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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 사건, "일왕도 알았다"

김정윤

입력 : 2005.05.10 19:53

"정부는 관계 없다" 일본 주장 '거짓말'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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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뉴스>

<앵커>

명성황후 시해 110년, 하지만 그 억울함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습니다. '상관없다', '몰랐노라'지금껏 발뺌하고 있는 일본 정부의 뻔뻔한 주장을 뒤집을 결정적 증거를 저희 SBS가 단속 입수했습니다.

보도에 김정윤 기자입니다.

<기자>

1895년 12월 21일, 당시 경성 주재 일본 영사 우치다 사다쓰지가 일본 외무성에 보낸 보고서입니다.

보고서엔 두 달 전인 10월 8일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됐고, 시해장소도 기존에 알려졌던 것처럼 침전이 아니라 마당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가와놔/낭인 외손자 : 누가 황후인지 몰랐지만 (황후는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다들 둘러싸고 지키고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 낭인들은 고종 침전에서 10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건청궁 마당에서 명성황후를 시해한 뒤, 궁 옆 녹산에서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우치다가 쓴 이 보고서를 일왕이 보고 결재 까지 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습니다.

서울대 이태진 교수가 일본에서 찾아낸 보고서 원본입니다.

보고서를 외무 차관과 외무 대신이 회람한 뒤, 왕궁 궁내성 시종장이 받아 당시 메이지 왕에게 올렸다는 '상주'라는 표시가 뚜렷합니다.

[이태진/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 일본의 최고위에서까지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전모를 다 보고받고 있었다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보고서가 일왕에게 올라간 날짜는 1896년 1월 11일.

을미사변 혐의자 45명을 모두 무죄 석방한 히로시마 재판, 불과 아흐레 전입니다.

[천왕이 사건의 전모를 알면서도 무죄 방면 처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주목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일본은 명성황후 시해가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갈등 때문에 일어난 조선인 내부 다툼으로 일어났다고 주장했습니다.

[서영희/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 칼을 쓰는 낭인배들이 우발적으로 개입한 것이지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개입하거나 집행한 것은 절대 아니라는 입장이죠.]

일본 정부는 지금 까지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대해 사과는 커녕 관심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