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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의 두 아내

입력 : 2000.08.17 20:00|수정 : 2000.08.17 20:00


◎앵커: 평양을 방문 중인 남측 상봉단 100명 가운데 부부상봉 이 17명이나 됐습니다. 남과 북의 두 아내에 대 한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이들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주영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남편이 북녘 고향으로 가게 됐다는, 그것도 옛 부인을 만나러 간다는 말을 듣고서도 남녘의 아내들은 한결같이 담담했습니다.

<한정오(이환일 씨 부인): 서운하긴요, 할아버 지가 좋다니까 나도 좋았죠. 그냥 세월이 그래 서 그런 거, 내가 뭐.> <양덕순(염대성 씨 부인): 당신 가족 찾은 거 축하하니까 가서 잘 만나고 오세요.> 오히려 정성을 다해 선물까지 마련해 줬습니다.

<최영분(최태현 씨 부인): 여자들이 처음에 자 기 남편을 맞이할 적에 갖고 싶은 게 예물이거 든요.> 그렇게 간 평양길, 그리고 만난 사랑하던 사람. 그러나 성큼 안아주기에는 켜켜이 쌓인 지난 세월에 대한 미안함이 너무 컸습니다.

곱던 얼 굴에 가득 덮인 주름살, 비단결 같던 머리에 쌓 인 서리, 차마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합니다. 손 한 번 잡는 것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대신하 다가 결국 회한의 통곡을 터트립니다.

<최성록(79): 당신 하나 거느리지 못하고 50년 간 이렇게 말이지, 날 용서하고 이해해 줘요. 날 용서해줘. 미안하오. 정말내가 잘못했소. 당 신 하나 거느리지 못하고...> 아비노릇 제대로 못한 북녘의 자녀들에게는 염 치없지만 다시 홀로 남을 어머니를 잘 보살펴 줄 것을 신신당부합니다.

<자식 노릇 제대로 못한 북녘의 자녀들에게 염 치없지만 다시 홀로 남을 어머니를 잘 보살펴 줄 것을...> 치매에 걸려, 귀가 먹어, 알아보지도, 알아듣지 도 못하는 늙어버린 아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또 한 번의 이별 을 앞둔 마음은 착잡할 뿐입니다.

<살아있을 생각은 안 했는데 살아있어서 만나 서 반갑기는 반가운데 뭐 말을 해야지요, 서로. 말을 못 하니까 안타까워요.> 그토록 보고 싶던 50년의 한을 풀긴 했지만 남 녘의 아내에게도 그리고 북녘의 아내에게도 괜 한 상처만 더해 준 건 아닌지, 서러운 세월에 대한 원망이 다시 한 번 가슴을 칩니다.

SBS 주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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