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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알렉산더의 자취를 따라 1

김문환

입력 : 2005.01.25 14:56

지중해 문명기 4권BR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BR 글 싣는 순서 3장. 트로이 전쟁의 전개 1(아카이아 연합군) &nsp; 1. 헬레네 송환 협상 2,3,4,5,6


-지중해 문명기 4권--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3장. 트로이 전쟁의 전개 1(아카이아 연합군)

 

1. 헬레네 송환 협상

2,3,4,5,6,7. 아킬레스 1.성장, 2.참전,3.사랑,4.브리세이스,5.헥토르와 대결,6.죽음

8. 고대 그리스의 애정사

9. 파트로클로스

10,11,12,13. 올림픽 1,2,3,4

14. 大아이아스

15. 그리스, 직접 민주주의

16,17,18 민주주의를 이끈 사람들 1,2,3

19. 중우정치와 민주정치

20. 고대 민주주의와 현대민주주의

21. 미국 민주주의의 현실

22. 오디세우스

23. 디오메데스, 小아이아스

24,25 네오프톨레모스, 필록테테스

26, 27,28,29,30,31,32,33,34,35,36 알렉산더와 아킬레스 1,2,3,4,5,6,7,8,9,10,11

37,38,39.알렉산더의 자취를 따라 1,2,3--오늘 이야기

40. 테티스, 헤파이스토스, 아테나

 

37. 알렉산더의 자취를 따라 1

 

***알렉산더의 발자취를 따라***

     영화 [알렉산더]는 지난해 봄 큰 인기를 모았던 [트로이]에 비해 흥행에는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역사극으로서 알렉산더 시대 역사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알기 쉽게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또, 알렉산더가 가슴 깊이 품었고, 마침내 일궈냈던 코즈모폴리탄적 세계주의와 헬레니즘 문명의 의미도 제대로 살리거나 담아내지 못했다는 지적에 귀가 쫑긋 해진다. 알렉산더와 관련된 몇가지 에피소드만을 특징적으로 부각시키는 접근법은 전체적인 이해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영화를 어렵게 만들어 지루함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적인 사실관계를 숙지하고 있는 관람객들은 그나마 감독의 의도를 읽을 수 있겠지만, 사전 지식이 많지 않은 경우에는 내용 연결이 툭툭 끊어지는 혼란속에 3시간을 끌려 다녔겠다는 느낌이다.

 

     사실 2천 300년 전 알렉산더 시대의 역사란 게 그리 쉽게 접근할 소재가 아니란 점은 이해가 된다. 또, [트로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신화 즉 파리스와 헬레네의 사랑의 도피, 아킬레스의 활약등 서양 역사에서 수천년 입에서 입으로 내려온 전설이 아니란 점에서도 낯설다. 알렉산더 역시 사실을 넘어 전설과 신화가 돼 오늘에 이어진다고 하지만, 정복전쟁 과정의 모든 상황은 진실을 가진 역사적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해석과 각색의 여지가 넓은 신화보다 구성에서 취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좁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극적 흥미나 재미가 떨어질 수 밖에... 무엇보다 관심을 반감시키는 요인은 [트로이]에서 아킬레스와 브리세이스의 사랑, 헥토르의 의리나 가족과 조국에 대한 헌신같은 뭔가 정서적으로 공감할 장치가 [알렉산더]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콜린 파렐이나 발 킬머, 안젤리나 졸리 같은 스타를 동원했다고 하지만, 브래드 피트 같은 간판 스타를 본다는 기대감도 없었을 테고... 전체적으로 후한 점수를 받기 어렵게 되고 말았다.

 

     그러나, 지난날을 돌아보는 역사물이 지속적으로 영화화 되고, 그로 인해 작으나마 인류의 과거를 반추(反芻)해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기회로 삼는다는 것은 나쁘지 않다. 지금까지 11편에 걸쳐 신화속 아킬레스와 역사속 알렉산더, 그리고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문명권의 맹주로 부상하게 된 배경, 이어 페르시아를 정복하면서 세계제국으로 성장하는 과정, 나아가 알렉산더 사후 제국의 분열과 멸망, 알렉산더의 유산인 헬레니즘에 대해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살펴봤다. 이제 끝으로 알렉산더의 발길이 닿은 영광과 수난의 궤적을 훑으며 그가 머물렀던 도시와 그의 삶을 연대순(일종의 편년체 전기)으로 간략히 더듬어 본다. 탐방사진과 함께. 그러나, 터키의 고르디온과 이집트의 시와, 이라크의 과가멜라와 바빌론,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드등 알렉산더의 자취를 간직한 중요한 곳을 아직 탐방해 보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1.펠라 2. 아테네 3. 델피 4. 디온 5. 트로이 6. 페르가몬 7. 에페스 8. 밀레토스,프리에네 9. 할리카르나소스 10. 페르게, 아스펜도스, 시데 11. 카파도키아 12. 타르수스 13. 아다나 14. 다마스커스 15. 비블로스

16. 시돈  17. 티레 18. 아코, 카이세리아, 야파, 가자 19. 멤피스 20. 나일강, 알렉산드리아

21. 수사 22. 페르세폴리스 23. 이스파한 24. 탁실라 25. 인더스강 26. 파사르가드

 

지도. B.C 334년 그리스 본토 펠라에서 페르시아 원정을 시작한 알렉산더의 궤적을 직접 지도로 그려봤다. 손작업이다 보니 도시의 위치가 다소 정밀하지 않을 수 있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알렉산더는 흑해와 지중해를 가르는 헬레스폰트(다다넬즈)해협을 건넌 뒤 트로이에 들러 제를 올렸다. 이어 페르가몬, 에페스등 이오니아 지방과 할리카르나소스, 이수스를 거쳐 티레, 아코등 옛 페니키아 지역의 도시들을 점령했다. 나일강의 멤피스, 알렉산드리아등 이집트를 손에 넣은 뒤 다시 북으로 올라와 과가멜라 전투를 치르고, 바빌론, 수사, 페르세폴리스등 페르시아 제국의 심장부들을 접수했다. 이어 페르시아의 동쪽 변방 소그디아나, 박트리아, 간다라 지방을 공략한 뒤 인더스 강 건너 강력한 인도의 코끼리 부대와 격전을 치렀다. 이후 퇴각을 결정해 인더스강을 따라 남하해 인도양에 닿았다. 서쪽 게드로시아 사막을 가로질러 파사르가드에 돌아온 때가 B.C 324년. 무려 10년이 넘는 대장정이었다. 수사에서 B.C 324년 합동 결혼식을 치르고 이듬해 B.C 323년 아라비아와 카르타고, 로마의 원정을 앞두고 제국의 중심부이자 수도 바빌론에서 숨을 거뒀다.

 

◆ 1. 펠라--B.C 356년

펠라. 알렉산더가 태어나고 교육을 받고 페르시아 정벌에 나선 마케도니아의 수도. ⓒ김문환

     알렉산더는 B.C 356년 펠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 어머니는 마케도니아 북방의 에페이로스 공주 올림피아스. 양국간 화평을 꾀하기 위한 정략결혼이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용기가 뛰어났던 알렉산더는 거칠기로 소문난 명마 부케팔로스를 길들이면서 명장으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다. 펠라의 궁정에서 마케도니아 출신으로 아테네에서 명성을 쌓은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학문을 익혔다. 타고난 싸움꾼에 지략가지만, 학문을 숭상하고 문화, 예술을 애호한 그의 특성은 이때 길러졌다. 청년으로 자라면서 B.C 338년 카이로네이아 전투등 많은 공을 세우지만, 아버지가 순수 마케도니아 혈통의 젊은 여인과 결혼하면서 아버지와 갈등을 겪는다. 유배도 당하는등 시련의 시기도 거쳤지만, B.C 336년 필리포스 2세가 갑자기 암살 되면서 장군들의 추대와 본인의 결연한 대처로 왕위에 올랐다. 왕권에 도전할 수 있는 정적들을 모두 제거해 확실하게 왕권을 다졌다. 펠라의 궁정 유적에는 아직도 왕궁 바닥을 장식했던 자갈 모자이크등이 다수 남아있다.

 

◆ 2. 아테네--B.C 335년 지모2 S275.

아테네. 제우스 신전과 멀리 바위언덕 꼭대기 파르테논 신전. 제우스 신전은 B.C 6c 공사를 시작해 로마시대 하드리아누스 황제때 끝났다. ⓒ김문환

     필리포스 2세가 죽은 뒤 아테네는 북방 마케도니아의 힘을 약화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다. 20살 애송이 알렉산더가 왕이 됐다고 하자 모두 쾌재를 부른 것이다. 그러나, 사람 잘못 봤다. 테베와 아테네가 알렉산더에 반기를 들지만 알렉산더에게 무참히 짓밟힌다. 알렉산더는 보복전쟁을 통해 아버지 필리포스 2세가 구축해 놓은 코린트 동맹(헬라스 동맹)의 맹주로 인정받아 그리스 도시국가들에 대한 우위를 지켜냈다.

 

     아테네에 들어와 헤게몬으로 코린트 동맹 회의를 주재한 알렉산더는 페르시아 정벌이란 대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최고 통치자로서의 위세를 한껏 뽐낸 알렉산더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도시 아테네를 상징하는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만났다. 오두막에 살던 디오게네스가 22살 알렉산더에게 햇볕을 가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것도 이때다. 알렉산더는 110년전 페리클레스가 아크로폴리스 꼭대기에 그리스 민족의 상징으로 만든 파르테논 신전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이제는 자신이 그리스 민족의 맹주라는 사실에 가슴 뿌듯해 했을 것이다. 이미 이때부터 그는 다른 도시국가들에게 자신을 신으로 대우하라는 명을 내리고 있었다. 사진의 앞부분은 거대한 코린트 기둥이 장관인 제우스 신전이고, 뒤로 바위 언덕 꼭대기 아크로폴리스에 아테네는 물론 그리스의 상징인 파르테논 신전이 보인다.

 

◆ 3. 델피--B.C 335년

델피. 아폴론신전 앞에 갖다놓은 옴파로스 모조품. 알렉산더는 이곳에서 최고라는 말을 피티아로부터 억지로 끌어냈다. ⓒ김문환

    그리스 도시국가 안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 다진 알렉산더는 이제 페르시아 원정길에 올라도 된다는 판단을 한다. 그러나, 출발에 앞서 알렉산더는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었다. 그리스 민족 최고의 성소인 델피를 찾는 것. 델피(델포이). 그림같은 파르나소스산을 배경으로 한 델피는 그리스인들이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과 함께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아폴론 신전이 자리한 곳이다. 특히 델피의 아폴론 신전은 신전 자체보다 신의 의지를 전달해주는 신탁이 가장 영험하기로 다시말해 미래를 가장 잘 예언해주는 신탁소로 더 유명했다. 델피의 아폴론 신전에서 아폴론을 모시며 아폴론의 의지를 인간에게 전해주는 여사제를 피티아라고 부른다.

 

     델피를 찾은 알렉산더의 의도는 분명했다. 큰 전투를 앞두고 원정을 떠나는 자신은 물론 부하들에게 뭔가 자신감을 심어 줄 필요가 있었다. 신의 아들이며 최고의 용장으로 승리를 거둘 것이란 뭐 그런 얘기들... 그러나, 피티아가 알렉산더의 의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답변을 미루자, 그녀를 강제로 끌고 가 비슷한 말을 억지로 끌어냈다고 한다. 신이 정말 있다면 신성모독인데... 사진속 원추형 뿔은 그리스인들이 세계의 배꼽, 그러니까,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긴 델피를 상징하는 돌 옴파로스(Omphalos)다. 물론 모조품이고 그리스 시대 것은 델피 박물관에 보관중이다.

 

◆ 4. 디온--B.C 334년

디온. 알렉산더는 페르시아로 출발하기에 앞서 디온에서 제우스 신에게 승리를 기원하는 거대한 출정식을 가졌다. 지금은 풀밭으로 변해버린 디온 유적지. ⓒ김문환

     모든 준비를 마치고 알렉산더는 출정식을 가졌다. 펠라 남부의 디온. 그리스 민족이 가장 신령스럽게 여기는 산. 올림포스 산자락에 디온은 자리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의 거처가 올림포스 산정 위 하늘궁전이라고 여겼다. 가장 유명한 신 12명을 [올림포스 12신]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있다. 그리스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해서 언뜻 무척 높을 것 같지만 해발 2천 918m에 불과하다. 백두산이 2천 777m이니 140m 정도 더 높다. 우리 백두산도 민족의 영산이요 무척 춥지만, 올림포스 산 역시 연중 9개월은 산정상부에 눈이 쌓여 있다.

 

     그리스인들은 디온에 특별한 장소로 의미를 부여했다. 제우스 신전을 짓고, 그의 보살핌을 빈 것이다. 알렉산더 역시 마찬가지였다. 디온에 최고의 제우스 신전을 다시 지으라고 명한 것도 이런 배경이다. 그는 페르시아 원정에 앞서 승리를 기원하는 성대한 희생의식을 디온의 제우스 신전에서 치렀다. 희생의식 뒤에는 큰 상금을 걸고 체육대회를(아킬레스가 그랬듯이) 열었다. 상다리 휘어지는 잔치판을 벌인 것은 물론이다. 페르시아와의 첫 전투(그라니코스강 전투)에서 숨진 25명 동료의 말탄 청동상을 디온에 세울 정도로 디온에 애책을 가졌다. 그러나, 디온은 지금 거의 폐허 위 풀밭으로 변했다. 일부 도로 유적과 대목욕탕, 극장등의 유적이 남아 알렉산더의 자취와 그 옛날의 영화를 그리 많지 않은 탐방객에게 전해줄 뿐이다.

 

◆ 5. 트로이--B.C 334년

알렉산더는 헬레스폰트(다다넬즈) 해협을 건넌 뒤 첫 전투를 치르기에 앞서 트로이로 와 제단을 만들고 아테나 여신에게 승리를빌었다. 목마는 터키 정부가 최근 만들어 세웠다. ⓒ김문환

     마침내 알렉산더 원정대는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또 지중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좁은 통로 헬레스폰트(헬레스폰토스, 다다넬즈) 해협을 건넜다. 첫 기착지 아비도스에 도착한 알렉산더는 바다에 내리자 마자 갑옷을 입은 채 바닷물로 들어가 창을 바다 모래밭에 내리 꽂았다고 한다. 페르시아 원정의 승리를 다짐하는 의지의 표현이었으리라. 알렉산더가 창을 꽂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트로이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누구든 아시아인 트로이 땅에 맨 먼저 발을 내딪는 자는 죽음을 맞을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다. 트로이에 배를 정박했지만, 아무도 내릴 생각을 않는 게 아닌가! 오디세우스기 꾀를 내 방패를 던져 놓고 그 위로 내리 뛰었다. 그러나, 이를 본 프로테실라오스가 괜찮은 것으로 생각하고 맨땅으로 내렸다가 헥토르가 던진 창에 맞아 죽었다.

 

     이같은 신화를 잘 알고 있는 그리스 병사들에게 알렉산더는 용기를 심어 주고 싶었을 것이다. 아시아에서 아무 것도 거리낄 게 없다는, 누구라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창을 꽂은 것이다. 알렉산더는 이어 트로이로 달려갔다. 트로이에서 제단을 만들고 제를 올렸다. 아킬레스가 전쟁의 여신 아테나에게 동방의 트로이를 이길 수 있게 해달라고 기원했던 것처럼 알렉산더는 동방의 페르시아를 정복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기원했다. 물론 알렉산더가 트로이라고 여겨 제를 올린 장소가 19c 독일인 하인리히 슐리만이 발굴해 오늘날 트로이라고 알고 있는 장소가 일치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하인리히 슐리만이 발굴한 트로이에는 최근 터키당국이 목마를 조잡하게 만들어 세워 놓았다.

 

◆ 6. 페르가몬--B.C 334년

페르가몬. 알렉산더는 페르가몬을 정복한 뒤 통치를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 바르시네에게 넘겼다. ⓒ김문환

     트로이에서 제를 올리고 맞은 첫 전투는 그라니코스강 전투. 말이 동방이지 이곳은 그리스인들이 건너와 도시국가를 세운 이오니아 지방이다. 비록 이 무렵에는 페르시아의 지배아래 살았지만... 알렉산더는 전쟁의 시작인 그라니코스강 전투, 즉 서전(緖戰)을 기분 좋게 승리로 장식했다. 앞서 말했지만, 알렉산더는 여기서 숨진 동료 25명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그들이 말 탄 모습의 청동상을 만들어 디온에 세우도록 명했다. 리시포스가 조각한 이 청동상들은 나중에 로마인들이 약탈해 갔다. 그라니코스강 전투에서 승리한 알렉산더는 에게해 해안선을 따라 남으로 이오니아 지방 각 도시를 훑으며 내려왔다. 순순히 문을 연 지역들은 자치권을 부여하는 동시에 페르시아에 내던 거액의 세금부담을 줄여 줘, 자발적인 지지를 끌어냈다. 알렉산더가 차지한 이오니아의 유력한 도시는 페르가몬이다.

 

     페르가몬은 어떤 도시인가? 트로이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킬레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는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를 차지했다. 둘 사이에 3명의 자식이 태어났는데, 그중 한명의 이름이 페르가모스다. 페르가모스가 세운 도시가 페르가몬이란다. 역사적으로는 B.C 6c 리디아 크로이소스 왕의 지배를 받다가 크로이소스가 페르시아에 패하면서 페르시아의 지배로 들었다. 역사가로도 유명한 크세노폰은 페르시아의 왕위 쟁탈전에 개입해 전투에 참가하는데, 그 와중에 페르가몬에 들렸다. 페르가몬왕 곤길로스의 왕비 헬라스는 크세노폰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크세노폰은 그녀를 도와주지만, 결국 페르가몬은 다시 페르시아의 지배로 들어갔다. 그러다, B.C 334년 마케도니아에서 홀연히 나타난 알렉산더가 페르가몬을 차지해 페르가몬은 헬레니즘 세계에 편입됐다. 알렉산더는 얼마 뒤 페르가몬의 통치권을 바르시네라는 여성에게 넘기는데, 바르시네는 누구일까? 알렉산더의 연인. 다마스커스편에서 자세히 알아본다.

 

◆ 7. 에페스--B.C 334년

에페스. 로마시대 총독 켈수스가 만든 도서관 건물. 웅장한 규모와 화려한 조각이 최고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알렉산드리아 무세이온이나 대도서관이 '어떤 모습이었을까' 떠올려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알렉산더가 에페스에 도착했을때 '고대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 재건축 공사가 한창이었다.ⓒ김문환

     페르가몬을 접수한 알렉산더는 남으로 내려와 이오니아 지방 최대 그리스 도시 에페스에 도착했다. 에페스는 B.C 7c-B.C 6c 최대의 번영을 누리던 최고의 무역항이다. 페르시아가 정복한 뒤로는 다소 주춤해 졌지만, 알렉산더의 원정으로 페르시아 지배에서 벗어난 뒤로는 다시 대도시로서의 명성과 활기를 되찾았다. 알렉산더가 B.C 334년 에페스에 도착했을 때 B.C 356년 화재로 소실됐던 고대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 아르테미스 신전의 재건 공사가 한창이었다. 기적의 공사라는 아르테미스 신전은 완공을 눈 앞에 두고 있었는데...

 

     에페스에는 지금 찾아도 그 규모와 실용성, 아름다움에 탄복을 금할 수 없는 도시기반 시설로 가득하다. 산 봉우리 전체를 깍아내 만든 이오니아 지방 최대의 야외 극장을 비롯해 길고 곧게 뻗은 포장도로, 그리스 시대 시장이던 아고라, 화려하게 모자이크로 포장한 인도와 프레스코로 장식된 주택, 심지어 창녀촌까지 흔적이 남아있다. 사진은 로마시대 총독 켈수스가 만든 도서관. 화려한 장식과 웅장한 규모에 절로 입이 벌어진다.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무세이온과 대도서관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짐작해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유적이다. 에페스에는 로마시대 거대한 교회 유적과 19c 발견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살던 산속 거처(교황청이 정식으로 인정했지만 진실여부는 확인할길 없다)도 자리하는등 기독교 유적도 다수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