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 BR 지중해 문명기 4권BRBR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5장. 트로이 함락 BR 1. 트로이 목마 2. 트로이 함락과 대학살 3. 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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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5장. 트로이 함락 1. 트로이 목마 2. 트로이 함락과 대학살 3. 카산드라 4. 라오콘 5. 프리아모스 6. 안드로마케 7. 아스티아낙스, 헬레노스--오늘 이야기 8. 폴릭세나 9. 헬레네 고향으로 10. 아가멤논의 죽음 11. 오레스테스의 복수 12. 고대 그리스의 불륜 7. 아스티아낙스
◆1. 아스티아낙스
트로이 최고의 혈통을 타고 태어난 성골(聖骨)중의 성골. 아스티아낙스가 그렇다. 성골이란 무엇인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왕족 출신이어서 순수한 왕족의 피를 이은 사람들을 말한다. 오늘날도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영남지역 신라에 존재했다는 독특한 신분 제도인데, 처음 박혁거세에서 시작해 석씨를 이어 김씨 진덕여왕(신라 제28대 왕, 재위 647년∼654년)까지 성골로 왕위가 이어졌다. 이후 성골이 끊어지고 어머니나 아버지 가운데 어느 한쪽만이 왕족인 진골(眞骨)이 왕위를 이었다. 태종무열왕(신라 제29대 왕재위 654년∼661년)부터 마지막 경순왕(재위 927년∼935년. 978년 去) 때까지 진골 출신이 왕위를 세습했다. 신라를 이은 고려 역시 초기에는 왕실의 배다른 형제나 삼촌-조카등이 결혼하면서 신라의 혈통주의를 잇는 경향을 보였다. 진골 아래 신분은 6개 두품(頭品)으로 나뉘었다.
흔히 조직에서 '물먹는다'. 다시 말해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정실인사에 밀려 제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비육지탄(비肉之嘆)의 신세를 가리켜 "우리는 6두품이니까" 라고 말한다. 이는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다. 신라 17관등(官等) 가운데 제 1서열인 이벌찬부터 5서열인 대아찬까지는 진골 출신이 맡고, 그 뒤 서열 6위인 아찬에서 9위인 급찬까지는 6두품, 10위 대내마는 5두품 등의 순서로 내려간다. 따라서, 6두품은 고위직이고 밑으로 즉 5두품, 4두품... 1두품으로 갈수록 고향 잘못 만나거나 특정 피가 아닌 끝발 없는 '삼팔 따라지' 를 가리키는 말이다. 3두품 이하는 평민이었으니 "우리는 1두품이야" 해야 원래 취지에 어울린다.
할아버지는 트로이를 부흥시킨 프리아모스요, 할머니는 왕비 헤카베. 아버지는 프리아모스와 헤카베 사이에서 태어난 큰아들이자 트로이의 실질적인 지도자였고, 프리아모스 이후 트로이 왕이 될 뻔했던 왕자 헥토르. 어머니는 미시아 지방 테베의 공주인 안드로마케. 헥토르와 안드로마케 사이에서 태어난 세손 아스티아낙스는 정말이지 성골 가운데 성골이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비운의 생을 마감한다. 아직 강보에 쌓여 울먹이던 젖먹이 시절 아버지 헥토르를 아킬레스의 무자비한 칼날 아래 잃고... 자신은 아킬레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의 손에 할아버지 프리아모스와 함께 죽었으니... 이 무슨 악연의 고리란 말인가!
헥토르는 처음 아들이 태어났을 때 스카만드리오스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트로이 근처의 강 스카만드로스에서 따왔다. 그러나, 트로이 사람들은 평소 헥토르의 탁월한 영도력으로 트로이가 안정과 번영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헥토르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던 시민들은 헥토르가 아들을 얻자 좀 더 특별한 이름을 원했다. 프리아모스의 뒤를 이어 헥토르가 왕이 될 것이고, 다시 헥토르의 뒤를 이을 사람은 스카만드리오스이니 그에게 트로이를 대표할 만한 내용의 이름을 지어 부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온 이름이 아스티아낙스. '도시의 왕자'라는 뜻이란다. 도시는 트로이를 뜻하니 결국 트로이의 왕자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
이렇게 트로이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아스티아낙스는 그러나, 사랑에 보답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아니, 가질 수 없었다. 일리아드에는 그가 아버지 헥트로와 최후의 이별을 할 때 어머니 품에서 우는 아기로 묘사한다. 우리식으로 친다면 돌 지난 정도의 2-3살 아기라고 볼 수 있겠다. 아빠 헥토르가 엄마 안드로마케와 눈물의 이별사를 나눈 뒤 헤어지면서 한번 안아보려 하지만, 그 순간 울기만 하는 아기. 아직 사리분별도 안돼 아버지와의 마지막 작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가엾은 운명의 아스티아낙스. 트로이가 함락된 직후 피에 굶주린 아카이아 연합군의 맹장들이 그를 안드로마케의 손아귀에서 잡아챘다. 그를 끝까지 보호하려던 안드로마케의 안타까운 몸부림은 억센 장수들의 손앞에 무력할 수 밖에 없었다.
흔히 네오프톨레모스가 아스티아낙스를 안드로마케의 품에서 낚아채 트로이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올라간 뒤 아래로 던져 죽였다고 전해진다. 일설에는 아스티아낙스를 죽인 아카이아 장수가 오디세우스라고도 하고... 아스티아낙스를 죽이는 장면을 그린 도자기는 다수 전한다. 트로이 함락 직후 아킬레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의 활약에 관한 내용이기도 하지만 워낙 극적인 소재여서 세인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부분의 경우 할아버지 프리아모스와 아스티아낙스의 죽음을 동시에 표현하는 기법을 썼다.
전형적인 예는 네오프톨레모스가 어린 아스티아낙스를 안드로마케의 품에서 잡아채 한손으로 잡고 바닥에 쓰러진 프리아모스를 죽이는 장면이다. 손자 아스티아낙스를 방망이 삼아 할아버지 프리아모스를 때려 죽이는 잔인한 살인극인데, 그 옆에서 안드로마케가 오열하는 모습도 덧붙인다. 한편, 후대의 전승 가운데는 아스티아낙스가 죽지 않고 화를 피했다는 설도 있다. 죽음을 면한 그는 다른 지방으로 도망갔다가 훗날 트로이로 돌아와 아에네아스의 아들인 아스카니오스와 함께 트로이를 재건했다는 것이다.
◆2. 헬레노스
프리아모스의 자식은 그가 아킬레스에게 말한 것을 토대로 한다면 50명이다. 트로이 함락 순간에 아버지 프리아모스, 어머니 헤카베와 함께 궁정 뒤뜰 제단으로 피신했다가 죽은 폴리테스를 비롯해 자식들 대부분이 트로이 전쟁으로 희생됐다. 이 가운데 한명이 살아 남았는데, 전쟁 말기 이다산으로 들어간 뒤 조국을 배신하고 아카이아 연합군에 협력했던 헬레노스다. 헬레노스는 카산드라의 남자 쌍둥이 형제. 신의 은혜를 입어 카산드라 처럼 예언능력을 가졌고, 한때는 아폴론으로부터 받은 활로 아킬레스의 손을 쏘아 맞출 정도의 무공 실력도 인정 받았다. 헥토르가 죽은 뒤에는 트로이 지휘권을 넘겨받아 트로이 연합군을 이끈 용장이었는데, 왜 아카이아 연합군에 투항하고 협조했는가? 파리스가 죽은 뒤 내심 헬레네를 자신이 차지하려는 마음을 가졌지만, 동생 데이포보스에게 빼앗기자 화가 치밀어 이다산으로 사라진 것이다.
아카이아 연합군의 점장이 칼카스가 헬레노스의 말을 실행하지 않으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예언한 뒤 아카이아 연합군은 헬레노스를 끌어들이기 위해 혈안이 됐다. 오디세우스가 공을 들여 헬레노스를 회유하는데 성공했고, 헬레노스는 아카이아의 승리 비법을 일러줬다. 이때 나온 예언 가운데 하나가 아킬레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를 참전 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네오프톨레모스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한 헬레노스를 갸륵히 여겼다. 특히,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귀향할 때 헬레노스는 네오프톨레모스에게 육로 귀향을 권했고, 이 때문에 네오프톨레모스는 풍랑을 만나지 않아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부분은 네오프톨레모스의 할머니 테티스가 손자를 구해준 것이라고도 하고...
네오프톨레모스는 이런 점들에 대해 헬레노스에게 늘 고마운 마음과 함께 깊은 신뢰를 보냈다. 델피에서 아내의 정부 오레스테스에게 암살되면서 네오프톨레모스는 자신의 모든 것을 헬레노스에게 넘겨줬다. 안드로마케까지... 헬레노스는 왕년의 형수였던 안드로마케를 맞아 아들 한명을 둔다. 아들 이름은 케스트리노스. 안드로마케는 모두 3명의 남자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헥토르와 아스티아낙스 1명. 네오프톨레모스와 몰로소스, 피엘로스, 페르가모스의 3명. 헬레노스와 케스트리노스. 그러니까, 3명의 남편에게서 5명의 아들. 안드로마케의 결혼 성적표다.
◆3. 데이포보스
데이포보스는 그 자신보다 아내 덕에 널리 알려진 경우다. 그의 아내는 헬레네. 파리스가 죽은 뒤 절세가인(絶世佳人) 헬레네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의 조짐이 보였다. 이른바 왕자들의 난. 아버지 프리아모스는 순번상 헬레노스에게 주지 않고 경기를 통해 승리한 아들이 헬레네와 결혼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파리스의 장례식 추모경기에서 승리한 왕자가 바로 데이포보스다. 죽은 남편의 장례식에서 슬퍼할 겨를도 없이 새 남편을 맞아야 하는 여인네 헬레네의 운명이란...
데이포보스는 헥토르가 가장 아끼고 신뢰하던 동생이기도 했다. 헥토르는 아킬레스와 맞대결에 승산이 없다는 것을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막상 아킬레스와 스카이아 성문 앞에서 붙게 되자 공포는 눈덩이처럼 더욱 커졌다. 막 돌아서려는 순간 뒤에 나타난 데이포보스. "형 겁내지마. 내가 있잖아. 내가 도와줄 께. 힘있게 싸워 봐.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천하무적 아킬레스라도 물리칠 수 있을 거야". 헥토르는 믿음직스런 동생 데이포보스를 보고 다시 힘을 얻었다. '그렇지. 내가 물러서다니. 동생이 받쳐 준다면야 아킬레스와 대결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마음을 고쳐 먹은 헥토르가 아킬레스를 향해 창을 던지고, 뒤를 돌아보며 데이포보스에게 새로운 창을 달라고 말하는 순간. 앞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게 아닌가! 데이포보스가 아닌 아테나가 변장한 것이었다. 헥토르는 순간 자신이 아테나 여신에게 속았음을 깨달았고, 죽음을 직감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만큼 헥토르가 데이포보스를 믿고 의지했다는 사실. 죽음을 걸고 싸우는 혈투에서 함께 갈 동지로 생각할 정도의 듬직한 장수가 데이포보스였다. 그러나, 데이포보스는 미녀를 좋아한 대가로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파리스가 죽고 치러진 장례 추모경기에서 데이포보스는 형 헬레노스를 비롯해 다른 형제들을 물리치고 헬레네를 차지했다. 메넬라오스가 [신의 외모]라고 칭송할 만큼 잘생겼던 데이포보스는 트로이 함락 당시 헬레네와 살고 있었다. 아카이아 연합군 장수들은 데이포보스의 집으로 달려갔다. 자다 일어난 데이포보스는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오디세우스와 메넬라오스의 급습을 받아 죽고 말았다. 화가 난 메넬라오스는 데이포보스의 시신을 토막내는 것으로 그동안의 울분을 달랬다. 미녀와 산 죄 치고는 너무 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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