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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제우스, 아프로디테, 아폴론

김문환

입력 : 2005.04.04 11:16

지중해 문명기 4권BRBR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15. 제우스, 아프로디테, 아레스, 아폴론오늘 이야기 15. 제우스, 아프로디테, 아레스, 아


- 지중해 문명기 4권--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15. 제우스, 아프로디테, 아레스, 아폴론--오늘 이야기

15. 제우스, 아프로디테, 아레스, 아폴론

◆1. 신들의 전쟁

트로이 전쟁은 신들의 전쟁이기도 했다. 제우스는 당초 인간들이 벌이는 트로이 전쟁에 엄정 중립을 선언하고 다른 신들에게 개입하지 말 것을 명했다. 그러나, 전쟁이 후반기로 들면서 상황이 바뀐다. 파트로클로스가 죽고 아킬레스가 재참전해 트로이를 쓸어버릴 기세로 달려들자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트로이에 정감어린 눈길을 보내던 터였다. 올림포스 12신은 물론 모든 신과 요정들이 제우스의 궁전 앞 회랑에 모였다. 제우스가 선언한다. "이제부터 트로이든 아카이아든 가서 돕도록 하시오. 이대로 두면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스가 제 자신의 운이 다하기도 전에 트로이를 쓸어버리겠군..." 아카이아의 연이은 승전보가 불쾌하다는 듯한 뉘앙스를 담은 제우스의 발언. 트로이가 질 것 같으니 신들이 가서 지원하라는 다시말해 트로이를 응원하는 신들이 트로이를 도와 쉽게 멸망하지 않도록 하라는 결정이자 명령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쟁이 팽팽할 때는 중립을 지키다 트로이가 밀리자 신들에게 가서 도우라는 바로 이런 입장에서 전쟁을 바라보는 제우스의 심중을 읽을 수 있다.

트로이 전쟁은 신들의 전쟁이기도 했다. 전투에도 직접 참여했을 뿐 아니라 승패 역시 신의 의지에 달려 있었던 것으로 호메로스는 기록한다. 전투에 참가하는 병사에게 승리의 여신 나이키가 축복을 내리고 있다. ⓒ김문환

제우스가 전쟁 참여 금지선언을 거두고 참전을 허락하자 그동안 몰래 각진영을 지원하던 신들은 노골적으로 편을 갈라 각자 자기가 지원하는 진영으로 달려갔다. 아카이아 연합군을 돕기 위해 아카이아 진영으로 가는 신들의 선봉에 최고 여신 헤라가 섰다. 제우스의 딸이자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뒤를 이었고, 제우스의 형으로 바다를 관장하며 각종 기상변화(해일 포함)를 일으키는 포세이돈도 뒤질 세라 잰걸음을 옮겼다. 헤르메스는 중립을 지키며 아버지 제우스의 명을 받아 이런 저런 임무를 수행했지만, 기본적으로 마음은 아카이아군에 있어 빠질 수 없었다. 절뚝거리며 따라가는 신이 한명 더 있었으니,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태어난 성골 중의 성골 헤파이스토스다. 테티스의 부탁을 받고 아킬레스의 무구를 정성들여 만들어 준데서 알 수 있듯이 그 역시 마음속으로 아카이아 연합군을 응원해 왔다. 이유는? 트로이 연합군을 지원한 신을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트로이를 응원하러 비호처럼 달리던 신들의 면모. 먼저 헤파이스토스와 관련해. 아프로디테가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 트로이를 응원한 신 가운데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지나칠 수 없다. 그녀는 트로이 땅 이다산에서 트로이 남자 안키세스를 만나 사랑을 나눴고, 그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 아에네아스가 트로이 프리아모스왕의 사위로 트로이군의 맹장이니 어찌 아프로디테가 트로이를 돕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녀가 트로이를 응원하니 아프로디테의 남편으로 아내의 바람기 때문에 고민하던 헤파이스토스는 자연스럽게 아카이아 연합군 편을 든다는 모범답안을 쉽사리 낼 수 있다. 아레스가 아프로디테의 뒤를 이어 트로이 진영으로 달려가는 이유도 명쾌하다. 아레스는 아프로디테가 가장 사랑했던 신이다. 둘은 헤파이스토스를 격노하게 만들었던 불륜의 주인공. 전쟁의 신, 군대의 신 아레스는 이런 연으로 트로이를 도와 싸웠다.

아르테미스.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가 사슴 사냥을 하고 있다. 아폴론의 누나인 아르테미스는 어머니 레토, 남동생 아폴론과 함께 트로이를 도왔다.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해를 상징하던 음악의 신 아폴론도 열성적으로 트로이를 도왔다. 그녀의 여동생으로 달을 상징하는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도 오빠를 따라갔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어머니 레토 역시 자식들과 함께 트로이의 승리를 위해 분투를 마다하지 않았다. 레토는 헤라의 질투로 큰 고생을 겪은 여신이다. 하마터면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출산하지 못한채 산고로 평생 고생할 뻔 했던 레토. 일가족이 왜 트로이편에 섰는지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호메로스는 트로이 전쟁을 그리스(아카이아)인과 적국 트로이 사람들의 전쟁으로 규정했고, 자신을 그리스인 범주에 넣었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이 떠받드는 그리스 신들 가운데는 오히려 트로이를 지원하는 경우가 더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아카이아 연합군이나 트로이군이나 다 하늘아래 같은 신의 자손임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트로이를 도운 신들을 살펴보자.

◆2. 제우스

앞서 밝힌 대로 제우스는 중립을 지키면서도 노골적으로 트로이를 지원하는 태도를 숨기지 않았다. 아테나와 헤라가 트로이를 멸망시키기 위한 계획을 짜고 있을 때 제우스가 끼어 들었다. 약간은 화를 내면서 아내 헤라에게 "여보. 사랑스런 아내여. 어찌 트로이를 무너트릴 궁리만 하시는 게요. 트로이 백성들과 프리아모스가 당신에게 무슨 해를 끼쳤다고. 나는 맹세컨대 하늘아래 숱한 인간도시 가운데 트로이를 가장 소중히 여긴다오." 일리아드에 기록된 대목이다. 제우스가 트로이를 더 사랑하고 있다는 증언. 그러나, 그 이유를 들으면 다소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트로이 백성들은 나에게 맛난 고기를 언제나 정성껏 준비해 바친단 말이오." 이유가 겨우 맛난 고기라니... 하긴, 신도 인간과 같은 감정을 지녔다고 볼 때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 싫지 않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제우스가 트로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면서 아내 헤라와 딸 아테나에게 트로이를 멸하는 일에 너무 나서지 말라고 충고하자, 답답하다는 듯이 아내 헤라가 쏘아붙인다. "송구스럽지만 신첩이 아끼는 도시는 미케네, 스파르타, 아르고스. 이렇게 셋이니 그렇게 아세요. 당신은 최고신이고 나보다 훨씬 강하지만, 당신의 아내란 사실 잊지 마세요" 최고신이지만 제우스는 공처가였다. 이런 말에 약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그래서 결국은 트로이의 붕괴를 막지 못하지만... 요즘 무조건 참으며 아내에게 지고 사는 남정네들 심정은 제우스의 그것과 닮았을 것이다.

헤라와 제우스 부부의 결혼식. 헤라와 제우스는 자주 다퉜고, 트로이 전쟁에서도 헤라는 아카이아 연합군을 제우스는 트로이를지원하는등 가는 길이 달랐다. ⓒ김문환

그래도 제우스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트로이군을 도왔다. 한번은 트로이군이 밀리자 슬그머니 신의 전령 이리스(아이리스)를 불렀다. "가서 헥토르에게 전하라. 아가멤논이 살기등등해 전선의 최선봉에 서면 대적하지 말라고. 병사들만 내보내고, 헥토르는 뒤에 숨어 있으라 이르거라. 그러다가 아가멤논이 작더라도 상처를 입으면 그때 전차를 몰고 나타나 아카이아 군사들을 도륙내라고..." 이 정도로 훈수를 뒀다. 헥토르가 무용을 뽐내며 아카이아 연합군 병사들을 베고 아카이아 연합군의 진지를 정복할 수 있도록 제우스는 간간이 힘을 보탰다.

◆3. 아레스

전쟁을 상징하는 신은 둘이다. 남자 신은 아레스. 여자 신은 아테나. 공교롭게 아테나는 아카이아 연합군을 지원하고, 아레스는 트로이 연합군을 도왔다. 제우스가 각자 자기 원하는 대로 도우라는 명이 내려진 후 의기양양 양진영에 가담한 두 전쟁의 신. 둘은 굶주린 맹수가 먹이를 눈앞에 둔 듯이 으르렁 거리며 직접 대결도 서슴지 않았다. 아레스는 특히, 아테나에게 좋지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언젠가 아레스가 트로이 진영에 서 아카이아 연합군을 베는데, 아테나가 아카이아 연합군의 맹장 디오메데스에게 힘을 불어넣어 자신과 대적하게 한 것. 그때 아레스는 디오메데스가 던진 창에 맞아 상처를 입기까지 했다. 다시 만난 아레스 왈(曰). "에이, 못된 것 같으니라구. 인간을 풀어 나에게 상처를 주었지. 이번엔 인간 뒤에 숨지 않고 정면 대결이니 본때를 보여 주마. 내창을 받아라" 아레스가 아테나를 향해 창을 던졌다.

그러나, 아테나가 전매 특허로 들고 다니는 커다란 방패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쇠로 만들어진 신품(神品)이다. 아버지 제우스의 힘이 담겨 있어 인간은 물론 신이라도 뚫을 수 없는 신성 불가침의 보호장치였다. 전쟁의 신 아레스의 창이라도 별 수 없었다. 아레스가 사력을 다해 던진 창은 방패에 튕겨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이번에는 아테나의 차례. 아테나가 바위를 들어 아레스를 향해 던졌다. 바위는 아레스를 정면에서 맞췄다. 뒤로 벌렁 나자빠져 흙바닥에 나뒹구는 아레스. 아! 전쟁의 신이라는 체면을 영 구기고 말았다. 그것도 자신의 연인 아프로디테가 보는 앞에서... 이 망신. 아프로디테는 재빨리 연인 아레스를 일으켜 세우려 부축했다. 그러자, 아테나는 아레스를 도우려는 아프로디테까지 다시 한번 밀쳐 넘어지게 만들었다. 연인이 동시에 수모를 당한 셈이다. 최고 미인이 갖는 사과의 주인공을 파리스가 아프로디테에게 줬을 때 받은 화를 분풀이라도 하듯이...

트로이 전쟁 내내 아레스는 직접 전장에 내려와 트로이군을 응원했다. 창칼로 아카이아 병사를 수없이 베기도 하고, 때로는 트로이 병사로 변장해 의기소침해진 트로이 진영 군사들을 독려했다. 아카이아 연합군의 파상공세에 밀릴 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싸울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 트로이 군사들이 죽음의 위기에 몰리는 곤경에 처하면 재빨리 달려가 그들을 어둠이나 안개로 감싸며 보호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으니... 그는 트로이의 한 장수였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으로 보인다.

◆4. 아프로디테

아프로디테가 트로이군을 도운 직접 계기는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아들 아에네아스가 트로이 장군인 점. 또 하나는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던진 사과의 주인공. 즉 최고로 아름다운 여신이 가질 수 있다는 사과의 주인공으로 자신을 지목한 사람이 바로 파리스였으니, 자신을 낙점해 준데 대해 파리스에게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점. 지구상 최고의 미녀 헬레네를 안겨준 데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애정을 갖고 파리스의 조국 트로이를 도운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런 저런 인연으로 아프로디테가 전쟁판에 발을 들여놓기는 했지만, 사실 아프로디테는 전투나 싸움이랑은 어울리지 않는 사랑과 미의 여신이다. 그러니, 전장에 나타나서도 이렇다 할 공을 세우며 트로이를 도울 수는 없었다.

아테나, 아레스등이 직접 상대 진영 병사들을 벤 것 과는 다르다. 아프로디테는 대신 아들 아에네아스가 결투도중 죽음 일보직전의 위기에 몰릴 때 이를 지켜보고 있다가 자신의 옷에 아들을 감싸 하늘로 솟아오르는 뭐 이런 일을 할 뿐이었다. 아들 뿐아니라 파리스가 메넬라오스와 결투로 죽기 일보 직전에 이르자 역시 파리스를 들어 올려 트로이 성 내부의 고대광실로 돌려 보내는 식이었다. 아프로디테가 한 역할은 하나 더 있는데... 훗날 아킬레스에게 헥토르가 죽고 났을 때다. 아킬레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아 이리 저리 끌고 다니며 학대했지만, 헥토르의 피부는 털끝 만치도 상하지 않았다. 아프로디테가 신들이 사용하는 장미기름을 발라준 덕분이다. 이렇게 소극적이나마 트로이를 도왔지만, 시어머니 헤라나 시누이 아테나와 원수지간이 된 탓에 이들의 분노로 전장에서 상처를 입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5.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아폴론. 헤라클레스와 삼각대 놓고 싸우는 아폴론. 아폴론은 열성적인 트로이군 후원자였다. 루브르 ⓒ김문환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지상으로 귀양왔던 포세이돈. 트로이왕 라오메돈의 부탁을 받고 트로이성을 1년간 공들여 쌓아줬지만, 공사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트로이에 대해 단단히 앙심을 품고 있었다. 라오메돈은 더구나, 귀양온 포세이돈의 처지를 알고 포세이돈에게 공사대금은 커녕 말많으면 노예로 팔아 버리겠다는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귀양살이에서 풀려 하늘로 다시 올라간 포세이돈이 이를 악물고 트로이 공격에 나선 것은 이런 배경을 갖고 있다. 보복에 나선 포세이돈에 맞서 트로이를 지키려 한 신은 아폴론이다. 재미있는 것은 아폴론 역시 포세이돈과 함께 귀양와 트로이 성을 쌓고, 또 이다산에서 양까지 치고도 라오메돈으로부터 돈을 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포세이돈과 달리 과거를 용서하고 트로이를 돕고 있었다. 이유는?

아폴론이 라오메돈의 행태를 과거지사로 돌리고 트로이를 적극 지원한 것은 헥토르가 열심히 자신을 섬겨준 데 대한 답례로 볼 수 있다. 또 하나, 앞서 밝혔듯이 헤라와 관련된 구원(舊怨)도 떠오른다. 헤라는 한때 제우스의 사랑을 받았던 레토와 그녀가 낳은 자식들. 즉 아폴론, 아르테미스를 증오하고 있었다. 아폴론이나 아르테미스도 이를 잘 알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아폴론이 누나, 어머니와 함께 열심히 트로이를 도운 것은 헤라에 대한 반감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물론 아폴론이 트로이를 돕는다고 했지만, 큰아버지 포세이돈과 노골적으로 싸움을 하지는 않았다. 집안내 가풍의 유지는 물론 어른을 알아보는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예절일까? 아레스와 아테나가 치고 받는 육박전을 펼친 것과 대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