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국제

73. 멤논과 이디오피아

김문환

입력 : 2005.03.25 10:43

지중해 문명기 4권BRBR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nsp; 글 싣는 순서 BR4장. 트로이 전쟁의 전개 2(트로이 연합군) BR 1. 트로이 연합군 2.


- 지중해 문명기 4권--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4장. 트로이 전쟁의 전개 2(
트로이 연합군)


1. 트로이 연합군

2. 고대 그리스의 전투

3. 헥토르 1--삶과 죽음

4. 헥토르 2--시신훼손과 신들의 분노

5. 헥토르 3--시신송환과 장례

6. 아에네아스

7. 파리스 1

8. 파리스 2

9. 트로이로스

10. 펜테질레아와 아마존

11. 멤논과 이디오피아--오늘 이야기

12. 에오스

13. 사르페돈, 돌론

14. 아폴론, 아프로디테, 제우스

 

11. 멤논과 이디오피아

 

◆1. 멤논과 트로이 전쟁

 

멤논. 트로이를 도와 싸운 여러 나라와 또 그 나라를 이끈 지도자 가운데 이디오피아의 멤논을 지나칠 수 없다. 멤논은 누구인가? 먼저 그의 가계를 들여다 보자. 멤논의 아버지 이름은 티토노스. 라오메돈의 아들이다. 프리아모스 역시 라오메돈의 아들이니. 결국, 프리아모스와 티토노스는 형제간이고, 프리아모스는 멤논의 작은 아버지인 셈이다. 헥토르와 파리스는 멤논의 사촌형제다. 숙부의 나라, 사촌의 나라가 곤경에 처해있을 때 나서는 것은 당연한 우애다. 멤논은 모계쪽으로 더 빛나는 핏줄을 자랑한다. 멤논의 어머니는 인간이 아닌 여신 에오스다. 아킬레스나 아에네아스처럼 여신의 아들. 성스러운 피를 이어받은 성골이다.

멤논은 트로이가 10년간 아카이아 연합군에 시달리던 시점에 군사를 이끌고 나타났다. 그리고 여러 전투에서 아카이아 연합군을 무찌르며 공을 세웠다. 아킬레스 다음가는 역발산(力拔山)의 大아이아스와도 대결하는등 용맹을 떨쳤다. 급기야는 아카이아 연합군의 원로 장수 네스토르와도 한판 승부를 펼치게 됐다. 힘에서 밀린 네스토르가 위기에 처하자 아들을 불렀다. "아들아 아비좀 살려다오" 네스토르의 아들 안틸로코스가 한걸음에 달려와 아버지를 죽음 일보직전에서 구해냈다. 그러나, 아뿔싸, 아버지를 구하는 대신 자신이 멤논의 창에 맞아 죽고 말았다. 안틸로코스의 죽음은 멤논의 죽음으로도 연결된다. 왜그럴까?

 

아킬레스와 멤논의 대결. 가운데 2명이 결투를 벌이고 있다. 왼쪽에 방패를 들고 선 이가 아킬레스. 오른쪽에 비스듬히 쓰러지는모습이 멤논이다. 멤논이 지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도사람 뒤의 여인은 어머니 테티스와 에오스다.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안틸로코스는 아킬레스의 친구로, 부자(父子)가 함께 출전한 드문 경우였다. 안틸로코스는 잘생겼으며 보병의 필수조건인 뜀박질에 능했다. 달리기에서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 아킬레스가 파트로클로스 다음으로 우정을 보였던 친구가 바로 안틸로코스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아킬레스에게 알린 것도 안틸로코스였다. 훗날 이야기지만, 안틸로코스는 아킬레스처럼 파리스의 화살에 맞아 죽는다. 죽음의 길도 친구 아킬레스와 함께 걸어간 것인데... 무덤도 아킬레스, 파트로클로스, 안틸로코스 셋이 함께 썼으며 저승에서도 셋이 노닐었다고 한다. 이런 절친한 친구 안틸로코스가 죽었으니... 친구가 죽었을 때 아킬레스가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는 파트로클로스의 예에서 잘 드러난다. 이성을 잃고 친구의 복수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아킬레스가 안틸로코스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온 것은 당연한 일.

 

아킬레스와 멤논의 정면대결은 불가피했다. 둘은 서로를 향해 창을 겨눴다. 용장들이 서로의 목을 내놓으라고 으름짱 놓으면서 벌이는 대결이 여럿 있었지만, 아킬레스와 멤논의 대결은 또 다른 측면에서 놓칠 수 없는 빅 이벤트였다. 둘이 워낙 뛰어난 싸움꾼이요, 장수란 점 외에 관심을 모은 대목은 바로 어머니들의 전쟁. 아킬레스의 어머니는 앞서 살펴본 대로 바다의 요정 테티스고, 멤논의 어머니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다. 바다를 대표하는 미인과 인간세상에 광명을 가져오는 여신의 대결인 셈이었다. 아들의 싸움은 대리전.

누가 이길지를 떠나 분명한 사실은 둘 다 비련의 여인 이라는 점. 여신이라면 당연히 남신과 결혼해 부부가 영생을 누리며 함께 살고, 또 영생을 누리는 자식을 낳아야 한다. 그러나, 두여인은 모두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과 결혼하고, 나아가 언젠가 죽어야 하는 인간을 낳았다. 여신이라도 그리스 신화에서는 인간과 똑같은 모정을 갖는다. 자식의 희노애락에 함께 일희일비하는 연약한 모습을 보여 준다. 아킬레스와 멤논이 생명을 걸고 결투를 벌인다고 하니, 두 여신의 마음이 천갈래 만갈래로 갈라진 것은 쉽게 짐작해 볼 수 있겠다. 누구 하나가 죽어야 하는 결투에서.

 

에오스가 멤논의 시신을 들어올리는 모습. 아킬레스에게 져 죽은 아들의 시신을 돌보는 어머니의 마음이 어땠을까? 전장에서 자식을 잃은 모정이 어떨지 부시 대통령은 알고 있을까? 루브르 ⓒ김문환

 

지상에서 아킬레스와 멤논이 창을 겨누며 막 일전에 돌입할 즈음. 테티스와 에오스는 천상에서 제우스 앞에 나갔다. 이유는? 신들의 문제는 물론 인간사도 결정하는 제우스에게 서로 자신의 아들이 이길수 있게 해달라고 빌기 위해서였다. 이는 쉽게 보아 넘길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종교와 생각해도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신은 누구 편인가? 너와 나 모두가 같은 신에게 자신의 복과 자신의 승리를 기원하는데, 신이 둘의 소망을 동시에 들어줄 수 있을까? 불가능한 것이기에 논리로 따지기 보다 무조건적 믿음에 기대는 현상이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경향은 현실이 힘들수록, 또 나이가 들수록 더 강해지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두 여신이 와서 빌자 난처해진 제우스는 보물상자를 열고 저울을 꺼냈다. 운명의 저울이다. 두사람 가운데 하나가 죽어야 할 때 제우스가 반드시 꺼내 드는 저울이다. 좌우 대칭으로 생긴 저울. 가운데 중심대가 있고, 양쪽에 접시가 달렸다. 접시에 사람을 올려 본다. 그러면 무거운 쪽이 아래로 기운다. 아래는 지하세계 즉, 죽음을 나타낸다. 운명의 저울에서 무게가 더 무거우면 죽게 된다. 제우스가 저울에 아킬레스와 멤논을 올려 놓고 달아본 결과는? 그만 멤논의 접시가 지하세계를 향했다. 멤논의 죽음이다. 에오스는 오열하고 테티스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그렇게 둘의 전투는 결판났다.

 

◆2. 그리스신화에서 이디오피아

 

앞서 보았듯이 트로이 전쟁은 어머니들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지극한 모성애를 보여주는 대목이 곳곳에 나온다. 아킬레스의 어머니 테티스, 멤논의 어머니 에오스, 아에네아스의 어머니 아프로디테, 헥토르의 어머니 헤카베... 여신이든 인간이든 자신의 아들에 대한 한없는 사랑이 넘쳐 흐른다. 이 부분에서 고대 그리스와 오늘날 한국의 어머니상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아들 멤논이 아킬레스와 대결에서 패하고 아킬레스의 창에 맞아 숨졌을 때 에오스는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겪었을 것이다.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모든 병사들의 어머니 마음이 그랬겠지만... 새벽의 광명을 가져오는 여신 에오스가 이때 흘린 눈물이 우리가 아침마다 보는 아침이슬이란다. 풀잎마다 영롱하게 맺혀 아침햇살을 받으며 찬란히 빛나는 아침이슬이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여신의 눈물이었다니... 다소 놀랍지만 인간적이어서 아침이슬이 더욱 새롭게 느껴진다.

 

에오스가 눈물 흘리며 아들 멤논의 시신을 들어올리는 장면은 도자기 화공들의 주요한 그림 소재가 됐다. 그런데, 에오스가 멤논의 시신을 들어 옮긴 장소는 어디일까? 이디오피아다. 멤논은 이디오피아의 왕이었다. 제우스가 에오스에게 아들 멤논의 시신을 고국 이디오피아로 가져간 뒤 그곳에서 영생을 불어넣을수 있도록 허락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서 이디오피아를 오늘날 개념으로 아프리카 동북부 즉 이집트와 수단 남쪽의 나일강 상류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리스인들에게 이디오피아는 그곳이 아니었다. 지중해 연안 어디쯤이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아프리카라는 개념은 지중해를 벗어나지 않는다. 멤논 말고도 그리스 신화에 이디오피아가 종종 등장하는데, 안드로메다의 경우에서 본다. 페르세우스가 고르곤의 머리를 잘라 돌아오다 이디오피아 앞바다를 지나는데, 이디오피아 공주 안드로메다가 바닷가 바위에 묶여 있는게 아닌가! 그녀를 구해주고 결혼하는 페르세우스. 안드로메다가 묶여 있던 이디오피아 앞바다 바위는 오늘날 지중해 동부 연안 이스라엘 해안이라고 전한다.

 

안드로메다의 바위. 이스라엘 해안에 자리한다. 해안에서 200여m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작게 돌출돼 있다. ⓒ김문환

 

멤논이 간 장소가 이디오피아가 아니라 이집트 테베였다는 설도 있다. 테베는 일리아드에서 아킬레스가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평가하던 그런 곳이다. 호메로스가 일리아드를 적던 B.C 8c 그리스인들이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인데... 이후 페르시아에 멸망하고, 뒤이어 맥없이 알렉산더에게 무너지지만, 호메로스 시절만 해도 이집트는 감히 넘볼수 없는 어마어마한 역사적 시간적 무게를 지닌 문명의 보고였다. 그 이집트의 상징이 오늘날 나일강 중류 룩소르(테베)다. 테베의 카르나크 대신전은 건축학적, 예술적으로 당대 기술과 문화력을 총동원한 기념비적 건축물로 꼽힌다.

 

테베. 오늘날 룩소르를 찾으면 나일강 서쪽으로 왕가의 계곡이 나타난다. 투탕카멘의 미이라를 비롯해 숱한 이집트 파라오와 왕비들의 무덤이 설치됐던 나일강 서안. 그곳에 이르는 대로변에 요즘도 [멤논의 거상(巨像)]이라는 큰 동상을 마주하게 된다. 트로이 전쟁에서 죽었다가 영생을 얻은 에오스의 아들 멤논을 기리는 동상이다. 그냥 이집트만 방문하고 말면 멤논의 거상이 무엇인지 지나치기 쉽다. 많은 관광객들이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는데, 트로이 전쟁의 트로이 연합군측 용장 멤논을 기린 동상임을 알고 옷깃을 한번 여며본다면 새로운 차원의 탐방이 될 것이다.

 

멤논의 거상. 이집트 나일강 중류 룩소르(테베)에 남아있는 멤논의 거상. 많은 관광객들이 들러 멤논의 거상 앞에서 사진을 촬영한다. 트로이 전쟁에 등장하는 멤논의 거상인지 알고 본다면 의미가 더욱 새로울 것이다. ⓒ김문환

 

멤논의 거상을 만든 사람은 아멘호테프 3세. 고대 이집트 18왕조의 9번째 왕이다. 시기로 따지면 B.C 14c. 태어난 연도는 불확실하지만 B.C 1379년에 죽은 것으로 기록되는 아멘호테프 3세때 이집트 왕조는 절정의 번영기를 맞이한다. 앗시리아, 히타이트 같은 오리엔트 각국과 평화를 유지하고, 나일강 남쪽의 누비아 지방을 원정하며 국력을 신장시켰다. 각국과 교역으로 부가 증대하자 대형 건축물 공사에 열중했고, 그 결과 룩소르(테베)에 카르나크 대신전 같은 어마어마한 신전이 들어설 수 있었다. 나일강 서안에도 대규모 장제전(葬祭殿)을 만들었다. 이 장제전 입구에 세운 거상(巨像) 가운데 하나가 훗날 멤논의 거상이라고 불리게 된 작품이다. 호메로스가 일리아드를 기록하기 6백여년 전에 이미 이집트 테베에 멤논의 거상이 들어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