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사회

국군 포로 '악몽의 50년'

진송민

입력 : 2004.01.23 19:32

동영상

<8뉴스>

<앵커>

SBS 8뉴스가 설을 맞아 연속으로 기획 시리즈로 보내드리고 있는 탈북 국군포로의 한맺힌 이야기, 오늘(23일) 그 마지막 순서입니다. 악몽같았던 포로 생활 50년을 전해드립니다.

진송민 기자입니다.

<기자>

경남의 한 마을.

탈북 국군포로 이모씨의 고향입니다.

전쟁터에서 숨진 줄 알았던 오빠가 살아 돌아온다는 소식에 여동생들은 꿈만 같다는 반응입니다.

[여동생 : (돌아가신 어머니가) 오빠의 (전사자) 연금을 타러 가실 땐 항상 울고 갔어요. 그 돈을 머리맡에 갖다놓고 또 눈물 한번 흘리고 그랬어요.]

이씨의 호적은 지난 1953년을 마지막으로 지워졌습니다.

[ (1953년) 7월19일에 사망한 걸로 돼 있네요. (어떻게요?) 전사로요.]

하지만 전사자로 처리된 그 53년에 이씨는 중공군에 붙잡혀 북으로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이모 씨(71세)/국군포로 : 이쪽 가면 물이지 이쪽은 이미 다 중공군이 점령했지, 거기서 붙들렸지.]

동료 부대원 3명과 함께 끌려간 곳이 함경북도 은덕군의 아오지 탄광.

[이모 씨(71세)/국군포로 : 처음엔 평양에서 포로를 교환하는 줄 알았다고. 기차 타라고 그러더라고. 그런데 밤에 내린 게... 아오지란 데 몰아넣더란 말야.]

국군포로 출신들은 특별 분류돼 24시간 감시를 당했습니다.

[이모 씨(71세)/국군포로 : 우리를 46호 대상이라고 한단 말야. 포로된 사람만 46호라고 딱 붙여 놨다는 거야. 나도 탄광에서 숱하게 죽을 뻔 했다고.]

이씨는 예순살까지 강제노역에 동원됐습니다.

[이모 씨(71세)/국군포로 : 사실 북에서 살 때는 강냉이 먹기도 바빴습니다. 여기서 살다가 마지막에 집에도 못가보고 죽겠다 (생각했죠.).]

이씨는 그 탄광에서 많은 국군포로들이 숨져갔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모 씨(71세)/국군포로 : (그런 분들이 몇분이나 계셨어요?) 숱하게 많지. 46호라는 게 연대 병력이 와 있었는데 우리 탄광에만 있는 게 아니거든. 그냥 거기서 다 죽었단 말야. 나이도 많고 탄광에서 다쳐서도 죽고...]

오로지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희망 하나로 반세기를 버텨왔던 국군포로 이씨.

이씨는 현재 우리 정부에 신병이 인도돼 마침내 그 긴 기다림을 끝냈습니다.

[이모 씨(71세)/국군포로 : (이제 고향으로 가신다고 생각하니까 어떠세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기쁘지. 말하잖아. 얼마나 고향에 가고 싶으면 나왔겠어. 난 고향에 가서 죽을 때까지 있어야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