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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해석은 법관이 해야"

심석태

입력 : 2005.03.11 16:21

김영일 헌법 재판관 퇴임사


오늘(11일) 퇴임한 김영일 헌법재판관이 퇴임사를 통해 뼈있는 얘기를 했습니다. 헌재를 정치적논리로 재단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헌법은 법관이 해석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영일 헌법 재판관 퇴임사>

육군 법무관을 마치고 1970년 9월 1일자로 대구지방법원 판사로 임명됨으로써 나의 법조 생활의 첫걸음을 내딛은지 34년여만에 이제 후배 후배 법조인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재야로 나가야할 시기가 온 것입니다.

공직생활 막바지에 5년 3개월간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임무를 맡게 되어 개인적으로는 더 없는 영광이었으나, 한편 헌법재판관이라는 중책을 수행해보면서, 그 막중한 책임감을 감당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앞섰던 것이 어제일 같은데 벌써 그만 두어야하니, 세월의 덧없음을 새삼느끼게 됩니다. 그간 헌법재판소장님을 비롯한 헌법재판관 분들의 우애넘친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진지하게 일하면서 지내온 것을 대단히 고맙게 생각합니다.

법원의 일반재판이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건의 해결에 있고, 따라서 그 사건의 실체가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그 불안한 사건의 실체에 법률을 적용하여 사태를 풀어나가는 것이 법원의 재판이라고 한다면, 우리 헌법재판소는 그 구체적인 사건을 법률 자체가 헌법에 위반되는지 자체를 심판의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 헌법재판관은 헌법의 각 관계조항의 의미와 헌법정신, 그리고 그 위배여부를 판단하여야 하는 법률의 의미를 파악하는 일을 주로 하게 되는 것이므로, 그 결정의 파장 파고는 개개의 사건 당사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법률의 적용을 받는 전국민과 모든 국가기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에는 일반적으로 재심도 허심도 허용되지 않을 뿐만아니라,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다시 심판할 헌법재판소의 상급심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헌법재판관의 책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고, 또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우리 국가 국민 어느누구도 모두 이에 따르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헌법 재판에 관한한 우리의 결정은 국가사회에 있어 지고 지순의 결정으로 간주되고, 우리는 헌정질서와 법질서의 유지 경영에 최선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의 기본권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는 것이 헌법이요, 헌법정신이며, 사회의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인간관계를 집약해 놓은 것이 법이라 생각할 때 헌법과 헌법정신 그리고 법률의 의미해석은 한치의 오류도 있어서는 안되고, 우리 국민 모두가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이론적 뒷받침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아래, 난 헌법재판소의 일에 임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판결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정치적 판단에 속한다고 말한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견은 우리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폄하함이 있는 의견일 뿐 나는 이러한 의견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우리 헌법재판소를 사회각계의 사람들로 구성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법이 지닌 고유한 의미를 찾아내고, 거기에 적용할 헌법의 의미와 헌법 정신 등을 해석해내는 작업이야 말로 진정 오랜 세월 법의 해석 작업에 임하여 왔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림없이 오로지 국민의 기본권과 헌법, 헌법정신을 찾아내어 선포하는 법률 전문가만이 할 수있는 일이지, 거기에 법을 전공하지도 않은 어떤 상식으로 법률가를 대체하여 그와 같은 일을 해낼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국가의 선진화 잣대는 무엇입니까? 경제적인 풍요의 정도만으로는 선진화의 잣대로 쓸수 없고, 군사력의 강도만으로는 더 더욱 선진화의 잣대로 쓸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한 국가의 정치는 물론 모든 국가사회 활동의 현상이 합헌적 합법적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국민이 그 안에서 안온하면서도 활기찬 생활을 만끽하는 그러한 나라의 국가를 가르켜 우리는 선진국가라고 합니다.

또한 헌법재판관에게는 정치적인 감각도 필요하다고도 합니다. 그 정치적 감각은 헌법과 법률의 해석 작업에 있어서 도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정치적 감각이라는 것은 그 범위내에서 필요한 것이지, 더이상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정치적으로 내리는 데까지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헌법재판관의 정치적 감각이라는 것이 어느 정치적 행태의 뒷받침으로 작용한다면, 이는 곧 헌정질서 법질서의 이완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며, 그것은 뒤이어 곧바로 헌법재판소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 불을 보듯 뻔하며, 국민의 기본권은 한낮 헌법의 상실에 지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국가적인 무거운 사건들을 처리해내면서 헌법재판소의 존립의 의미와 근거를 잊어버린채, 우리의 결정을 폄하하는 시도를 우리는 듣고 봐 왔습니다. 이러한 지각없는 행위를 자향하는 사람들이 진정 나라를 위하고 헌법을 수호하고자 하는 국민들의 의회를 대변하고 있는 것인지 대단히 의심스럽습니다.

 헌법이나 헌법정신이 이렇게도 해석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어서는 국가 사회를 질서있게 운영할 수 없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어던 결정에 대해서도 우리는 국민누구에게도 유연하고 설득력 있게 이를 설명할 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헌법재판소를 설치한지 17년이나 되어, 초창기 헌법재판소라는 이름은 적합치 아니하며, 우리 국민은 헌법재판의 선진국 국민들이 그 초창기에 오랜시간을 두고 투쟁하면서 겪어온 기본권 의식과는 크게 다르게, 짧은 시간안에 정치적 격동기를 겪으면서, 국민의 기본권 인식과 신장에 급속도로 커다란 의식의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국민의 의식의 자각과 발전 속도에 버금가는 아니 그에 앞서는 모습을 유지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제 공직을 떠남에 있어 헌법재판관에 임용된 이래 5년3개월간 줄곧 나의 헌법재판관 생활을 어떻게 해야 제대로 하는 것이 될까라는 물음에서 헤어나 본적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헌법 재판소장님을 비롯한 재판관 여러분, 저는 이제 무거운 짐을 벗고 물러납니다. 헌법재판소장님을 비롯한 미더운 재판관 여러분들과 새로 오신 훌륭한 후임 재판관이 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여러분들의 곁을 떠나갑니다.

 한 건마다 사건을 처리하면서,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기 위하여 함께 고민을 하고 고생을 하면서 재판관들의 등뒤에서 묵묵히 일하여 준 분들의 노고를 치하며, 또한 사무처장님을 비롯한 사무처 여러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아시다시피 헌법재판소는 역사속에 면면이 이어져 내려가는 국민과 나라를 위하여 존재하는 기관입니다. 다함께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인정받고 활기찬 삶을 영위해 가는 아름다운 나라로 만들어가는데 여러분들이 노력해 주실 것을 당부합니다. 그것이 헌법재판소에 근무하는 여러분들의 공인으로서의 직분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