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문명기 4권BR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6장. 오디세이아와 귀환 BR 1. 텔레마코스오늘 이야기 2. 목욕 문화 3. 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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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중해 문명기 4권--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6장. 오디세이아와 귀환 1. 텔레마코스--오늘 이야기 2. 목욕 문화 3. 키클로페스 4. 사이렌 5. 스킬라, 칼립소,써시, 나우시카 6. 페니키아 7. 페넬로페 8. 구혼자들 9. 상봉과 최후
1. 텔레마코스
◆1. 오디세이아 전쟁은 끝났다. 트로이는 사라졌다. 전설로만 남았다. 트로이 전쟁은 물론 전쟁에 참여했다는 인물들의 후일담은 시대마다 지역마다 색깔을 달리하며 새롭게 해석됐다. 한 사건을 놓고도 다양한 전승이 생겨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까닭이다. 궁금한 점이 있다. 오디세우스. 아킬레스를 전쟁에 끌어들이고, 아테네의 계시를 알아챈 뒤 목마제작을 지휘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카이아 연합군의 지장이자 용장 오디세우스는 어떻게 된 것일까? 고대 그리스 사람들도 이점을 무척 궁금해 한 모양이다. 이런 호기심을 자극하고 충족시킬 문화적 여건이 고대 그리스에 마련돼 있었다. B.C 8c 이후 고대 그리스어가 실용적으로 다듬어졌고, 암흑기를 지나 경제 부흥으로 문화를 돌아볼 여유도 생겼다. 이런 배경 아래 그리스 사람들은 트로이 전쟁 관련 전승을 정리한 [일리아드]를 선보였고, 이어 [일리아드]의 후속편 격으로 오디세우스 주인공의 [오디세이아(Odysseia)]도 내놓았다. 2천 8백여 년 전에...
사실 [일리아드]를 읽고 트로이 전쟁을 이해하려는 생각을 갖는다면 큰 오해다. 트로이 전쟁에 대해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정리해 놓은 것이 아니라, 전쟁 10년째만을 집중적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그것도, 헥토르가 죽으면서 이야기가 끝나, 파리스나 아킬레스의 죽음은 물론 트로이 함락에 대한 부분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호메로스(호메로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거나 공동 저작이었을 가능성)가 지었다는 [오디세이아]는 더욱 소재가 좁혀진다.
‘오디세우스의 노래’라는 뜻이 말해주듯 트로이가 함락돼 전쟁이 끝난 뒤 10년간 오디세우스가 겪는 모험담 하나만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모험담'이라기 보다 '고생담'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트로이 함락 뒤 벌인 학살과 약탈에 분노한 신들이 벌을 내렸고, 그 결과 아카이아 연합군 장군들의 귀향길은 완전히 꼬이고 말았다.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혀 죽고 아니면, 엉뚱한 곳으로 표류하는 사건이 빈발했다.
오디세우스 역시 신의 노여움에서 자유롭지 못해 여기저기 떠돌며 숱한 고생을 치렀다. 이렇게 전후 10년간 오디세우스가 겪은 방랑기가 [오디세이아]로 24권, 1만 2110행에 적혀 있다.
◆2. 역사인가 허구인가 [오디세이아]가 진실일까? 허구일까? 그리스인들은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아]를 자신들의 역사로 여기며 애국심을 고취하는 국민적 서사시로 받아들였다. 오디세우스가 돌아다닌 역정의 코스가 대서양은 물론 그린란드까지 포함돼 있다고 주장하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되기도 하는 등 역사로 의심의 여지 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비록 일부라 해도 요즘까지 현재진행형이다. 글쎄, 노아의 방주와 비슷하지 않을까? 이스라엘인들이 자기 조상들 역사라고 믿는 구약성서 가운데 대홍수 이야기. 우리는? 단군. 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곰에서 변한 웅녀(熊女)와 사랑을 나눠 태어난 아들이 배달의 겨레 조상이 됐다는 믿음. 이를 의심하면 한국민으로 살기에 주변으로부터 받는 따가운 시선이 너무 뜨거울 것이다. 제우스가 인간 여인과 사랑을 나눠 헤라클레스를 낳은 것과 겹쳐 보이지만...
경우가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 [해신]이나 [이순신]이 떠오른다. 실존 인물이지만 구체적인 활동상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많지 않고, 이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보충해 빚어낸 작품들... 특히, [해신]이 더욱 그렇다. 오디세우스가 실존인물이었다면 그가 요정들과 사랑을 나누는 에피소드는 [해신]에서 실존인물 장보고나 염장이 가공인물 정화 아씨와 삼각관계를 맺는 구도의 애정행각과 닮아 보인다. 가공의 여인과 사랑이라는...
하멜이 지은 [하멜 표류기]나 마르코 폴로의 [동방 견문록]은 [오디세이아]를 어찌 해석해야 할 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차원에서 열쇠가 된다. 1668년 발표된 하멜 표류기를 보자. 1653년 제주도에 표류한 네덜란드 하멜 일행은 13년 뒤인 1666년 조선을 탈출해 일본의 네덜란드 상관으로 간다. 이어 다음해인 1667년 본국으로 송환됐고, 1668년 네덜란드에 도착해 '네덜란드 배 제주도 난파기'(蘭船濟州島難破記, Relation du Naufrage d'un Vaisseau Hollandois)와 부록 '조선왕국 소묘'(朝鮮國記, 일명 하멜표류기. Description du Royaume de Coree)를 출판했다. 조선 13년 일본 1년 등 14년 억류생활의 기록이다.
조선시대 한국의 지리와 풍속, 정치, 군사 등의 상황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이다. 하멜은 이책을 왜 썼을까? 회사 서기로 기록을 담당하는 직원이다 보니 치밀하고 꼼꼼한 일지를 적어야 했다. 일지가 바탕이 됐지만, 귀국 뒤 더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막대한 보상금을 타내는 것. 요즘 생각하면 산업재해등의 명목으로 보험금을 타는 것과 같다. 그러려면, 고생한 흔적이 많아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러다 보니 자신이 직접 탐구하지 못한 부분도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 상황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다. 악어가 우글거리는 [하멜 표류기] 삽화 속에 등장하는 조선은 이렇게 탄생됐다. 있지도 않은 악어. 과장(誇張)의 결과물이다.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 Travels of Marco Polo)은 어떤가? 마르코 폴로는 중세 해상왕국 베네치아 출신. 1275년부터 서아시아,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원나라)에 이르러 쿠빌라이(원 세조)로부터 관직을 얻었다는 사람. 중국 각지를 여행했다면서 남긴 기록이 '동방견문록'이다. 그는 기록에서 1290년에 오늘날 이란에 왕조를 둔 몽고족의 일 한국(汗國) 왕에게 시집가는 왕녀 코카친을 수행해 페르시아만에 도착했다가 1295년에 베네치아로 돌아왔다고 술회한다. 이어 베네치아-제노바 전쟁에 참가했다가 포로가 된 1298년∼1299년 사이 제노바의 감옥에서 동방 여행 경험을 구술하고 이를 루스티첼로에게 받아적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을 황금의 나라로 묘사하는 등 허구가 한둘이 아니다. 최근에는 그가 과연 중국을 다녀갔는가에 대한 여러 의문점도 제기된다. 하멜 처럼 조선측 자료에 기록이 남아야 하는데, 중국측 어느 기록에도 마르코 폴로라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혹시 일부의 경험을 토대로 과장하거나 확인도 안한 채 남의 말을 옮긴 것은 아닌지...
영국 작가 다니엘 디포의 1717년 작품 [로빈슨 크루소]나 역시 영국의 조나단 스위프트가 1726년 지은 [걸리버 여행기]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100% 픽션(Fiction)이기 때문이다. 사실성을 배제하고 상상으로 지어낸 모험담이다.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거인 키클로페스 이야기는 [걸리버 여행기]의 거인국과 일치하는데... [오디세이아]는 어디에 속할까? [해신]이나 [불멸의 이순신] 처럼 실존 인물에 대한 기록인데 부족한 사료를 메우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한 것인가? 아니면 [하멜표류기] 처럼 일부 과장인가? [동방견문록] 처럼 일부의 경험이나 남의 말을 확인 없이 크게 과장한 기록인가? 아니면 [걸리버 여행기]나 [로빈슨 크루소] 처럼 100% 지어낸 이야기 일까?
◆3. 텔레마코스와 오디세이아 [오디세이아]의 첫장면은 신들의 회의. 내용은 오디세우스 건. 신들은 태양신 아폴론이 자신의 도시 트로이가 패망한 것에 화가 나 아카이아 연합군 장수들에게 불행을 안겨줬고, 그 결과 오디세우스가 10년이 되도록 고향에 도착하지 못했다는 현실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이제는 돌려 보내줘야 하지 않느냐는데 의견을 함께 했다. 방법은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통하는 것. 아테나가 그 일을 맡았다. 인간으로 변한 아테나는 텔레마코스 앞에 나타나 용기를 북돋우며 아버지 오디세우스를 찾는 일에 나서라고 권한다. 이렇게 시작되는 내용이 [오디세이아]다.
이 무렵 텔레마코스의 상황을 들여다 보자. 전쟁이 시작될 당시 강보에 쌓여 있던 텔레마코스는 전쟁이 끝나고 다시 1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덧 성인으로 자랐다. 그는 생각했다.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는 아버지 오디세우스는 어떻게 된 것인가? 트로이 함락까지 생존했던 다른 아카이아 연합군 장군들은 대부분 귀국 도중 난파 당해 죽거나 고향에 돌아와 잘 살고 있건만 왜 아버지 오디세우스만 행방불명이란 말인가?'
답답한 그의 심정을 더욱 암담하게 만든 것은 집안 현실. 오디세우스의 궁정은 말이 아니었다. 오디세우스의 아버지 라엘테스는 늙어서 힘을 잃었다.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는 정조를 지켜왔지만, 그녀와 결혼하려는 구혼자들에게 시달렸다. 구혼자들은 남자 어른 없는 집안이라고 우습게 여겨 오디세우스의 집에 머물며 멋대로 재물을 축내고 있었다.
아들 텔레마코스는 이제 막 성인이 됐지만, 아직 세력을 형성하지 못해 혼란에 빠진 집안을 구해낼 방도를 찾지 못했다. 더 이상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고 느낀 텔레마코스가 집안을 살리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생사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할 무렵 아테나의 계시를 받은 것이다. 효자 텔레마코스는 집을 떠나 우여곡절 끝에 네스토르를 만나고, 또, 스파르타로 가서 메넬라오스와 헬레네도 만나지만 아버지의 생사에 관한 결정적인 소식을 듣지는 못했다. 그러나, 여정을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온 텔레마코스는 한층 성숙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마침 고향으로 돌아온 아버지 오디세우스와 재회한다. 둘은 치밀한 작전을 세워 페넬로페에 구혼하러 와 행패를 부리던 일당을 처단하는데 성공하고 집안을 살려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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