 설정. 이는 결국, 카이사르가 아프로디테의 자손이요, 그 자신도 신이 돼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스카니우스, 그러니까 이울루스의 후손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대해 간략히 들여다 보자. B.C 100년 태어난 그는 귀족출신이지만 큰 재산을 갖고 있지는 못했다. 30대부터 공화국인 로마의 주요 관직을 선거를 통해 두루 맡기 시작했다. 다양한 관직을 거치면서 통치능력과 민중에 접근하는 방법을 익힌 그는 마침내 B.C 60년 폼페이우스, 크랏수스와 함께 1차 3두정치의 문을 열면서 로마의 실권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공화국에서 특정인 3명이 권력을 분점하는 과두정치로의 전락이었다. 개인에게는 영광이지만 공화국에게는 치욕이다. 공화주의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니 말이다. B.C 58년 식민지 갈리아(프랑스, 벨기에, 스위스)의 총독이 된 카이사르는 용감무쌍한 갈리아족을 정복하고, 라인강 너머 게르만족의 영역과 바다 건너 브리타니아까지 원정하며 명성을 쌓았다.

 

카이사르. 카이사르는 아스카니우스의 직계후손으로 [아에네이드]에는 그려진다. 로마포럼에 있는 카이사르의 동상. ⓒ김문환

B.C 53년 크랏수스가 메소포타미아에서 죽은 뒤 폼페이우스와 양자 대결로 권력구도를 압축한 카이사르. 그는 공화 전통을 깨려한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결국 원로원과 등을 지게 됐다. 원로원의 지지를 얻은 폼페이우스와는 일전을 피할 수 없었다. 마침내 군대를 해산하고 로마로 돌아오라는 원로원의 결정을 무시하고 B.C 49년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말을 남기고, 루비콘강을 넘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일단 폼페이우스가 도망가면서 로마의 실권을 쥔 카이사르는 B.C 48년 그리스의 파르살로스 전투에서 폼페이우스와 싸워 승리를 거뒀다. 로마의 독재자가 된 것이다. B.C 47년 소아시아에서 미트리다테스 왕의 아들 파르나케스를 격파한 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유명한 군대식 명구를 남긴 그는 마침내 B.C 45년 이베리아 반도에서 폼페이우스의 두 아들과 싸워 승리하면서 반대세력을 완전 소탕했다. 절대권력의 철권 통치자가 된 것이다. 로마의 공화정은 껍데기만 남았다. 공화주의의 붕괴를 한탄하던 공화주의자들은 로마의 민주주의를 위해 B.C 44년 카이사르를 암살했다.

 

끔찍한 암살로 생을 마감한 카이사르.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정력의 소유자 카이사르는 염문도 많았다. 동성애는 소문으로 그쳤지만, 숱한 유부녀들과의 불륜은 로마사회에서 유명한 안주거리였다. 천하의 미녀이자 정치인이던 헬레니즘의 수호자,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왕 클레오파트라 7세와의 연애는 가장 이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