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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오늘은 여왕의 날"

김용태

입력 : 2004.06.18 19:50|수정 : 2004.06.18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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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뉴스>

<앵커>

부인과 다퉈서 요즘 사이가 좀 냉랭해진 분들, 이 농촌 마을 이야기가 도움이 좀 될 것 같습니다. 일년에 하루, 이 날만은 아내가 여왕입니다.

테마기획, 김용태 기자입니다.

<기자>

오늘(18일)은 여왕의 날, 아내들을 위한 잔치가 열리는 날입니다.

남편들이 준비한 진상품은 살이 통통하게 오른 돼지 한 마리.

앞치마를 두르고 나선 남편들이, 고기를 썰고 상추도 씻으면서 음식 장만을 서두릅니다.

[임덕근/마을 주민 : 오늘 아줌마들은 놀고 먹기만 하면 돼요. 오늘 하루만큼은 그렇게 하는 순리가 됐어요. 이 마을에서는.]

아내들은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가장 연하고 맛있는 고기만 여왕들에게 바쳐집니다.

어설프게 접대를 했다간 당장 면박이 쏟아집니다.

[쌈장 좀 가져와요.]

이것 가져와라, 저것 달라 머슴부리듯 해도 오늘만은 아내가 여왕입니다.

[천춘옥/마을 주민 : 내가 시집하나 잘 왔지. 소주가 없네. 술 좀 가져와 봐요, 술.]

남자들이 숨돌릴 틈 없이 쌀을 씻고 밥을 짓는 동안 아내들은 발을 쭉 뻗고 흥겨운 윷놀이판을 벌입니다.

소리도 지르고 박수도 치면서 농번기의 피로를 날려버립니다. 술이 한잔씩 돌아가더니, 저절로 여왕들의 춤과 노래가 시작됐습니다.

여왕의 날이 처음 시작된 것은 어려웠던 보릿고개 시절입니다.

모내기로 고생한 아내, 돼지고기라도 실컷 먹여보자며 남편들이 추렴해 잔치를 시작한 것이 벌써 30년째가 됐습니다.

[한정렬/마을 주민 : 우리 마을에는 부부싸움이 없어요. 싸움해서 문제가 된 적도 없고, 서로를 잘 이해하니까.]

해마다 돌아오는 '여왕의 날'은 그래서 남편과 아내가 손꼽아 기다리는 동네의 명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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