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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수절

김민표

입력 : 2000.10.02 21:19|수정 : 2000.10.02 21:19


◎앵커: 오늘 북한측이 보내온 이산가족의 명단에는 남한의 아내를 찾는 남편도 있었습니다. 이제 칠순이 된 남한의 아내는 남편과 생이별한 뒤 50년을 수절해 왔습니다. 김민표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올해 73살의 이춘애 할머니가 남편과 헤어진 것은 전쟁이 터진 지난 50년 9월, 당시 23살, 결혼 5년째던 이 할머니는 둘째를 임신한 만삭의 몸으로 두살바기 큰아들을 들쳐업고 시댁이 있는 전남 장성으로 피난길을 떠났습니다. 남편 고광욱 씨는 광주에서 볼 일이 있다며 하루만 있다가 뒤따라 가겠다고 굳게 약속했지만 50년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이춘애((74) 북에 남편 생존): 피난을 먼저 가라고, 그래서 내일 올 줄 안 사람이 오늘까지 안 왔다고 오늘 소식이 왔네요.>

졸지에 청상과부가 된 뒤에도 곧 돌아오겠다던 남편의 약속을 생각하며 재혼하라는 주위의 권유를 뿌리쳤습니다.

<이춘애((74) 북에 남편 생존): 오겠지, 아무 때 와도 오겠지, 오겠지, 그거로다가 오늘날까지 살았죠.>

전쟁 전까지만 해도 부잣집 맏며느리로 고생 모르고 살았지만 전쟁통에 재산이 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변하면서 포목상과 구멍가게 등 돈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해 왔습니다. 그 때마다 남편이 야속하기만 했고 끝내 소식이 없자 죽은 줄로만 알고 20년 전부터는 아들, 딸과 함께 남편의 제사까지 지내 왔습니다.

그 남편이 북녘땅에 살아있다는 소식에 할머니는 50년 수절의 한이 풀리는 것 같다며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합니다.

<이춘애((74) 북에 남편 생존): 참 무심한 줄 알았더니, 그래도 안 죽었으면 찾는구나...>

<고재현((51) 이춘애 할머니 딸): 저희 어머니하고 같이 한번 사는 것도 보고 싶고, 저희 어머니가 너무 고생을 많이 하셔서, 혼자서.>

SBS 김민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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