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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아에네아스

김문환

입력 : 2005.03.14 09:17

지중해 문명기 4권BRBR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nsp; 글 싣는 순서 BR4장. 트로이 전쟁의 전개 2(트로이 연합군) BR 1. 트로이 연합군 2. 고


- 지중해 문명기 4권--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4장. 트로이 전쟁의 전개 2(
트로이 연합군)


1. 트로이 연합군

2. 고대 그리스의 전투

3. 헥토르 1--삶과 죽음

4. 헥토르 2--시신훼손과 신들의 분노

5. 헥토르 3--시신송환과 장례

6. 아에네아스--오늘 이야기

7. 파리스

8. 트로이로스

9. 펜테질레아와 아마존

10. 멤논과 이디오피아

11. 에오스

12. 사르페돈, 돌론

13. 아폴론, 아프로디테, 제우스

 

6. 아에네아스

 

◆1. 미의 여신의 아들

 

아카이아 연합군에는 기억에 남는 장수들이 많다. 아킬레스를 제외하더라도 아가멤논, 2명의 아이아스, 오디세우스, 디오메데스... 그러나, 트로이 연합군으로 오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최고 사령관이자 무공을 가장 많이 세운 헥토르를 제외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별로 없다. 헥토르의 동생이자 전쟁의 원인 제공자인 트로이 왕자 파리스 다음부터는 탁 막히고 만다. 호메로스가 '일리아드'를 통해 트로이 전쟁을 아카이아 연합군 위주로 묘사한 탓이 크다. 또, 그리스인들이 후일담으로 확대 재생산해 낸 트로이 전쟁관련 신화가 주로 아카이아 연합군측 인물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기며 후세에 남는 트로이 사람이 있으니, 바로 아에네아스(Aeneas)다.

 

아에네아스는 누구인가? 지구상에 태어았던 그어느 인간보다 황홀한 족보를 가진 남자다. 최고신 제우스의 아들인가? 그렇지는 않다. 제우스의 아들이라면 상품가치가 떨어진다. 비록 제우스가 천상천하를 관장하는 최고의 신이지만, 워낙 바람기가 많아 도처에 자식을 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바다의 요정 테티스의 아들인 아킬레스 처럼 여신의 아들? 그리스인들이 가장 성스럽게 숭배했던 올림포스 12신 가운데 아들을 낳은 여신은? 제우스의 딸인 아테나와 아르테미스는 처녀신이다. 불의 여신 헤스티아 역시 처녀로 살았다. 이들은 남자와 동침하지 않아 자식이 없다. 데미테르는 제우스와 사이에 딸 페르세포네 한명만을 뒀고, 헤라 여신은 절름발이 남자신 헤파이스토스를 낳았을 뿐이다. 이제 마지막 남은 한명의 여신. 아프로디테.

 

유명한 [밀로의 비너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루브르에 보관중인 조각. 그리스 밀로섬에서 발굴됐다. 루브르. ⓒ김문환

아에네아스는 아프로디테의 아들이다. 최고의 영광을 누리던 올림포스 12신의 여신 6명 가운데 최고의 미를 자랑하는 아프로디테 소생이니, 고대 사회 이보다 더 영광스런 핏줄이 어디 있으랴. 아에네아스 역시 이를 늘 자랑으로 삼고 살았다. 트로이 전쟁도중 전투에서 발을 뺐다가 재참전한 아킬레스가 헥토르와 붙기전 아에네아스와 대결을 벌인 적이 있다. 이 대목에서 아에네아스는 자신의 자랑스런 가계(家系)를 구구절절이 늘어놓으며 전의를 불사른다.

 

아킬레스가 먼저 아에네아스를 우롱했다. "어이! 친구, 겁없이 나랑 대적하려고? 나를 베봐야 자네는 트로이의 왕이 되지 못할 텐데... 프리아모스에게는 아들이 많지 않나. 왕의 자리가 아니면 땅마지기나 얻어서 밭갈아 먹고 살게? 그것도 쉽지 않을걸. 참, 자네, 전에 이다산에서 나랑 싸우다 도망간 적 있지? 겁장이 같으니라구. 나의 추상같은 공격에 자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더군.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말야. 하하" 아킬레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때 말야 나는 자네 도망간 뒤를 따라가 많은 전리품과 아름다운 여인들을 얻었어. 고마우이. 자네는 다행히 제우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말야. 그렇지만, 이번에도 제우스께서 자네를 구해 주실까? 어림없는 소리. 큰화 자초하지 말고 어서 무릎 꿇고 빌던지, 아니면 나랑 대결을 피하고 도망가게나. 지금 목숨 보전하는 길을 일러주고 있는 거야. 큰 화를 당한 뒤 후회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행동이지. 안그런가?"

아에네아스가 말을 받았다. "이보게나 아킬레스. 말솜씨만 늘었군 그래. 내가 그 따위 어린애 같은 말에 겁을 먹을 줄 알것 같은가? 그렇다면 큰 오해로군. 나도 욕이나 남 놀려주는 일에는 이골이 났지." 전투에서는 서로 기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법. 그러려면 서로 상대의 약점을 들춰내고 자신의 강점을 부풀리는게 지름길이다. 그래야 상대는 위축되고 자신은 기가 살아나기 마련이다. 아킬레스가 아에네아스의 기를 죽이려 아에네아스의 부끄러운 과거사를 꺼내들자, 아에네아스는 재빨리 자신의 장점이자, 아킬레스의 약점을 입에 올렸다. 바로 가계(家系) 문제.

 

"이보게, 아킬레스! 우리 서로 조상님들 이력은 알고 있겠지? 오라 자네 부친은 펠레우스요, 모친은 바다의 요정 테티스시군. 나로 말씀 드려 볼까? 자네가 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말야. 말이 길어지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들어보게나. 참을성은 장수의 으뜸가는 덕목 가운데 하나 아닌가. 우리 아버지도 자네 아버지처럼 인간이셔. 안키세스이시지. 어머니는? 자네 미의 여신을 아시는가? 아프로디테. 바로 내 어머니셔. 올림포스 12신 가운데 미를 관장하는 우리 어머니 아프로디테를 사랑에 빠지게 만드신 우리 아버지 좀 더 소개할테니 들어보게나. 제우스께서 아틀라스의 따님 엘렉트라를 사랑하셨어. 그사이에서 다르다노스가 태어나셨지. 다르다노스는 이다산 자락에 달다니아라는 나라를 세우셨다네. 얼마나 부자였는지 들려줄까? 기르는 말이 자그만치 3천마리를 넘었어. 자네처럼 작은 나라에 살다보면 상상하는 것조차 어려울 만큼 많은 숫자야. 다 이해해 줌세."

 

가니메데스. 지구상 남자 가운데 몸매가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가니메데스는 아에네아스의 조상이다. 루브르. ⓒ김문환

숨을 고른 아에네아스가 말을 이었다. "다르다노스는 에리크도니오스라는 외아들을 두셨지. 이분이 트로이의 왕이 되는 트로스를 낳으신 거야. 트로스는 아들을 삼형제나 두셨다네. 큰아들 일로스, 둘째 아들 아사라코스, 그리고 막내인 지구상 최고의 미남자 가니메데스. 일로스의 아드님이 라오메돈이셔. 라오메돈의 아들이 현재 프리아모스 왕이시고. 아사라코스는 카스피를 낳으셨고, 카스피의 아드님이 바로 우리 아버지 안키세스시라네.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와 프리아모스 왕은 6촌이시지. 프리아모스 왕은 결국 나의 7촌 아저씨라네. 그러니까 헥토르와 나는 8촌 지간이지. 물론 내가 프리아모스의 사위이니 헥토르와는 처남 매부지간이기도 하고... 내 집안 소개는 이정도로 마치는게 좋겠지? 실전으로 들어가야 하니 말야."

 

최고의 미를 자랑하는 아프로디테 여신의 아들임을 내세워 바다요정(테티스) 정도의 아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자랑한 아킬레스. 미의 여신을 사로잡은 미남자의 아들이라는 사실까지 들먹이며 은근히 아버지 자랑까지 마친 아에네아스는 힘껏 창을 집어 들었다. 있는 힘을 다해 아킬레스에게 창을 던졌다. 결투의 결과는? 쉽게 결론만 살펴보자. 둘은 서로 상대를 향해 창을 한번씩 던졌다. 이어 아킬레스가 큰 바위를 들어 아에네아스를 향해 던지려는 절명의 순간. 아폴론이 위기에 빠진 아에네아스를 구해주는 것으로 결말난다.

 

◆2. 여신의 마음을 빼앗은 인간, 안키세스

 

아에네아스가 자랑스럽게 여겼던 고귀한 혈통. 한치 앞을 예견할 수 없는 살벌한 전쟁판에서 언제 목이 날아갈지 모르는게 연약한 인간사의 이치인데, 이를 넘어 신들의 보호를 받아 목숨을 구명받는 축복받은 인생. 바로 그 아에네아스가 태어난 과정이 궁금하다. 여신 아프로디테는 자유를 찾아 헤맸다. 남편이나 가정에 얽매이는 여성이 아니었다. 결혼과정부터 유쾌한 기억이 없다. 그녀가 결혼한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헤라가 자신의 아들 헤파이스토스와 화해하기 위해 올림포스의 미(美)를 대표하는 절세가인(絶世佳人)의 상징, 아프로디테를 배필(配匹)로 정해주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맺어지게 된 것. 절름발이라고 사랑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아프로디테는 자신의 자유선택이 아닌 결혼에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가정과 남편에 애정이 없는 여인은 밖으로 도는 법. 동서고금(東西古今)에 예외가 드물다. 아프로디테의 이런 분방한 생활은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칭송되는 것을 넘어 사랑의 화신(化身), 후세에는 한발 더 나아가 창녀(娼女)의 수호신(守護神)으로 추앙받는 계기가 된다. 로마시대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화산재에 묻혔던 나폴리만(灣) 근처의 빼어나게 아름다운 도시 폼페이. 18c 이후 로마문명의 살아있는 고고학 교과서가 된 폼페이의 수호신은 아프로디테였다. 폼페이는 국제무역항으로 성적으로 아주 분방했으며 사랑을 돈으로 사고파는 일이 자유로웠던 도시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아프로디테가 어떻게 수많은 신을 물리치고 수호신이 될 수 있었는지 쉽게 이해된다.

 

아프로디테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영광을 누린 애인은 누구였을까? 역시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랄까? 같은 올림포스 12신 출신으로 전쟁의 신인 아레스다. 출신도 같지만, 이미지도 각각 남성과 여성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손색없다. 아프로디테가 아름다움의 대명사라면 아레스는 강한 남성의 표상이다. 아프로디테는 난폭하고 거친 성정의 괄괄한 남자, 피를 좋아하고 그래서 분란을 일으켜 다투는 싸움꾼 아레스를 사랑했다. 주변에서 이런 만남을 자주 보게 된다. 빼어나게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들. 이들은 지적이고 점잖은 남자보다 텅 비었지만, 야성적인 터프가이와 맺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아프로디테는 아레스와 불륜을 넘어 인간과도 만나 사랑을 나눴다. 그중 한명이 이다산에서 양을 치던 목동 안키세스였다. 트로이에 가깝던 이다산은 미남자를 배출하는 동네로 이름 높다. 가장 아름다운 몸매를 가졌다는 가니메데스(안키세스의 작은 할아버지) 역시 이다산에서 양치던 목동이었다. 아프로디테가 가니메데스를 배출한 이다산을 기웃거렸음은 어렵지 않게 눈치 챌수 있는 대목이다. 물 좋은 난전(亂廛, 원래는 육의전에서 파는 물건을 몰래 파는 거리의 불법 상점이지만 여기서는 亂轉, 즉 어지럽게 몸을 흔들고 굴리며 불법을 행하도록 방치하는 곳)으로 가야 싱싱하게 살아 팔닥거리는 어린 닭을 고르는 법. 연애의 대가 아프로디테가 멋진 남자를 만나기 위해 어느 곳으로 가야 하는지 잘 알았음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허름한 누더기를 걸쳤지만, 훤칠한 몸에 준수한 용모, 비범한 눈매. 아프로디테는 산중에서 안키세스를 만나는 순간 한눈에 반해 버렸다. "그래, 내가 찾던 바로 그 이상형이야'". 얼굴 가득 회심의 미소를 머금은 아프로디테. 그러나, 유한(有限)한 생명의 인간이 무한(無限)의 삶을 누리는 영생불사(永生不死)의 신을 만나 쉽게 사랑할 수는 없는 법. 신과 인간의 질서를 무너트리면 누군가 불행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마음속에 찍은 남자를 놓칠 수 없던 아프로디테는 작전을 짰다. 변장술을 택한 것. 이다산 옆동네인 프리기아 지방을 다스리던 임금 오트레우스의 딸로 둔갑했다. 물론, 더욱 예쁜 모습으로... 그런데 프리기아왕의 딸이 어인 일로 이다산 깊은 산중에 나타났단 말인가!

 

당시 오트레우스는 안키세스의 6촌인 프리아모스왕을 돕기 위해 이곳에 와 있었다. 프리아모스왕은 여인천국 아마존의 여전사들과 싸우던 중이었다. 안키세스는 6촌 형제 프리아모스를 돕기 위해 트로이에 온 오트레우스왕의 딸이란 말에 큰 의심을 품지 않았다. 의심의 눈초리를 걷어내고 바라본 여인의 모습은 이제껏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최고의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여신과 사랑에 빠진 뒤 상처를 입게 될 가련한 운명의 목동 안키세스. 잠시의 행복이 영원한 불행으로 이어질 줄 모르고 불쌍하게도 양을 몰던 나무 지팡이를 집어 던지고, 대신 여신의 손목을 덥썩 잡았다. 그리고 산중에서 사랑을 나누니... 안키세스와 아프로디테는 그렇게 꿈같은 시간(얼마동안인지 기록이 없다)을 보냈다. 금강산 해금강의 감호에 얽힌 우리의 전설 '선녀와 나무꾼'을 생각하면 쉽다.

 

그러나, 꿈같은 사랑은 짧고 이별의 아픔은 긴 법. 인간사의 얄궂은 이치 가운데 하나다. 여신과 인간이 천계의 질서를 무너트리고 제우스의 허락도 없이 함께 살 수는 없는 노릇. 이제 급해진 처지를 생각해 아프로디테는 올림포스 하늘로 돌아가야 할 몸. 소원대로 안키세스를 품에 안고 마음껏 사랑을 나눈 아프로디테는 본색을 드러냈다. "나는 프리기아 오트레우스의 딸이 아니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요." 소스라치게 놀라는 안키세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뭐라고요. 아프로디테. 그럴 리가. 내가 여신과 사랑을..." 뒤로 나자빠질 뻔한 안키세스에게 아프로디테가 던진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나는 이제 돌아가야 하오." 예쁜 새색시와 이별해야 하다니. 안키세스는 너무 슬퍼졌다. 선녀를 잃은 나무꾼의 심정이랄까. 그러자, 아프로디테는 선물을 마련해뒀다는 표정으로 "너무 슬퍼하거나 놀라지 마시오.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법. 내가 당신을 흠모해 사랑을 나눴으니, 당신의 아들을 낳아 드리리다."

 

안키세스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신이 여신과 사이에서 아들을 두게 되다니... 놀라움과 슬픔, 기쁨이 순식간에 교차하는 혼돈 속의 안키세스 귓전에 아프로디테가 사랑의 키스와 함께 당부의 말을 잊지 않고 들려줬다. "우리 둘의 일은 절대 비밀이요. 만약 천기(天機)가 누설 되면 당신은 큰 벌을 받으리다. 잊지 말아요". 뿅. 아프로디테는 사라졌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 새로운 생명이 힘차게 울고 있었으니... 미의 여신의 아들 아에네아스다. 안키세스는 아에네아스를 잘 길렀지만, 그만 훗날, 포도주의 취기를 누르지 못하고 아기 엄마의 신원을 밝히고 말았다. 쯧쯧. 노한 제우스가 벼락을 던지고, 안키세스는 목숨을 잃는 대신 벼락이 다리에 스치면서 절름발이가 되고 말았다. 신분을 넘는 사랑의 뒤끝은 신파조 TV 연속극이나 산울림 김창완의 노랫말이 아니어도 너무 쓴 경우가 많다. "내게 사랑은 너무 써..."

 

◆3. 트로이전쟁의 활약

 

치료받는 아에아네스. 아에네아스 관련 고대 예술 작품으로는 드물게 남아있는 유물이다. 트로이 전쟁에서 상처를 입은 아에네아스를 의사가 치료하고, 옆에서 아들이 울면서 바라보고 있다.왼쪽 위에는 어머니이자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가 돌보고 있다. 아에네아스는 전쟁기간 내내 어머니 아프로디테의 도움을 받는다. 프레스코. 나폴리 박물관. ⓒ김문환

 

브래드 피트와 올랜드 볼룸이 주연했던 영화 [트로이]에서는 아에네아스가 단 한번 등장한다. 그것도 앳도니 청년의 모습인데, 트로이가 패망할 때 도망가는 장면으로... 이는 신화 내용과 아주 다른 모습이다. 아에네아스는 그렇게 간단히 나약하게 처리돼야할 인물이 아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비롯해 전승에서도 아프로디테의 아들 아에네아스의 공적은 다른 트로이측 장수들이 무시되는 것과 달리 살아 숨쉰다. 그가 미의 여신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리라. [일리아드]를 통해서 볼 경우 大아이아스, 디오메데스는 물론 아킬레스와도 결투를 벌인다. 특히, 아킬레스가 전투에서 발을 뺀 뒤 헥토르와 함께 맹렬한 기세로 아카이아 연합군을 몰아치는 것으로 기록된다.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스 대신 참전했다가 죽은 뒤 그의 시신을 차지하기 위한 대접전이 펼쳐질 때 호메로스는 아에네아스의 모습을 매로 아카이아 연합군의 모습을 매에 잡아먹히는 작은새나 풀벌에 비유할 정도였다.

 

물론 부상도 당했지만, 그럴 때마다 어머니 아프로디테가 아들 아에네아스를 잊지 않고 돌봤다. 다른 신들도 나서 트로이 전쟁 내내 아에네아스의 신변을 보호해 줬다. 아프로디테는 트로이 함락 직후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죽음의 위기에 놓인 아에네아스가 늙어 여든 살 고령이 된 아버지 안키세스를 업고 나머지 가족을 이끌고 트로이를 탈출해 신천지로 갈 수 있도록 도왔다. 이 과정은 아주 오랜 뒷날 B.C 1c 로마제정시대 초기 서사시로 다시 태어났다. 옥타비아누스 황제의 후원을 받은 궁정 시인이랄까? 로마시대 최대 시인이라는 베르길리우스가 [아에네이드]라는 시는 아에네아스가 주인공이다. 호메로스가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아]를 기록할 때 없던 부분이다. 로마가 자신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황제 가문에 신성을 불어넣기 위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아에네이드]의 내용은 뒤에 다시 자세히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