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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에서 노벨상까지

원일희

입력 : 2000.10.13 22:27|수정 : 2000.10.13 22:27


◎앵커: 군사독재에 맞섰던 사형수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될 때까지 김대중 대통령의 삶은 너무도 극적이었습니다. 원일희 기자가 그 과정을 되돌아봤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살고 싶지만 당신들한테 협력하는 것은 내가 죽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할 수가 없다...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신민당 후보로 박정희 대통령과 대결한 지난 71년 대선. 90만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패배한 뒤 정치인 김대중의 역경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박정희 정권은 이듬해 유신헌법을 선포하고 민주 인사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시작했습니다.

73년 8월 일본 도쿄의 그랜드팔레스호텔. 김대중은 중앙정보부 공작원에게 납치돼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옵니다.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우방의 경고 덕분에 살아 돌아온 서울. 목숨은 건졌지만 가택 연금과 투옥이 끝없이 반복됐습니다.

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암살. 독재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져내렸습니다. 그리고 80년 서울의 봄.

<김대중 대통령: 우리 조상들의 그 맺힌 한을 풀고 여기에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민주 정부 수립에 총매진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호소하고 싶은 것입니다.>

봄은 왔지만 꽃은 피지도 못하고 졌습니다. 5.17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는 김대중을 내란음모혐의로 체포해 사형선고를 내립니다. 당시 전세계 언론은 김대중의 사형선고를 연일 톱뉴스로 다루며 신군부를 압박했습니다. 덕분에 사형 선고는 무기징역으로 바뀌었고, 석방된 뒤에는 미국 망명길을 강요받았습니다.

민주화의 돌파구는 87년 6월 항쟁에서 열렸습니다.군부독재의 억압을 뚫고 국민의 힘으로 얻어낸 대통령직선제. 그 선봉에 섰던 김대중은 당시 유력한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됐습니다.

그러나 야권분열은 김대중에게서 대통령의 꿈도, 노벨평화상의 영예도 앗아갔습니다. 92년 대선실패에 이은 97년 네번째 대권 도전. 40.3%의 지지로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은 98년 2월 25일 제15대 대통령에 취임합니다.

<김대중 대통령: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당선의 감격을 누릴 새도 없이 김 대통령은 건국 이래 최대 국난이라던 IMF 사태를 극복하느라 70 노구를 이끌며 밤잠을 설쳤습니다. 그러길 2년. 헌신적인 국민들의 노력과 함께 IMF 위기는 극복됐습니다. 김 대통령은 이제 평생 일궈온 꿈 통일을 향해 첫 발걸음을 뗐습니다.

2000년 6월 15일 분단과 반목의 시대를 넘어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접어드는 역사적 순간이 연출됐습니다. 그리고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는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 북일관계, 비록 통일이 당장 눈앞에 온 것은 아니지만 남북 화해와 협력이 남과 북이 선택할 유일한 길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통일을 향해 달려온 한 평생, 마침내 노벨위원
회는 75살의 그에게 평화의 메달을 수여했습니다.

SBS 원일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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