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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사랑 한평생, 민병갈 원장 타계

이용식

입력 : 2002.04.09 19:29|수정 : 2002.04.09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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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뉴스>

<앵커>

이국땅의 나무와 꽃을 보존하는데 평생을 바친 천리포 수목원의 민병갈 원장이 어제(8일) 타계했습니다. 미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인으로 살면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선정된 보물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테마기획 이용식 기자입니다.

<기자>

태안반도 끝자락 천리포 수목원입니다.

목련이 화사한 꽃과 나무의 천국입니다. 멸종위기에 놓인 미선나무도 수줍게 꽃잎을 내밀었습니다.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꽃이 핀 스파큐러스, 천리포 수목원에만 있는 희귀종입니다.

모두 파란눈의 수목원장이 사랑하고 가꾸고 보존해 낸 나무와 꽃들입니다.

미국명 칼 페레스 오버필드 밀러, 한국명 민병갈씨는 이 수목원을 뒤로 하고 어제 오전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민 원장은 반세기전인 1945년, 미 해군 통역장교로 처음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의 꽃나무에 흠뻑 취했습니다. 1962년부터, 황무지였던 이곳에 나무를 심었습니다.

전국의 산하를 뒤져 토종식물을 찾아냈습니다. 외국을 누비며 희귀종을 모았습니다. 이제 천리포 수목원은 동양최대 규모입니다.

{이규헌/천리포 수목원 관리이사}
"결혼을 하면 수목원을 가꾸는데 제대로 신경을 쓸수 없다며 늘 나무와 결혼한다고 할만큼 열정이 대단했습니다."

민 원장은 팔순의 나이에도 증권회사 투자자문 일을 맡아왔습니다. 억척스레 연간 1억5천만원의 수목원 운영비용을 댔습니다. 미국 국적도 버리고 한국인으로 귀화했습니다.

{민병갈 원장}
"난 가족이 없으니까 (재산을) 수목원에 다주고 백년후에 수목원이 어떻게 됐는지 와보고 싶은데 올 수있을지 모르겠어요"

민 원장은 1년전 위암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민 원장은 주말이면 언제나 수목원에 들러 몸 사리지 않고 나무를 돌봤습니다. 지난달 11일에는 금탑산업훈장을 받았습니다.

우리보다 더 우리 자연을 사랑했던 파란눈의 노신사, 그는 영원히 잠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수목원에는 그가 생전에 그토록 좋아하던 목련꽃이 조용하지만 화사하게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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