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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수사가 경제발목 잡는다?

심석태

입력 : 2003.11.20 07:57

검찰 불법 정치자금 수사에 재계 항상 같은 목소리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가 속도를 더해가면서 수사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비단 재계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검찰 내부에서도 "도대체 대검에서 어쩔려고 저러나" 라는 식의 우려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습니다.

재계를 취재하는 기자들에 따르면 기업들은 정말 비상이라고 합니다. 그룹 총수가 출국금지되고 이르면 다음주쯤 소환 조사를 받을 예정인 LG그룹의 경우는 특히 그렇습니다. 연일 검찰 수사에 대한 그룹 차원의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는 겁니다. LG관계자는 검찰 조사에는 성실히 임하겠다고 하면서도 "대외신인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우려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LG의 경우 그룹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 등에서 부당 내부거래 등을 통한 비자금 조성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배임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삼성그룹의 경우 이학수 구조조정 본부장 등 이건희 회장의 최측근에 대한 조사가 진행중이고 노무현 후보 진영에 1억원씩을 건넨 전현직 임원 3명도 조만간 소환될 예정입니다. 돈을 냈던 모 전직 임원은 "솔직히 나는 시켜서 전달했을 뿐인데 언론에서 이름까지 거론해 불편하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결국 삼성그룹도 수뇌부의 관련 여부로 수사가 이어질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내년도 경영계획을 세우고 올해 실적을 마무리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수사가 빨리 마무리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중요한 시기. 수사 빨리 마무리 돼야"

더구나 수사 선상에서 한 발 비켜서 있는 기업들도 일손이 잡히지 않기는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모 기업 관계자는 "수사 방향이 어떻게 될지, 어느 정도 확산될지, 전부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솔직히 아직 거명되지 않고 있는 기업들 가운데서도 수사가 진행중인 곳이 적지 않기 때문에 자기 회사가 수사 대상인지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불법 자금 준 적이 없는 곳이야 발 뻗고 자고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들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경제에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합니다. 전경련 이규황 전무는 "세계 경제는 회복되는데 우리만 정치자금에 발목이 잡혀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검찰 수사가 장기화될 경우 해당 기업의 대외 신인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우리 경제 전반에도 타격을 주게 될 것이라는 점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조간 신문 가운데서도 이런 우려를 전하는 곳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조선일보는 "기업인 무더기 출금 과잉 아닌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출국금지된 기업인들은 우리나라 주요 기업의 핵심들"이며 "국제적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관리해야 하는 재계 2위 그룹의 총수까지 포함되어 있다"면서 "이 사람들이 무슨 파렴치범도 아닐 뿐더러 이들 기업의 현재 상황으로 볼 때 기업을 팽개치고 자기만 살겠다며 해외로 도주할 가능성은 크지 않으리라는 것이 상식적 판단"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출국금지할 필요도 없는 사람들을 묶는 것은 검찰의 의도에 다른 해석이 따르게 되는 것"이라고 과도한 법 집행이라고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기업인 무더기 출국금지 과잉 아닌가" 사설 실어

세계일보도 "검찰, '경제파장 최소화' 약속 지켜라"는 사설을 싣고 "확인도 안 된 소환 대상자가 실명으로 흘러나오는가 하면 '자백'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재벌 총수까지 출국금지되는 등 대선자금 관련 기업에 대한 검찰수사가 기업 이미지나 대외신인도 문제를 지나치게 가볍게 보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며 "필요 이상으로 경제를 위축시키지 말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문제제기들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91년 가을부터 검찰 취재를 시작했었는데(물론 그 때부터 계속 검찰 취재만 한 건 절대 아닙니다만) 지금까지 줄곧 검찰이 재계의 비자금이나 불법 정치자금 등에 대한 수사를 하면 항상 나오는 말이 수사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사소한 일 때문에 큰 일을 그르치는 것을 빗대어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저는 때로는 초가삼간을 태워서라도 빈대를 잡을 때는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빈대가 몇 마리 돌아다니고 있을 때야 그저 열심히 빈대만 잡으면 되겠지만 빈대가 초가삼간의 기둥뿌리를 파먹고 들어앉아 있다면 아예 기존의 초가삼간은 깨끗이 태워버리고 그 터에 집을 새로 짓는게 낫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기업의 국제적인 이미지나 대외신인도에 대한 것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대외신인도에 악영향을 주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투명성' 부족입니다. 도대체 우리나라 기업의 회계 장부는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국가별로 부패지수를 공개할 때도 우리나라는 아시아권 주요 국가들 사이에서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한 이미지 하락, 대외 신인도 추락이 있을 수 있을까요.

"국내 기업 대외신인도 악영향 핵심은 '투명성' 부족"

특히 지금 드러나고 있는 것들을 보면 외환위기를 맞아 IMF 관리체제까지 경험하고서도 우리 기업의 회계는 여전히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낸 셈입니다. 그런 경험으로부터도 배우지 못하는 기업이 과연 수사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하소연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전 무척 궁금합니다. 회사 돈을 빼내 온갖 부정한 곳에 유용해 부실기업을 만들어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돼 회사를 살렸는데 나중에 보니 그 공적자금까지 빼돌린 기업인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런 기업인들에 대한 수사 본부가 상설화돼 있어서 지금도 심심찮게 구속영장이 집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기업인들이 아니냐는 겁니다.

물론 손길승 SK회장이 밝힌 것처럼 정치권에서 협박성으로 졸라대는데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는 돈을 건네지 않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기업이 아직도 정치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쯤은 공지의 사실이니까요. 다만 그렇게 경제가 정치에 의해 휘둘리는 이유가 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바로 정경유착의 고리가 아직도 튼튼하기 때문에,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이익을 챙기는 구조가 살아있기 때문에 정치권에 밉보이면 경제활동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런 관행을 어느 누가 하루 아침에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물론 기업인들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 있을 겁니다. 현실은 아직 그런 방법을 통하지 않으면 기업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전에는 검찰이 들여다보지 않던 대선자금까지 수사를 해대니 어느 기준에 맞춰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죠. 그렇지만 지금은 수사가 경제 발목을 잡는다, 대외신인도를 하락시킨다는 소리를 할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관행을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 바른 자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언론도 검찰이 과잉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몰아세울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수사에는 협조하지 않은 채 오히려 경제를 볼모로 수사를 피해보려고 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옳을 겁니다. 그렇게 한 다음 앞으로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근본적으로 어떻게 바꾸는 것이 좋을지를 논의하는 것이 바른 순서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