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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패션 오브 더 크라이스트

김문환

입력 : 2004.05.28 18:49|수정 : 2004.05.28 18:49

      트로이+패션 오브 더 크라이스트=헬레니즘+크리스챠니즘  


      트로이+패션 오브 더 크라이스트=헬레니즘+크리스챠니즘

 

영화.. 사회를 읽는 언어

     [트로이]. 첫단추를 영화 제목으로 끼우려니 좀 쑥스럽다. 호주머니 털어 극장을 찾는 일도 드물고, 영화를 화두로 들먹일 만큼 충분한 탐구도 없는 탓이다. 무엇보다 우리 SBS 칼럼에서도 동료들이 영화와 관련된 좋은 글로 시청자, 독자들과 만나기 때문에 붓을 더 대봐야 사족인 상황이지만, 물고 들어가지 않을수 없는 이유 2가지. 첫째. 영화는 이미 단순한 문화활동의 차원을 넘어 정치, 경제, 사회 나아가 세계를 읽는 한 언어가 돼 버려 영화를 빼고 오늘 우리의 삶을 논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어떤 주제를 꺼내도 영화가 고구마 줄기처럼 얽혀 따라 나오는 현실을 외면하기 힘들다. 흥행과 함께 예술성, 메시지에도 관심을 둬 뜻있는 영화인들의 주목을 받는 '깐느' 영화제의 2004년 황금종려상 작품은 이를 잘 말해준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Fahrenheit 9.11)].

     

     1720년 파렌하이트가 만든 화씨(華氏, 파렌하이트의 음을 빌은 가차문자)는 온도를 물이 어는점과 끓는점을 기준으로 180(파렌하이트가 제안할 당시는 96눈금)등급으로 나눈다. 10진법에 익숙한 세계인들은 1746년 스웨덴의 셀시우스(Celsius)가 온도를 100으로 나눈 섭씨(攝氏, 셀시우스의 가차문자)를 사용한다. 우리도 그렇고. 하지만 유독 미국은 화씨를 고집하고, 영국도 뒤따른다. 재미있다. 국제 표준화 시대 미영 두나라와 나머지 지구촌민들이 둘로 갈리니 말이다. 더 나가보자. 전세계 인의(仁義)를 가진 모든 이의 가슴에 분노와 상심을 불러일으키는 이라크 전쟁은 미국과 영국의 조작으로 터졌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미아리 최고의 작명가가 동원된 것인지, 기막힌 연관성에 찬사를 보낸다. 물론 필자가 마이클 무어 감독에게 제목을 정한 배경을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화씨 사용자들의 전쟁을 고발하는 글이나 작품이 많지만 이 영화의 소재와 제작, 배급과정에서 빚어진 얘기만큼 정말 살아있는 따끈따끈한 증언은 드물다. 9.11 테러의 배후라는 알 카에다 빈 라덴의 집안과 부시 대통령 가문의 사업 파트너 관계를 고발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 무어 감독은 "영화 제작사 미라맥스의 모회사인 월트 디즈니사가 부시 대통령의 동생인 제프 부시가 주지사로 있는 플로리다에서 감세혜택을 받지 못할 것을 염려해 미국내 배급을 포기했다"고 목청을 돋운다. 깐느 영화제 시상식에서 "알바니아에서 배급처를 찾을 것"이라는 무어의 농담은 관람객들의 폭소를 자아내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미국의 현실을 고발한다. 이에 대해 디즈니의 최고경영자 마이클 아이스너가 "터무니없는 얘기"이라고 반박했지만, 진위를 떠나 현재 미국에서 이 영화를 볼수 없는 현실 자체가 미국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취약한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 허상속에 과대포장돼 있는지 깨우쳐 준다.

 

 

트로이 전쟁과 지중해 문명

 

 

둘째. [트로이]를 첫단어로 올리며 영화 얘기에 한쪽 발을 걸치고 글을 시작하는 두번째 이유는 앞으로 필자가 SBS 홈페이지 뉴스란의 [칼럼&레터]를 통해 풀어놓으려는 넋두리들이 지중해를 둘러싼 고대문명을 담고 있는 점이다. [지중해 문명기]. 고대 지중해 문명 가운데서도 글감은 주로 그리스 로마에 모아진다. 그리스 로마의 출발이 트로이인 까닭에 영화를 지나칠수 없어 동료들과 점심시간을 이용해 극장을 찾았다.

▲독일인 하인리히 슐레이만이 19c말 터키의 에게해 연안에서 발굴한 트로이 유적. 2000년 7월 찾아본 현장은영화에서 재현한 것처럼 웅장하지는 않다.

     

     [트로이] 러닝 타임이 두시간을 훌쩍 넘으니, 점심시간이 너무 길다고 꾸지람 할수도 있지만... 복잡다단하게 살아가는 시민들 일상사 가운데서 심층 취재소재를 골라야하는 부서의 특성상 영화관람은 꼭 여가선용이 아닌 취재의 연장이란 점에서 너그럽게 보아넘길 수도 있는 일이다.

     

     트로이 전쟁은 너무 잘 알려진 내용이라 길게 말하기는 곤란하고, 기억을 되살리는 의미에서 간단히 언급하는 정도가 좋겠다. B.C 8c 활약했다는 호메로스가 적은 일리아드(Iliad)라는 서사시집. 24권 만 5천93행에 미케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아카이아 연합군과 트로이를 중심으로 한 트로이 동맹군의 10년간에 걸친 전쟁사가 담겨있다. 아킬레스의 활약상과 영웅담이 중심소재다. 신화를 근거로 하는 서술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인지는 확인할 길 없다. 단, 19c 이후 고고학적 발굴성과에 힘입어 스파르타는 물론 미케네, 무엇보다 트로이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트로이 전쟁 얘기가 신화속 허구가 아닌 실재 상황일수도 있다는 개연성을 부정할 수는 없게 됐다. 일리오스(Ilios)라고도 불려 '일리아드(일리오스 이야기)'의 출발점이 된 트로이는 독일인 하인리히 슐레이만의 19c 발굴이후 여러차례 전문적인 조사가 이뤄졌다. 그결과 B.C 3천여년 전부터 시기별로 다른 지층에서 유물과 함께 불탄 뒤 재건한 흔적까지 나와 전쟁참화가 있었음을 간접증명하고 있다.

 

     전쟁의 전말을 간단히 더듬어보자. 여신 테티스와 인간 펠레우스의 성대한 결혼식에 올림푸스의 모든 신과 요정들이 초대됐지만, 분쟁의 여신 에리스는 초대받지 못했다. 화가난 에리스가 황금의 사과를 피로연장에 던지며 최고의 미인이 주인공이라고 말한다. 제우스의 명에 따라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판정을 내리는데 세계 최고의 미인을 뇌물로 약속한 아프로디테에게 우승이 돌아갔다. 아뿔싸! 최고의 미인은 기혼녀인 스파르타 왕비 헬레네. 그리스 도시국가 여행길에 스파르타에 들린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헬레네를 보쌈해 오고. 화가 머리끝에 치민 메넬라오스왕은 형 미케네왕 아가멤논을 졸라 트로이에 전쟁을 건다. 헬레네와 메넬라오스의 결혼식때 각국이 맺은 약속에 따라 전쟁에는 당시 그리스 전역의 도시국가들이 부역으로 끌려 나와 아카이아 연합군이란 이름아래 트로이와 싸워야 했다.

 

▶ 에리스가 던진 황금사과의 주인공을 가리기 위해 세여신이 오른쪽에 앉아있는가운데 왼쪽끝 헤르메스가 가운데 흰옷을 입고 앉은 파리스에게 제우스의 뜻을 전하고 있다. 빠리 루브르 박물관.

 

 

     개전후 9년동안 아카이아 연합군은 트로이 성앞에 진을 치고 이곳 저곳을 정복하며 전리품도 챙겼지만, 트로이 성채를 돌파하지는 못했다. 전쟁은 어느쪽의 결정적인 승리 없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올림포스산의 그리스신들도 편을 갈라 전쟁에 개입하고, 본격 트로이성 공방전이 시작되면서 신의 뜻에 따라 파리스도 아킬레스도 헥토르도 죽었다. 마침내 오디세우스의 최후 목마작전으로 아카이아 연합군은 10년만에 승리를 거둔다. 제우스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지상으로 귀양온 포세이돈과 아폴론, 제우스의 아들 아이아코스 이렇게 셋이서 1년간 쌓았던 난공불락의 성 트로이는 철저히 파괴돼 불타 없어지고, 재보는 약탈당했으며, 남자들은 죽었고, 여자들은 노예로 끌려갔다.

 

     이상이 호메로스 저술과 다양한 계통의 신화가 들려주는 줄거리다. 그러나, 영화 [트로이]는 많이 뒤틀렸다. 원래 사극이란게 극적 흥미를 높이기 위해 내용을 바꾸지만, 트로이는 내용의 변절이 좀 심했다.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는게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의 고유권한이라면 탓할 수는 없지만... 트로이가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는 이유는 글쎄, 2억달러라는 최고의 제작비를 들여 대형 스펙터클을 재현한 헐리우드 대작으로 거대 홍보 유통망을 가졌다는 점, 둘째, 최근 한국에 불고 있는 고대 그리스 로마신화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인기배우 브래드 피트와 사랑얘기가 우선 꼽힐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 필자의 딸도 중학생인 사촌언니 틈에 끼어 보겠다고 생떼를 써 필자의 과거를 돌이키며 허락할 만큼(15세가 안돼 극장 앞에서 퇴짜를 맞았다지만) 돌풍인 영화 트로이. 많은 팬들은 영화속에서 비극적인 사랑, 죽음으로 인한 이별얘기에 눈시울은 물론 가슴까지 적시며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아킬레스와 브리세이스, 헥토르와 안드로마케, 파리스와 헬레네... 영화를 본 뒤 남는 애틋한 잔상을 깨는것 같아 안됐지만, 호메로스의 저술과 신화속 얘기는 영화속 애상어린 내용과 영 딴판이다.

 

 

영화와 신화의 차이로 본 사랑 얘기

 

◆아킬레스와 브리세이스의 비극적인 사랑의 종말.

     여성팬들은 싸움과 승리밖에 모르는 냉혈한 아킬레스가 브리세이스를 만나 사랑에 눈뜨고 따듯한 인간애에 젖어들면서 용기, 의리, 사랑의 화신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가슴 졸인다. 그리고 브리세이스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는 장면에 눈물 흘린다. 아이구. 그런 일은 신화에서 없었다. 브리세이스 때문에 미케네왕이자 아카이아 연합군 총사령관인 아가멤논과 갈등을 빚은 것은 사실이다. 아가멤논이 아킬레스 처소에서 일하던 포로 브리세이스를 자신의 처소로 데려가자 성난 아킬레스가 전투에서 발을 뺐고, 나중에 아가멤논이 아킬레스를 달래기 위해 화해의 선물로 브리세이스를 돌려준 점으로 미뤄 아킬레스가 그녀를 무척 아꼈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삼각관계는 아니고... 그러나, 그뿐이다.

 

     일리아드에는 아킬레스가 죽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일리아드의 속편격인 오디세이아에도 없다. 후대의 전설에서 추론할 수밖에. 전설은 영화에서 처럼 아킬레스가 트로이 함락시 브리세이스를 구하던 도중에 죽은게 아니라고 말한다. 아킬레스가 헥토르와 이디오피아에서 온 트로이 원군 멤논을 죽인 뒤 트로이 성을 공격하다 아폴론의 도움을 얻은 파리스의 화살에 발 뒤꿈치 아킬레스건을 맞아 죽었다는 설이 가장 우세하다. 아킬레스는 요정인 어머니 테티스가 그를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 스틱스 강물에 목욕시킬 때 붙잡았던 발뒤꿈치에 강물이 닿지않아 치명적이 급소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 중에는 당할 자가 없을 만큼 초인적인 무예를 가져 적국 병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그렇게 죽어야 했다. 아약스가 오디세우스의 엄호로 아킬레스의 시신을 수습했고, 어머니 테티스가 17일을 밤낮을 울고난 뒤 18일째가 돼서야 화장 장작더미에 올랐다. 불꽃이 스러진 뒤 그의 유골은 잘 씻겨 파트로클루스의 유골과 함께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황금항아리에 담겼다.

 

     아킬레스는 총각으로 브리세이스를 만난게 아니다. 아킬레스의 어머니 테티스는 아들이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면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고, 아들을 스키로스의 왕 리코메데스가 사는 궁정에 숨겼다. 아카이아 연합군들이 그를 찾지 못하도록 여장을 시켜서 말이다. 여기서 숨어있던 동안 아킬레스는 리코메데스의 딸 데이다메이아와 사랑에 빠져 아들까지 낳았다. 유부남과 처녀의 만남... 아킬레스는 브리세이스에 가장 큰 연정을 느낀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여성들에게도 눈길을 주곤 했다. 호메로스의 기록으로 보면 아킬레스는 금발 미남에 기골이 장대하다. 따라서, 브래드 피트는 반만 어울린다. 신화에서 브리세이스는 갈색머리에 빛나는 눈을 가졌고, 흰 얼굴에 키가 컸다. 로즈 번은 그런대로 어울리는 배역을 맡았다.

 

◆파리스와 헬레네의 사랑의 종말

     많고 여자만 밝히는 유약한 난봉꾼으로 영화에서 그려지는 파리스. 남의 아내를 채가더니, 사랑의 도피행각만 궁리하고, 여인과 조국의 명예를 건 결투에서는 패하자 목숨을 구걸하는 비겁자로 표현된다. 영화에서 파리스에 대한 인신공격의 절정은 브리세이스를 구해주는 아킬레스를 활로 쏴 죽이는 실수를 범하는 장면. 파리스 역할의 미남 배우 올랜드 블룸을 아끼는 팬들을 무척 실망시키는 장면이다. 이렇듯 철저하게 푸대접받는 파리스를 헬레네는 끝까지 사랑한다. 일리아드나 다른 신화에서도 그럴까?

파리스는 헥토르에 이어 프리아모스 왕과 어머니 헤카베 사이에서 둘째아들로 태어났지만, 트로이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예언에 따라 이다 산중에 버려져 양치기로 무예를 익히며 자란 뒤 청년이 돼서야 궁정에 돌아오는 곡절을 겪는다. 빼어난 미남이던 파리스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여행하던 도중 스파르타에서 헬레네를 매혹시켜 데려온다.

 

◀ 파리스를 표현한 유일한 로마시대 모자이크 작품. 오늘날 트로이가 속해있던 터키 프리기아지방 스타일의 옷과 모자를 입고 있다. 빠리 루브르 박물관.

 

 

     너무 예뻤던 헬레네의 남성편력은 순탄하지 않다. 어렸을 적 테세우스에게 납치돼 그의 아내가 됐는데, 처녀성은 유지했다는 설도 있다. 오빠들 덕에 테세우스에게서 풀려 나온 뒤, 아버지 틴다레우스 왕이 공개로 모은 그리스 전역의 구혼자 가운데 헬레네는 메넬라오스와 결혼했다. 이때 틴다레오스는 각국에서 모인 왕자들에게 헬레네가 누구와 결혼하게 되더라도 나중에 헬레네에게 문제가 생기면 함께 힘을 모아 대처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나중에 파리스와 헬레네의 줄행랑 이후 아카이아 연합군이 결성된 배경이다. 헬레네는 메넬라오스와 사이에 딸 헤르미오네를 낳았지만, 파리스에게 반해 9살짜리 딸을 두고 모든 재산과 노예들을 챙겨 트로이로 따라가는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인다. 트로이에서 파리스와 살며 여러 자식을 둬 둘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으로 보인다.

 

     헬레네는 전쟁도중 파리스가 죽자, 파리스의 동생인 데이포보스의 아내가 됐다. 이번엔 파리스의 경우와 달랐다. 헬레네의 선택이 아니라 헬레네의 미모를 탐한 트로이 왕자들간 경쟁에서 일방적으로 자신이 낙점됐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데이포보스와 사이에 자식도 없었고, 트로이 함락당시 데이포보스의 무기를 치워 그가 아카이아군에 반항하지 못하고 죽도록 내버려 둔 점은 그녀가 데이포보스를 사랑하기는커녕 증오했음을 보여준다.

 

     영화와 신화에서 가장 다른 점은 헬레네와 메넬라오스와 관계다. 영화에는 헬레네가 마치 애정없는 결혼생활에 실증을 내다 파리스를 만나 진정한 사랑에 눈뜬 것으로 나온다. 또 늙고 추한 메넬라오스는 파리스와 결투도중 헥토르의 칼에 죽는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메넬라오스는 그렇게 늙지않았다. 헬레네와 결혼을 원한 공개 구혼자들은 그리스 도시국가 전역에서 온 왕자들로 결혼적령기의 총각들이었다. 영화처럼 아버지뻘이 아니다. 또, 메넬라오스는 죽지 않았다. 일리아드에서 메넬라오스는 트로이 함락시 데이포보스를 죽인뒤 헬레네를 다시 만난다. 메넬라오스는 그녀를 죽이려했지만, 헬레네의 아름다운 알몸을 10년만에 본 뒤 마음을 바꿨다. 서로 화해한 둘은 스파르타로 돌아가 다시 부부가 됐고, 헬레네는 정숙한 부인으로 행동했으며 아들을 낳고 살았다. 이런 정황으로 미뤄 헬레네는 남편 메넬라오스와 사랑으로 맺어진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 서로 깊이 사랑했던 파리스가 죽은뒤 운명이라 느끼고 메넬라오스에게 순종했던 것으로 보인다.

 

     파리스의 죽음과 관련한 내용 한토막. 파리스는 전쟁도중 필록테테스의 독화살에 맞았다. 그 화살은 필록테테스가 헤라클레스의 화장 장작더미에 불을 붙여준 대가로 헤라클레스로부터 얻은 것이다. 해독할 사람은 요정 오이오네 밖에 없었다. 오이오네는 누구인가? 이다산에서 양치기 파리스와 사랑을 나눴지만, 헬레네가 나타난뒤 버림받은 여인이다. 실연에 가슴아파하던 오이오네. 오뉴월 여인의 한이 내리는 서릿발은 무서웠다. 오이오네가 옛 연인의 치료를 거부하면서 파리스는 사랑의 복수에 그만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안타까운 것은 오이오네가 뒤늦게 파리스를 살려보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을 때는 이미 독기운이 퍼진 후였다.

 

     끝으로, 파리스가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약졸은 아니었다. 비록 메넬라오스와 결판에서 패했지만, 비겁하게 도망간 것은 아니고 아프로디테가 구름에 감싸 데려간 것으로 일리아드에는 기록된다. 형 헥토르의 명령으로 전투에 다시 나와 여러 전과도 올리고, 특히 활쏘기에 능해 트로이 성벽을 기어오르던 아킬레스를 아폴론의 도움을 얻어 화살로 죽였다.

 

◆헥토르와 안드로마케 부부의 비극적인 종말.

     많은 팬들은 영화에서 의연하고 이성적이며 망해가는 조국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으면서도 동생의 허물을 감싸안고, 죽음 앞에서도 의연함과 용기를 잃지않는 헥토르의 인간성에 매료된다. 더우기 아내 안드로마케와 아들 아스티아낙스에 대한 헌신과 한없는 애정에 눈물 적신다. 일리아드에서 헥토르는 프리아모스 왕을 대신해 트로이를 통치할 만큼 절대적인 존재로 나온다. 비록, 영웅 아킬레스와의 비극적인 결투에서 제우스가 아킬레스의 손을 들어 죽고 말았지만...

 

     순종적인 여인인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의 운명도 남편 만큼이나 비극적이다. 영화는 안드로마케가 남편의 죽음에 눈물 흘린 뒤 아들을 데리고 헬레네와 함께 탈출하는 것으로 돼 있다. 신화는 다르다. 헥토르가 죽고 트로이가 함락된 뒤 아킬레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무스가 들어와 안드로마케를 자신의 여인으로 삼고, 아들 아스티아낙스를 절벽에서 던져 죽인다. 아버지 아킬레스는 헥토르를 죽이고 아들 네오프톨레무스는 헥토르의 아들을 죽이고... 안드로마케는 남편을 죽인 자의 아들에게 아들까지 잃고 그 첩이 된 셈이다. 아! 안드로마케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네오프톨레무스는 메넬라오스왕과 헬레네 사이에서 태어난 딸 헤르미오네와 이미 결혼한 몸이었다. 한남자에 두여자. 집안이 편할리 없다. 안드로마케가 네오프톨레무스의 아들 몰로소스을 낳은데 반해 헤르미오네는 자식도 낳지 못했다. 질투심에 불타오른 헤르미오네는 네오프톨레무스를 죽이고 말았다. 가까스로 죽음을 면한 안드로마케는헥토르의 동생, 즉 시동생 헬레노스와 재혼한다. 전쟁으로 빚어지는 여인의 비극이다.

 

◆아가멤논의 최후

     아카이아 연합군 사령관이던 아가멤논은? 영화는 그가 브리세이스의 칼에 찔려 죽는것으로 나오지만, 신화는 다르다. 그럴 정도로 나약한 위인은 아니었다. 그의 죽음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권력욕의 화신으로 트로이를 잔인하게 짓밟은 아가멤논은 동생 메넬라오스와 전후 처리문제를 놓고 다툰 뒤 자신을 따르는 연합군과 닻을 올려 고향길에 올랐다. 동행자가 있었으니. 카산드라. 프리아모스왕의 딸로 헥토르의 여동생이다. 태양신 아폴론이 사랑했을 만큼 빼어난 미모의 카산드라는 아테나 신전으로 피신했다가 오디세우스에게 발각돼 아가멤논의 처소로 끌려갔다. 아가멤논의 여인이 된 카산드라는 미케네로 따라갈수 밖에 없었다.

 

     헤라의 도움으로 큰 어려움없이 미케네에 도착한 아가멤논은 아내의 환대를 받지 못했다. 카산드라 때문이 아니다. 밖에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집안에서 바가지가 새고 있었다. 그의 아내이자 미케네의 왕비, 동시에 헬레네의 언니인 클리템네스트라가 불륜에 빠진 것이다. 10년간 고국을 비운 사이 적적함을 달래지 못했는지 아에기스투스와 정분이 났다. 너무 깊게 불륜에 빠진 남녀의 음모에 불쌍한 개선장군 아가멤논은 카산드라와 함께 죽임을 당한다.

 

트로이 성에서 바라본 벌판. 오늘날은 해안선이 멀리 밀렸지만 고대 그리스 시절엔 바로 해변과 바다가 펼쳐졌다. 영화에서 아킬레스와 헥토르 파리스와 메넬라오스가 겨루고, 수많은군사가 대결하던 장소다.

 

 

트로이... 헬레니즘과 팍스 로마나의 출발점

 

     현대 서양문명의 사상적 배경을 말할때 흔히 헬레니즘(Hellenism, 좁게는 알렉산더 이후 넓게는 그리스 문화 전체)을 든다. 서양 모든 언어의 문자는 페니키아 문자를 받아들인 그리스 문자에서 비롯된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시민위주의 민주적 도시국가 전통과 자연과학, 철학, 문학, 연극, 음악이나 조각, 모자이크등의 기타 예술 양식, 스포츠에서 다신교 신앙까지. 인간 삶과 관련된 모든 분야가 헬레니즘에서 시작돼 로마라는 프리즘을 통해 고대사회 지중해문명권 전체로 퍼졌다. 그 출발점은 그리스인들이 그리스문자로 자신들의 역사와 정신세계를 적기 시작한 B.C 8-9c로 보는게 타당하다. 호메로스가 그리스어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적고, 시민들이 올림픽을 열어 시를 낭송하고 연극을 공연하며 스포츠 경기로 신을 찬양하던 그 무렵이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2004년 8월 시작되는 아테네 올림픽은 이를 다시한번 주지시키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호메로스라는 탁월한 작가가 풀어냈든, 아니면 일부의 주장대로 호메로스 한사람의 작업이 아니라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의 가필이 더해진 공동작업이든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라는 작품으로 그리스 문자는 물론 사상까지 확고하게 틀을 잡았다. 결국, 헬레니즘의 남상(濫觴)은 일리아드, 오디세이아의 배경이 된 트로이 전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로마는 B.C 3c말 부터 무력으로 헬레니즘 세계를 정복했지만, 헬레니즘의 문화를 그대로 수용했다. 마치 중국 한족을 굴복시킨 여진, 몽고등 유목민족들이 한족의 문화에 빠져든 경우와 같다. 로마의 귀족들은 그리스 도시국가로 유학을 떠나고, 예술을 모방하며, 학문을 배우고, 종교를 받아들였다. B.C 1c 지중해 전역을 석권하고 팍스 로마나의 지중해 문명을 완성한 로마의 문화는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헬레니즘 바로 그것이었다. 로마는 자기 조국의 출발도 그리스 문명권에서 따올 만큼 헬레니즘에 기울었다. 로마는 자신의 기원을 아에네아스로 여긴다.

영화 트로이에서 아에네아스는 딱 한번 등장한다. 트로이 함락당시 노인네와 함께 비밀통로로 빠져나가는 젊은이로 나온다. 파리스가 누구냐고 묻자 "아에네아스"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전부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한 줄 흘리듯 취급받을 만큼 미미한 존재가 아니다. 신화에 따르면 아프로디테가 이다산의 목동인 인간 안키세스에게 반해 사랑을 나눈 끝에 태어난 이가 아에네아스다. 아에네아스는 트로이 연합군 진영에서 헥토르 다음가는 맹장이었다. 바위를 들어 아킬레스를 위협하는등 많은 아카이아 연합군을 죽였다. 신관 라오콘의 조카였을뿐 아니라 프리아모스왕의 사위로 포세이돈은 장차 그가 트로이를 통치할 것이라는 예언까지 내놨다. 완전 페허의 혼돈속에서 그가 살아남을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아프로디테의 보살핌. 그는 아프로디테를 매혹시켰지만 늙어 반신불수가 된 아버지 안키세스를 업고, 아내 크레오우사와 아들 아스카니우스를 앞세운 채 트로이를 떠났다.

 

 

▲ 오른쪽부터 아프로디테, 헤라, 아테나 여신. 파리스로부터 심판결과를 듣고 있다. 빠리 루브르 박물관.

 

     그리스 시대 신화는 여기서 끝나지만, 로마제국에서 전혀 새로운 후편으로 이어졌다. 옥타비아누스 황제시절인 B.C 1c 활약한 로마의 최대 서사시인 베르길리우스는 [아에네이드]라는 작품에서 아에네아스가 트로이를 떠난지 7년 방랑 끝에 이탈리아반도 라티움으로 들어와 로마제국의 기원이 됐다고 기록한다. 로마의 기원이 트로이인 즉 헬레니즘의 후예임을 선언한 것이다. 로마인이 제우스와 아프로디테의 후손이라는 것을 보여 스스로 위대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만들어낸 결과다. 팍스 로마나를 구현한 지중해 제국 로마는 문명사적으로 헬레니즘의 후예이면서 공식적으로 트로이의 환생역을 자임한 셈이다.

 

 

헬레니즘과 크리스챠니즘

 

     크리스챠니즘(Christianism, 기독교)은 헬레니즘과 함께 서양 문명의 양대축을 형성한다. 크리스챠니즘은 로마문명이 절정기를 구가하던 1c 로마의 코즈모폴리탄적인 문화풍토 아래서 성장할수 있었다. 개방적인 헬레니즘보다 폐쇄적이지만, 바로 그 폐쇄성 덕에 강력한 결집력을 발휘해 헬레니즘의 가치를 누르고 4c 지중해 연안을 사로잡았다. 7c 북아프리카 연안과 오리엔트를 이슬람 문명에 내줬지만, 크리스챠니즘은 로마 제국을 누르고 새 주인이 된 게르만족 아래 서유럽에서 발전을 지속해 중세 천년동안 기독교 왕국을 이뤘다. 서유럽은 14c 르네상스 이후 헬레니즘을 창고에서 찾아내 이성과 자연과학, 민주의식, 분방한 예술을 부활시켰다. 그러나, 종교측면에서 헬레니즘은 복권되지 못했다. 크리스챠니즘이 종교라는 색채를 거세한 헬레니즘만 허용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로마 시대 모든 행동의 규범에는 제우스를 비롯한 그리스 로마신들이 있었다. 일리아드의 모든 내용은 신의 뜻이다. 헥토르가 죽고, 그를 죽인 아킬레스가 죽는 일들이 모두 신의 뜻이다. 개인의 능력을 벗어난다. 그러나, 영화 트로이는 이를 철저히 무시한다. 그리스 종교와 신을 비과학적인 미신으로만 폄하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트로이가 함락당할 때 프리아모스왕은 자신이 그토록 숭배하던 각종 신상들이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속에서 숨을 거둔다. 미신을 맹신하다 몰락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프리아모스 왕이 섬긴 대상은 제우스를 비롯한 그리스신이다. 그리스신은 트로이에게는 패배를 줬지만, 아카이아 연합군에게는 승리를 안겼다. 같은 신이다. 승리에 환호하는 아카이아 연합군은 바로 그 신에게 감사하고 제를 올린다. 영화는 이점을 도외시한다. 크리스챠니즘의 시각으로 헬레니즘을 해석한데서 온 결과다. 크리스챠니즘이 지속되는 한 헬레니즘의 신성은 언제나 그리스인들의 언어가 아닌 기독교인의 언어로 해석될 것이다. 트로이에서 처럼... 한마디로 서양은 그리스 로마시대 헬레니즘에서 중세 크리스챠니즘, 다시 르네상스 이후 크리스챠니즘과 신성이 제거된 헬레니즘의 복합기에 살고 있는 셈이다.

▲ 세여신 가운데 최고미인을 고르라는 제우스의 뜻을 파리스에게 전하는 헤르메스.

 

 

트로이... 패션 오브 더 크라이스트

 

     크리스챠니즘 문화속에 서양인들은 기독교 신자가 아니어도 예수님의 고통과 사랑, 구원은 물론 현실삶이나 정신세계 한구석에 녹아든 기독교적 전통과 의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경축일이나 국경일도 대부분 기독교와 관련된다. 또, 신성을 제거한 상태지만 늘 제우스를 비롯해 그리스 신화를 얘기하고 재해석, 탐구한다. 이런 맥락에서 계절의 여왕인 봄철 5월을 강타한 [트로이](Troy)와 이보다 한달 앞선 4월을 풍미한 [패션 오브 더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가 흥미를 더한다.

 

     트로이를 보자. 서양문명 전체라는 말이 실제 제작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감독은 독일인 볼프강 페테르센, 주연배우는 아킬레스에 미국인 브래드 피트, 헥토르에 호주인 에릭 바나, 파리스에 영국인 올랜도 블룸, 헬레네 역에 금발의 전형적인 독일미녀 다이안 크루거... 헬레니즘의 정서로 하나되는 서양 다국적군이다. 2억달러 들여 개봉 첫주만에 미국에서만 5천만달러를 번 영화 트로이에서 헬레니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서양사회가 들여다 보인다.

 

     패션 오브 더 크라이스트는? 카톨릭 신자 멜 깁슨 감독, 제임스 카비젤 주연 영화다. 68년생이니 서양 나이로 36살이어서 예수님이 돌아가실때 나이 33살과 비슷한 점 말고는 2천년전 유대인의 평균적인 모습과 전혀 닮아 보이지않는 제임스 카비젤이 열연한 패션 오브 더 크라이스트는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못박혀 죽기 전 12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실 아무도 현장기록을 공식적으로 남기지 않았으니 정확한 진상을 알기는 어렵지만... 패션 오브더 크라이스트는 유대인이 영화판을 휘어잡고, 정재계의 핵심적 역할을 맡는 미국사회에서 반유대적이라는 평가를 받아 비록 유대계가 장악한 메이저 배급사를 찾지 못했지만, '뉴마켓 필름'이라는 독립 영화사를 통해 2004년 2월 사순절 개봉 하룻만에 투자비 3천만 달러에 육박하는 2천 4백만달러 수입을 올렸다. 나아가 5일만에 1억 2천 5백만달러라는 미국 역사상 최단기간 최고 수입의 대기록을 세웠다. 크리스챠니즘 서양사회의 진면목이다.

 

 

헬레니즘... 그리스 신화... 모자이크

 

     영화 [트로이]나 [패션 오브 더 크라이스트]에 대한 영화론적 접근은 이자리에서 어울리지 않는다. 서양인들의 오늘이 바로 헬레니즘과 크리스챠니즘에 기반해 있다는 것을 두 영화를 통해 되돌아 볼수 있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우리에게는? 공맹지도의 인의예지. 부처님의 고행과 정진. 무위자연. 삼국지속 호걸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사. 유비에 중국인, 관우에 한국인, 장비에 일본인등이 나서 덕과 용맹과 의리를 연기하는 동양 3국 합작영화... 해답이 될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1987년 신문기자로 발을 디딘 뒤 1991년 부터는 방송기자로 대중과 만나기 시작했지만, 오늘 인터넷을 통한 만남은 또다른 설레임이다. 서양 이해의 키워드로 헬레니즘과 크리스챠니즘을 얘기하려다 보니 첫글이 너무 길어졌다. 다음부터 오늘 화두로 던진 크리스챠니즘과 헬레니즘 가운데 헬레니즘, 그것도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한 그리스 로마시대 예술장르 모자이크를 직접 촬영한 사진 중심으로 간결하게 전개할 계획이다.

 

                                                       ▲ 트로이성 내부. 슐레이만은 이곳에서 많은 황금 유물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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