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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이 선수의 성적에 미치는 영향

이성훈

입력 : 2005.04.22 07:27

BR 2003년 10월 2일은 한국의 야구팬들에겐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대구 구장에서 열린 롯데와 삼성의 경기 2회초, 이승엽의 타구가 좌중간 담장을 살짝 넘어가는 순간, 아시아 프로야구의 역사가 바뀌었죠. 일본의 야구 영



2003년 10월 2일은 한국의 야구팬들에겐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대구 구장에서 열린 롯데와 삼성의 경기 2회초, 이승엽의 타구가 좌중간 담장을 살짝 넘어가는 순간, 아시아 프로야구의 역사가 바뀌었죠.

일본의 야구 영웅 왕정치를 제치고 이승엽이 아시아 최고의 거포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2003 시즌은 이 순간보다, 한여름 내내 펼쳐진 이승엽과 심정수 두 거포의 치열한 홈런왕 경쟁의 과정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심정수는 1년 내내 이승엽의 턱밑까지 추격했지만, 결국 한 번도 홈런 단독선두에 나서지 못한 채 53홈런에 그쳤죠. 2002년, 공동선두였다가 시즌 마지막 날 이승엽이 한 개를 더 치는 바람에 홈런왕을 놓친 아쉬움까지 더해 심정수에겐 '비운의 2등'이라는 이미지가 따라붙게 됐습니다.


일부에선, 만약 이승엽과 심정수의 소속팀이 서로 바뀌었다면 2003년의 홈런왕이 누구였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승엽의 홈구장인 대구 구장은 외야 펜스까지의 거리가 짧아서 홈런이 양산되는 반면, 심정수의 홈구장이었던 수원 구장은 대구에 비해 홈런을 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승엽이 심정수에 비해 '구장 덕'을 많이 봤을 거라는 추측이었습니다. 또 혹자는 한국에서 가장 홈런을 치기 힘든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면서도 지난 98년 42개의 홈런을 쳐낸 타이론 우즈의 기록이야 말로 '진정한 최고 홈런 기록'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작은 구장에서 나온 홈런 기록을 폄하하는 건 아시아 야구를 무시하는 미국인들의 오만한 '야구 제국주의'라며 울분을 토하기도 하셨습니다.


특정 구장의 특징이 정말 선수의 성적에 영향을 미칠까요? 영향이 있다면 얼마나 될까요?


'구장 효과(Park Factor)'는 세이버메트릭스의 고전적인 논의 주제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계량화하는 기본 개념도 간단한 편입니다. (실제로 계산하기가 쉽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A와 B, 두 팀만으로 이뤄진 리그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두 팀은 한 시즌에 서로의 홈구장에서 50경기씩, 모두 100경기를 치릅니다. A의 홈구장에서 치른 50번의 경기에서는 모두 80개의 홈런이 나왔습니다. B의 홈구장에서 치른 50번의 경기에서는 총 40개의 홈런이 나왔습니다. 똑같은 팀이 경기를 하는데 A구장에서 B구장보다 홈런이 두 배나 많이 나왔다면, ‘A구장은 B구장보다 홈런이 2배 잘 나온다’라는 추측을 할 수 있을 겁니다. 한 해 100경기라는 표본수가 적다고 생각된다면 서너 시즌 동안의 '구장 효과'의 평균치를 구하면 되겠지요.


팀 수가 늘어나도 구하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똑같습니다. 8개 팀으로 이뤄진 한국 야구에서 예를 들어 보죠. SK 와이번스는 인천 문학구장에서 63경기, 원정에서 63경기를 치릅니다. 문학에서 나머지 7개팀과 18경기씩을 치르고, 원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학에서의 경기나 원정에서의 경기나 상대팀과 상대하는 횟수는 똑같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렇다면 홈경기를 할 때 나온 홈런수(홈에서 친 홈런+허용한 홈런)을 원정 경기를 할 때 나온 홈런수(원정에서 친 홈런+허용한 홈런)과 비교하면, 문학 구장의 '홈런에 대한 구장 효과'를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식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문학 구장 효과=(홈에서 친 홈런+홈에서 허용한 홈런)/(원정에서 친 홈런+원정에서 허용한 홈런)1)


위에서 소개한 식은, 구장 효과에 대한 가장 간단한 개념만 적용된 가장 간편한 계산식입니다. 실제로 ESPN 같은 사이트들에서는 위의 식으로 구장 효과를 구해 소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세이버메트릭스 전문 사이트들에서는 원정 경기의 경기수(메이저리그는 팀별 상대 경기수가 천차 만별이죠)와 시즌별로 나타나는 오차들을 감안해 보다 정밀하게 구장 효과를 계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개념은 위에서 소개드린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www.baseball-reference.com'이라는 야구 전문 사이트가 계산한 2004년 메이저리그 주요 구장들의 구장 효과를 한번 살펴 볼까요. 구장 효과가 100보다 크면 타자에게 유리한 구장, 100보다 작으면 투수에게 유리한 구장, 딱 100이면 중립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표1> 2004시즌 메이저리그 주요 구장들의 ‘구장 효과(Park Factor)

팀

구장 이름

구장 효과

콜로라도

쿠어스 필드

120

텍사스

아메리퀘스트 필드

111

보스턴

펜웨이 파크

106

시카고 컵스

리글리 필드

106

애틀랜타

터너 필드

100

뉴욕 메츠

셰이 스타디움

99

뉴욕 양키스

양키 스타디움

96

LA 다저스

다저 스타디움

95

시애틀

세이프코 필드

92

 

낮은 공기 저항 때문에 타구의 비거리가 늘어나서 ‘투수들의 무덤’이라는 별명이 붙은 콜로라도 록키스의 홈구장 쿠어스 필드가 예상대로 ‘구장 효과’도 가장 높게 나타나는군요. 경기장 위쪽에 제트 기류가 형성돼 타구를 외야 쪽으로 실어 나른다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홈구장 아메리퀘스트 필드가 2위를 차지 했습니다. (어쩌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투수 박찬호 선수와 김병현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투수에게 가장 불리한 구장에서 뛰게 된 걸까요. 또 한국인 유일의 빅리그 야수 최희섭 선수는 유독 타자에게 불리한 다저 스타디움에서 뛰게 된 걸까요.)


쿠어스 필드의 구장 효과가 120이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애틀랜타의 홈구장 터너 필드의 구장 효과는 정확히 100입니다. 쿠어스필드는 터너 필드보다 구장 효과가 20% 높게 측정되지요. 똑같은 팀들이 터너 필드에서 100번 경기 해서 500점이 났다면, 쿠어스 필드에서는 600점이 난다는 이야기입니다. 투수의 기량에 변함이 없다면, 애틀랜타 터너 필드에서 한 경기에 5점을 주던 투수는 콜로라도에 가면 6점을 준다는 이야기이지요. 김병현 선수의 경우, 보스턴보다 13% 정도 더 불리한 야구장을 홈으로 갖게 된 셈입니다.

 

반면 LA 다저스나 시애틀 매리너스의 타자들은, 똑같은 기량의 다른 팀 선수들에 비해 성적 하락을 감수해야 합니다. 투수들은 똑같은 기량의 다른 팀 투수들에 비해 좋은 방어율을 자랑하겠지요.

좀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구장 효과가 정확히 100인 애틀랜타의 터너 필드에서만 1년 내내 뛰어 홈런 20개를 친 선수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선수가 만약 똑같은 경기를 1년 내내 쿠어스필드에서만 했다면? 애틀랜타에서보다 20% 증가한 24개 정도의 홈런을 칠 걸로 보는 게 합리적입니다.


실제로 발생한 일을 예로 들어 볼까요. 2001년 콜로라도의 3루수였던 제프 시릴로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이 선수의 2001년 성적은 타율 0.313에 17홈런. 꽤 뛰어난 성적표에 반한 시애틀 매리너스가 타선 강화를 위해 시릴로를 트레이드를 통해 데려 갑니다.

 

세이버메트릭스계에서는 쿠어스필드의 구장 효과라는 거품을 뺀 시릴로의 ‘진짜 타율’은 0.295 정도라고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타자에게 불리한 시애틀의 세이프코필드에서 뛴다면 똑같은 기량을 발휘하고도 타율이 0.255 정도에 그칠 거라고 예측했지요. 실제로 시릴로는 이듬해 타율 0.249, 6홈런으로 무너졌고, 이후 심리적 스트레스까지 겹쳐 재기하지 못한 채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투수들의 성적도 구장 효과를 반영한 조정이 가능합니다.

지난 2003년 박찬호와 텍사스에서 팀메이트였던 존 톰슨이라는 투수가 있습니다. 당시 톰슨의 성적은 13승 14패 방어율 4.85. 투수의 능력을 가장 잘 반영하는 걸로 알려진 방어율이 5점대에 육박하는 걸로 보면 그다지 인상적이라고 할 수 없는 성적이죠.

 

하지만 세이버메트릭스계에서는, 메이저리그에서 두 번째로 투수들에게 불리한 텍사스의 홈구장 아메리퀘스트 파크의 ‘구장 효과’를 감안해, 만약 톰슨이 구장 효과가 중립적인 야구장을 홈으로 가졌더라면 3.95 정도의 방어율을 기록했을 거라고 계산했습니다.

 

톰슨은 지난해 애틀랜타로 이적했습니다. 위 표에서 보면 애틀랜타의 구장 효과는 정확히 100입니다. 투타 어느 쪽으로 편중되지 않은 중립적인 구장이라는 거죠. 여기서 톰슨이 지난해 올린 성적은 14승 8패, 방어율 3.72. 세이버메트릭스계의 관측과 엇비슷한 기록이죠.


다시 한국 야구로 돌아와 봅시다.

앞서 잠시 말씀드렸지만 구장 효과를 구하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매우 간단하지만 정확도가 떨어지는 방법부터, 정밀도가 높지만 일반인이 전문적인 수학 지식 없이는 구할 수 없는 방법까지. 위에 표로 소개한 ‘Baseball Reference'같은 세이버메트릭스 전문 사이트의 계산식은 저 같은 사람은 꿈도 못 꿀 만큼 복잡합니다.


Jim Furtado라는 사람이 고안한 계산식은 그나마 좀 엄두가 나더군요. Furtado의 식을 이용해서 2003 시즌 한국 야구의 구장 효과를 계산해 봤습니다.


구장 이름

구장 효과

대구

122

대전

115

수원

109

문학

109

광주

103

사직

93

잠실(L)

74

잠실(두)

73


위 표를 통해 알 수 있는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한국에서 가장 홈런을 치기 쉬운 구장은, 예상대로 대구구장이다.

2. 대구는 수원에 비해 13% 정도, 잠실에 비해서는 무려 50% 가까운 홈런 증가 효과가 있다.


(구장 효과를 연도별로 계산해 보면, 광주-수원-대전-문학의 ‘중위권 순위’는 해마다 변합니다. 구장 효과를 정확히 구하기엔 60경기를 조금 넘는 표본수가 작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대구가 가장 홈런이 많이 나오는 구장이라는 것과, 잠실과 대구의 ‘홈런 난이도’ 차이가 50% 가량 된다는 점은 공통적으로 도출되는 결론입니다)


이승엽의 2003년 장타율은 0.699. 심정수는 0.720이었습니다. 장타율에서 앞선 심정수가 이승엽보다 홈런을 세 개 덜 친 것은, 대구에 비해 13% 정도 홈런을 억제한 수원 구장의 ‘구장 효과’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겁니다.


사실 한 시즌의 홈런 숫자는 운에 많이 좌우됩니다. 시즌 마지막 주에 포스트시즌 경쟁을 포기한 팀의 풋내기 투수를 상대로 홈런 세 방을 몰아 치면 홈런 랭킹은 요동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장타력을 측정하기에 126이라는 경기수와 많아야 50개 정도의 홈런 숫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일 수 밖에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2003 시즌 심정수의 파괴력은 이승엽 못지 않았거나 오히려 능가했다는 겁니다. 그해 말 MVP 투표에서의 81대 13의 표 차이는, 두 선수의 기량과는 상관 없이 대기록의 이미지 때문이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