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국제

'江에 가서 말하라'

이주형

입력 : 2005.01.02 17:53

&nsp; 내 나이쯤 이면 ‘문학청년’이라는 말을 그리 낯설게 느낄 세대는 아닌데, 나는 문학을 경외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런 것 같다. 어렸을 때야 읽을 거리가 별로 없었으므로 세계명작동화나 세계문학전집 근처를 기웃거렸지만 대학에


 

내 나이쯤 이면 ‘문학청년’이라는 말을 그리 낯설게 느낄 세대는 아닌데, 나는 문학을 경외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런 것 같다. 어렸을 때야 읽을 거리가 별로 없었으므로 세계명작동화나 세계문학전집 근처를 기웃거렸지만 대학에 들어간 뒤로는 시나 소설 따위는 잘 읽지 않았다. ‘80년대 대표 소설’, ‘80년대 대표시’ 이런 짜깁기 책들은 싸구려 의무감에서, ‘지옥에서 보낸 한 철’ 같은 난해한 시집은 겉 멋으로 뒤적거려봤지만.

내가 주로 서성거린 책들은 거의 인문과학 서적이나 사회과학 서적이었다. 전공 탓도 있지만 이런 책을 읽어야 뭔가 남는 게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른바 ‘교양서’로 통칭되는 온갖 분야의 잡다한 책들도 좋아한다.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없던 교양이 조금은 쌓인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하지만 언제부턴가 문학책들을 종종 보게 됐다. 전작주의자는 아니지만 특정 소설가의 책은 출간되는 족족 사보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시집도 사 본다. ‘문학은 죽었다’고 말하여지는 시대에 거꾸로 가는 것 같아 좀 머쓱하다, 하지만.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이 현상과 사상을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서술하기 때문에 읽을 때는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뭔가 손으로 물을 퍼 담는 느낌을 준다면, 문학은 사상과 현상을 간접적으로 풀어내면서도 뭔가 손에 잡힐 듯한 직관적인 깨달음을 주는 것 같다. 또 문학이 남기는 이런 저런 해석의 여지 속에서 안도와 위안을 찾는다.

심지어 자연과학자인 다윈도 ‘과학적 진리를 탐구할 때는 은유(Metaphor)를 사용하지 말하야 한다'는 통념과 달리 은유를 매우 중시했다고 한다.

어쨌든, 최근 시집 한 권을 샀다. 한 일간지에서 우연히 시 한 편을 본 뒤였다. 그 시를 소개한 기사 제목은 좀 생뚱맞았다. “도시인 심금 울리는 ‘쿨’ 한 詩”.

기사는 최근 네티즌과 잡지 편집자들 사이에서 화제에 오른 시가 있다면서 지난달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황인숙 씨의 시집 <자명한 산책>의 첫번째 시 ‘강’을 소개했다.

강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연말에 이런 시를 접하니 찡한 구석이 있다. 다들 한 해를 보내면서 후회스러운 일, 기뻤던 일, 울고 싶었던 일 하나씩을 가슴에 품고있다 누구에겐가 털어놓고 싶은 계절이 아닌가. 이런 때에 그런 얘기를 들어주기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말자니. 그런데도 이 시가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갖다니. 사람들은 이제 제 고민하기도 바빠 남의 고민 들어주기는 힘에 부치는 것일까.

가끔 사는 게 피곤하거나 누군가가 부러울 때면 생각한다. 부자든 빈자든, 들었든 비었든, 잘 나가든 못 나가든, 다들 비슷한 크기의 번민과 고통의 짐을 짊어지고 산다고. 세상에 뭐 부러울 게 있을까 싶은 사람도 알고 보면 불면의 밤을 지새고 있다고.

그건 사람마다 고통을 짊어질 수 있는 깜냥이 다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못 배우고 없이 살아도 큰 고통주머니를 가지고 태어나 웬만한 고통에는 눈도 꿈쩍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많이 배우고 없는 거 없이 살아도 작은 고통주머니를 달고 태어나 고통이 조금만 차도 비명을 지르는 사람이 있다. 고통은 모르는 데서(不知), 없는 데서(無所有) 오는 것이 아니라 아는 데서, 있는 데서 오는 것이 대부분이니까. 삶에는 또 한계행복체감의 법칙 같은 것도 있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이 시를 ‘쿨하다’고 생각하나 보다. “누구나 다 짊어질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을 안고 산다. 시끄럽다. 나도 힘들다. 너나 나나 같은 사람인데 네 일은 네가 해결해라.”

새해에는 우리, 웬만하면 하소연하지 말자. 쓸데없는 불평도 그만 하자. 하지만 누군가가 손을 내밀면 ‘이미 그 강에 가서 털어놓아 봤지만 그래도 힘에 부쳐 찾아왔으려니’ 하고 꼬옥 잡아주자. 고통은, 털어놓으면 부피는 줄지 않아도 무게는 가벼워지니까.

(*SBS 매거진 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