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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베르길리우스와 아에네이드

김문환

입력 : 2005.06.01 17:56

지중해 문명기 4권BR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7장. 아에네이드와 로마의 건국 BR 1. 베르길리우스와 아에네이드오늘 이야기


-- 지중해 문명기 4권--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7장. 아에네이드와 로마의 건국


1. 베르길리우스와 아에네이드--오늘 이야기

2. 아에네아스, 트로이 탈출

3. 카르타고와 디도

4. 아스카니우스

5. 로물루스와 레무스, 로마건국

6. 부르투스와 공화정

7. 옥타비아누스와 황제정

 

1. 베르길리우스와 아에네이드

 

◆1. 베르길리우스

지중해 문명기 4권,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이야기가 드디어 종착역으로 접어들었다. 전체 7개 장 가운데 마지막 7장을 살필 차례다. 7장은 지중해 문명기 4권의 큰 제목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에서 왜 '로마의 건국'인가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트로이 전쟁과 로마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말인가? 트로이 전쟁시기로 추정되는 때는 B.C 12c 이전은 물론이고, 호메로스가 일리아드를 기록하던 때 B.C 8c 초, 나아가 [오디세이아]가 정리될 무렵에도 그리스인들은 로마라는 말 자체를 몰랐다. 그런 나라가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전설적으로 전해지는 로마의 건국은 B.C 8c 중엽인 B.C 753년. 그러니,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트로이 멸망과 로마 건국의 연관성 자체가 낯설다. 한마디로 요즘 방송에서 인기를 모아 널리 퍼진 말로 '생뚱맞다'.

 

그런데 왜 이런 설정이 가능할까? 호메로스가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아]를 노래하던 시절로부터 7백 여년 흘러 B.C 1c 로마에 살았던 베르길리우스라는 서사시인의 영향이 크다. 호메로스라는 서사시인이 그리스 도시국가라는 공화체제에서 자율적인 입장아래 민족혼을 노래한 것이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아]라면, 지중해 패권국가의 정권을 틀어쥔 독재자의 궁정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애국주의와 황통(皇統)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쓴 서사시가 [아에네이드(Aeneid)]다. 베르길리우스를 로마 최대의 서사시인으로 자리매김한 작품 아에네이드는 '아에네아스의 노래(Song of Aeneas)'라는 뜻이다.

 

베르길리우스. 가운데 흰옷을 입고 앉은이가 베르길리우스다. 로마 최대의 서사시인으로 통한다. 트로이에서 탈출한 아에네아스가 신들의 인도로 라티움에 정착해 로마의 기초를 닦았다는 건국신화를 [아에네이드]에 담았다. 로마시대 만든 모자이크 작품. 바르도 박물관 ⓒ김문환

 

이런 저런 서정적인 작품을 쓰던 베르길리우스는 B.C 30년부터 B.C 19년 죽을 때 까지 장장 11년에 걸쳐 [아에네이드]를 썼다. 독재자 옥타비아누스의 지원과 지시 아래 베르길리우스는 산고에 산고를 거듭하며 로마 민족의 서사시 [아에네이드]를 집필했다. 그 과정에서 건강도 해쳤는데... 옥타비아누스의 절대적인 후원을 받아서 그런가 베르길리우스는 생활방식도 그와 비슷했다. 한마디로 소식(小食)주의. 로마인들에게 생활의 일부이던 술, 즉 포도주도 잘 마시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건만 50을 갓 넘겨 죽고 말았다. 옥타비아누스가 70을 넘겨 당시로서는 장수한 것과 대조된다. 문제는 베르길리우스가 끝내 자기 작품에 만족하지 못한 채 죽은 것. 자신의 작품을 불살라 버리라는 말을 남기며 죽은 것은 장인정신의 발로(發露)다. 그러나, 그의 유언은 지켜지지 못했다. 황제 옥타비아누스가 [아에네이드]에 깊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미완성인 [아에네이드]는 이후 로마 최고의 서사시가 됐다.

 

◆2. 아에네이드

"나는 전쟁과 전쟁 영웅을 노래할 것"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아에네이드. 이 한마디에 베르길리우스의 [아에네이드] 집필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다. 베르길리우스에게 전쟁영웅은 누구인가? 호메로스에게 전쟁 영웅은 아카이아 연합군의 아킬레스와 오디세우스였다. 그러나, 그리스를 정복했던 로마인 입장에서 전쟁영웅은 당연히 그리스 장군이어서는 안됐다. 로마는 힘으로 그리스문명권인 헬레니즘 세계를 굴복시켰다. 그리스민족의 위대한 문명을 자산으로 B.C 4c 말부터 B.C 1c 말까지 지중해 주변 문명권을 풍미했던 헬레니즘 세계. 로마에게 그리스 문명은 늘 넘보지 못할 위대한 그 무엇이었다. 민주주의 제도, 문학, 예술... 그러나, 로마인들은 그리스 문명권을 힘으로 눌렀다. 정치, 군사적인 우위를 점하면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도 앞서고 싶은 게 인지상정. 동서고금에 예외가 없다. 이때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역사를 왜곡하거나 과장해 부풀리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경우를 보자. 19c 말 제국주의의 길로 들어서면서 광개토대왕비문 수정이나 임나일본부 같은 수작을 벌인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한민족의 정체성을 과소 평가하거나 부정하는 방향으로 그리고, 일본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사료나 역사를 뒤튼다. 주변 열등민족은 우수민족인 일본에 지배되도 문제없다는 당위성을 만들어 낸다. 이런 풍조는 아직까지 이어져 일본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음모의 나라 수준에 머물고 만다. 독일은 어떤가? 나찌는 독일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유태인을 열등민족으로 몰아 인종청소에 나섰다. 그런 유태인은 자신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면서 주변 민족의 생존권에는 무관심한 채 제 살 궁리에만 몰두해 팔레스타인을 괴롭힌다. 자기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이다.

 

로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B.C 31년 그리스 북서부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는 라이벌 안토니우스와 결합한 클레오파트라군을 무찌른다. 이듬해인 B.C 30년 패배해 도망간 클레오파트라가 죽으면서 헬레니즘 세계의 마지막 보루이던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무너졌다. 이는 단순히 이집트에 대한 로마의 승리 차원을 넘는다. 이제 로마가 그리스를 압도했음을 의미한다. 역사도 짧고, 문명도 뒤지지만, 힘으로는 문명 선진국을 이긴 것이다. 늑대 젖을 먹고 자란 사람이 로마를 세웠다는 B.C 753년 보다 훨씬 전에 그리스인들은 세련된 그리스어를 발전시키며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아]라는 최고의 작품을 선보인 문화 민족이다. 그러나, 로마는 자신에게 문자는 물론 종교와 기타 생활문화 전반에 걸쳐 선진 문물을 전해준 그리스인을 제압했다. 로마인 입장에서 보면 그리스 문명에 깊이 영향받은 과거를 희석시키고 로마인의 위대성을 강조하기 위한 무엇인가의 조치가 필요했다.

 

여기서 로마인들이 끄집어낸 게 '트로이'다. 트로이 전쟁시기 그리스(아카이아)에 뒤지지 않는 압도적인 문명의 소유자는 '트로이'였다. 트로이는 아카이아 연합군과 10년간 자웅을 겨룰 정도로 강력했고, 경제적으로도 번영하던 동방의 부국이었다. 그런 트로이와 로마를 연결지을 수 있다면 멋진 상상이 가능해진다. "그래, 비록 트로이는 멸망했지만, 그 후예들이 살아 남아 멀리 터전을 옮겨 새로 세운 나라가 오늘날 지중해 최강국, 우리의 조국 로마(Roma, Rome)다." 그리스 문명권 국가들을 압도하며 위세를 떨치던 트로이를 조상으로 삼는 것은 좋은데, 문제가 생겼다.

 

그리스인들이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아]를 기록하면서 트로이 사람 대부분을 죽은 것으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특히, 용장이나 쓸만한 장수일수록 더욱 그랬다. 헥토르, 파리스 같은 트로이 왕자들은 물론 각국에서 온 원정군의 왕이나 장군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누구를 로마의 조상으로 삼고, 또 건국과정을 그럴 듯하게 묘사한단 말인가! 골치 아픈 과제를 누가 맡을 것인가? 로마를 지중해 최강국으로 만들고, 동시에 로마를 제국으로 만들어 황제에 오른 옥타비아누스는 베르길리우스를 떠올렸다. "로마인의 조상과 로마의 건국을 거대한 서사시로 표현하시오." 명을 받은 베르길리우스. 골머리를 앓던 중 손으로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죽지 않은 예외가 한명 있었으니. 프리아모스 왕의 혈통을 이은 왕자는 아니지만, 프리아모스의 사위 즉 부마요. 또 신의 혈통, 그것도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 아에네아스가 있었다.

 

아에네아스가 트로이 함락시 어머니 아프로디테의 인도아래 아버지 안키세스를 업고 트로이를 빠져나가고 있다. 가운데 완전무장한 사내가 아에네아스. 그의 등에 업힌 이가 아버지 안키세스. 알테스 박물관 ⓒ김문환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아]에 아에네아스의 최후에 관한 기록은 없다. 트로이 전쟁에 관한 다양한 전승을 통해 희미하게 그의 족적이 전해질 뿐이다. 아에네아스의 전설을 종합해 보면 그는 어머니 아프로디테의 도움을 얻어 트로이가 파괴되기 직전 트로이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트로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데리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해 제2의 트로이를 일궜다.

 

그곳이 어디일까? 여러 설이 있지만, 일설에는 그가 트로이에서 서쪽지방으로 모험하며 시칠리아, 북아프리카등을 거쳐 이탈리아 반도에 정착했다고 전한다. 7년간의 방랑을 겪은 뒤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 뒤 10년간 방랑하다 고국 이타카에 도착한 것에 비하면 짧은 기간이지만...

 

천신만고 끝에 라티움 땅에 도착했다는 전승을 기초로 B.C 1c 베르길리우스는 아에네아스가 트로이를 탈출해 갖은 모험을 겪다 로마의 기초를 닦는다는 대작을 만들어 낸다. 로마 건국 신화 [아에네이드]는 그렇게 나왔다. 베르길리우스 이후 트로이 전쟁 후일담에서 아에네아스와 관련된 부분은 [아에네이드]의 내용이 정설로 굳어졌다.

 

로마는 트로이의 후신이요, 로마인들은 아프로디테의 아들 아에네아스의 후손이라는 역사관을 모든 로마인들이 가슴속 깊이 새겼다. 로마가 이집트를 멸망시키며 지중해 최고 제국이 된 직후, 또 옥타비아누스가 이를 발판으로 공화정을 무너트리고 황제정을 완성한 바로 뒤에 주체할 수 없는 로마인들의 기상과 우쭐대는 독재자의 자부심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이를 통해 로마인들은 자신들이 지중해 전역에서 그리스인들이나 카르타고인들에 뒤지지 않는 오히려 그들보다 뛰어난 문화와 역사적 전통의 민족이라는 가치관을 수립할 수 있었다. 또, 아프로디테- 아에네아스- 로물루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로 이어지는 화려한 황제가문을 창조해 냈다.

 

베르길리우스는 [아에네이드]를 통해 아에네아스를 만인이 우러르는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그렸다. 로마인 중에 완전한 인간의 전형을 찾고 싶어했던 결과다. 7백년 앞선 작품 [일리아드]에서 아킬레스라는 영웅이 탄생하고,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라는 탁월한 인간이 등장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