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검찰 고위간부입니다. 그런데 A씨가 약 30년 전 사법연수생 시절 음주운전이라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언론사가 A씨의 실명과 함께 보도했습니다. 이와 같은 '실명보도'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사례 2]
B씨는 현재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에이스 투수입니다. 그런데 B씨가 고등학생 시절 학교폭력 행위와 관련해 징계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을 언론사가 B씨의 실명과 함께 보도했습니다. 이와 같은 '실명보도'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사례 3]
C씨는 '천만 영화'에도 출연한 적이 잇는 유명 영화배우입니다. 그런데 C씨가 약 30년 전 고등학교 시절 강도와 성폭행 미수 사건에 연루돼 소년원에 갔다는 사실을 언론사가 C씨의 실명과 함께 보도했습니다. 이와 같은 '실명보도'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 실명보도에 대한 3가지 사례…왜 [사례 3]만 논란일까?
[사례 1]에 나오는 실명보도가 공익성이 없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검찰총장 후보자는 명백히 공적 인물에 해당하고 검찰총장 후보자의 범죄 전력 보도는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안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례 2]와 [사례 3]도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통상적으로 실명보도가 이뤄져 왔던 사안입니다. 하지만 평가하는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서는 익명으로 보도했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B씨가 고등학생 시절 '학교폭력' 사건 때문에 징계를 받았다는 [사례 2]가 C씨가 고등학생 시절 강도 및 강간 미수 의혹에 연루돼 소년원에 갔다는 [사례 3]보다 죄질이 더 나쁘다거나 실명을 공개할 필요성이 더 크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례 2]만 실명으로 보도해야 하고, [사례 3]은 실명보도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성립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눈치 채신 분도 있겠지만 사례 1, 2, 3은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사례 1]은 심우정 전 검찰총장의 음주운전 전력에 대한 보도였습니다. 이 보도에 대해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실명보도'한 것이 문제라는 평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례 2]는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 에이스 투수 안우진 씨의 고등학생 시절 학교폭력 의혹에 대한 보도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그동안 엄청난 양의 실명보도가 있었고 안우진 씨는 국제경기 출전 영구정지 징계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안우진 씨의 학교폭력 전력에 대한 실명보도가 부당하다는 주장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사례 3]은 영화배우 조진웅 씨의 고등학생 시절 강도 및 성폭행 미수 연루 의혹에 대한 『디스패치』의 보도였습니다. 그런데 안우진 씨 같은 운동선수나 다른 연예인의 학교폭력 사건에 대한 실명보도와 달리 조진웅 씨의 고등학생 시절 범죄 전력 의혹 보도에 대해서는 공익성이나 정당성이 없다는 비난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유독 눈에 띕니다. 이유가 뭘까요? [※ 조진웅 씨는 『디스패치』 보도 이후 일부 잘못을 인정하면서 연예계 은퇴를 선언하면서도 성폭행에는 연루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공적 인물 또는 유명인의 범죄 전력 등에 대한 실명보도를 놓고 논란이 불거지는 것은 우선 범죄 관련자에 대한 실명보도의 공익성을 판단하는 법적 기준이 매우 추상적이고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조진웅 씨 관련 실명보도에 대해서 '특별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것은 실명보도로 얻어지는 이익과 침해되는 이익을 저울질해 공익성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사정이 개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도의 대상이 '우리 편'일 경우 공익성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 자체를 왜곡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범죄 관련자에 대한 실명보도의 공익성을 판단하는 우리나라의 법적 기준은 무엇인지, 예외적으로 실명보도가 인정되기 위한 조건인 '공익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우리나라 법원은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 그리고 유독 조진웅 씨 보도가 논란에 휩싸인 특별한 이유에 대해 차례로 설명하겠습니다.
■ 모든 범죄보도 원칙은 '익명'…'공익성' 인정되면 '실명' 가능
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소년범에 대한 판결이나 범죄 기록뿐만 아니라 모든 범죄 관련 판결과 기록에 대한 보도는 '익명'으로 하는 것이 우리나라 법의 원칙입니다. 조진웅 씨의 청소년 시절 강도 및 성폭행 미수 의혹 관련 보도이든, 다른 유명인들의 청소년 시절 학교폭력 관련 보도이든, 모두 똑같이 익명으로 보도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와 같은 '익명보도 원칙'은 1998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확립됐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범죄의 내용 자체에 대해서 보도하는 것은 공익성이 있지만, 범죄자 또는 범죄 혐의자의 신원을 보도하는 것은 공익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단했습니다. 이전까지는 범죄 혐의나 범죄 전력에 대해서 보도할 때 미국이나 일본 언론과 마찬가지로 실명을 사용해 왔던 우리나라 언론사들도 이 판결 이후 익명보도를 원칙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법원 1998. 7. 14. 선고 96다17257 판결]
하지만 대법원이 모든 범죄 관련 보도에 대해 예외 없이 익명이어야 한다고 규정한 것은 아닙니다. 보도 내용이 진실하거나, 기자가 보도 당시 기사 내용을 진실하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는 전제 하에, 실명을 보도하는 행위의 '공익성'이 인정된다면 범죄 관련자 실명보도도 법적으로 허용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면 범죄와 관련된 실명보도 중 공익성이 인정되는 경우와 인정되지 않는 경우를 가르는 법적 기준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 1998년 판결에서는 범죄 관련자가 '공적 인물'일 경우 실명보도가 허용된다는 취지로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공적 인물'이 누구인지 법원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기준이 실명보도의 '공익성' 인정 범위를 너무 협소하게 만든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습니다.
■ 대법원이 제시하고 있는 실명보도 공익성 판단 기준
이후 2009년에 대법원은 범죄 관련자에 대한 실명보도의 공익성을 인정하는 새로운 기준을 선언합니다. 범죄 관련자가 공인이든 아니든, '실명보도를 통해 얻어지는 공공의 정보에 대한 이익이 범죄 관련자의 명예나 사생활의 비밀이 유지됨으로써 얻어지는 당사자의 이익보다 클 경우' 실명보도의 공익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한 것입니다. [대법원 2009. 9. 10. 선고 2007다71 판결]
2009년 대법원이 새로 제시한 공익성 판단 기준을 부등식으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실명보도로 인한 공공의 정보에 대한 이익 > 범죄 관련자 명예·사생활 보호 이익
→ 실명보도 공익성 인정 (명예훼손 등 불법행위 불성립)
나아가 2009년 판결에서 대법원은 어떤 경우에 '실명보도로 인한 공공의 정보에 대한 이익이 범죄 관련자의 명예나 사생활 보호 이익보다 크다'고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해 3가지 세부적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공익성이 더 크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법원은 제시한 3가지의 경우에만 공익성이 인정된다는 뜻이 아니라, 이 3가지 경우에는 공익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설명한 것입니다.)
⓵ [범죄 관련자에 대한 실명보도가] 사회적으로 고도의 해악성을 가진 중대범죄에 관한 것이거나,
⓶ 사안의 중대성이 그보다 다소 떨어지더라도 정치·사회·경제·문화적 측면에서 비범성을 갖고 있어 공공에게 중요성을 가지거나 공공의 이익과 연관성을 갖는 경우이거나,
⓷ 당사자가 갖는 공적 인물로서의 특성과 그 업무 내지 활동과의 연관성 때문에 일반 범죄로서의 평범한 수준을 넘어서 공공에 중요성을 갖게 되는 등 시사성이 인정되는 경우.
문제는 2009년에 새로 도입된 실명보도 '공익성' 판단 기준 역시 여전히 일반적이고 추상적이라는 점입니다. 2009년에 제시된 기준을 앞에서 제시한 사례 1, 2, 3에 대입해 보더라도 공공의 정보에 대한 사안인 것이 명백한 심우정 전 검찰총장의 경우[사례 1]는 모호하지 않다고 볼 수 있겠지만, 야구선수 안우진 씨의 경우[사례 2]나, 영화배우 조진웅 씨의 경우[사례 3]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공익성 판단 기준의 불명확성은 '이익 저울질' 방식 때문
이와 같이 실명보도의 공익성 판단을 위한 법적 기준이 추상적인 것은 우리나라 법원이 이익들 사이의 '비교형량'을 통한 공익성 판단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련된 상황을 범주화해서 각 상황마다 적용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정하는 미국 등의 방식과 달리, 우리 법원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기준을 제시한 후 각각의 사건마다 관련된 사정을 종합해 실명보도로 인해 얻어지는 이익과 침해되는 이익의 크기를 담당 판사가 전체적으로 비교한 후 어느 쪽 이익이 더 큰지 판단(비교형량)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즉, 각각의 사건마다 공공의 정보에 대한 이익과 당사자의 인격권 보호 이익을 저울질해서 공익성을 판단하는 '이익 저울질'(이익 비교형량) 방식입니다.
이와 같은 '이익 저울질' 방식은 표현의 자유를 우위에 두고 있는 미국의 경우와 비교하면 명예권이나 초상권 등 보도 대상의 인격권을 보다 세세하게 보호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판사의 가치관 등에 따라 실명보도의 공익성 여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실명보도의 공익성 여부에 대한 명확한 기준 설정이 어렵고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어떤 사건을 실명으로 보도해야 하는지, 아니면 익명으로 보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 즉 실명보도의 공익성 여부에 대한 판단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10여년 동안 수백 번 이상 반복됐던 연예인, 운동선수 등의 청소년 시절 학교폭력 의혹 실명보도 때는 불거지지 않았던 공익성 논란이 유독 조진웅 씨의 관련 보도에 대해서만 불거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조진웅 씨 관련 보도에 대해서만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공익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양팔저울의 한쪽 끝에 올려놓아서는 안 되는 것을 슬쩍 올려놓으려고 시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익성 판단을 위해 '이익 저울질'을 할 때 '우리 편'이라는 무게 추를 한쪽 편에 올려놓으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 '우리 편'이라는 무게추로 공익성 판단을 왜곡하는 사람들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에서 범죄 관련자 실명보도의 공익성 판단을 위한 법적 판단 과정은 '실명보도로 인해 얻어지는 공공의 정보에 대한 이익'과 '당사자의 인격권을 보호함으로써 얻어지는 이익'을 서로 비교한 후 실명보도로 인한 공공의 정보의 이익이 더 크 경우 공익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이익 저울질'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런데 '공공의 정보에 대한 이익'과 '당사자의 인격권 보호 이익' 중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둘 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조진웅 씨의 경우에 자발적으로 자기 자신을 대중의 관심에 노출시킨 연예인이고, 대중의 관심을 기반으로 경제활동을 영위한 인물이기 때문에 '제한적 공인'에 해당된다고 판단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조진웅 씨의 범죄 전력 의혹에 대한 실명보도는 "당사자가 갖는 공적 인물로서의 특성과 그 업무 내지 활동과의 연관성 때문에 일반 범죄로서의 평범한 수준을 넘어서 공공에 중요성을 갖게 되는 등 시사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해당돼 공공의 정보에 대한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반면 조진웅 씨를 공적 인물로 보기는 어렵고, 특히 조진웅 씨의 범죄 의혹은 청소년기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소년범에 대해서 특별히 보호하고 있는 법의 정신에 비춰볼 때 유명배우라고 할지라도 범죄 전력 의혹을 실명보도하는 행위의 공익성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2009년에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으므로 조진웅 씨에 대한 실명보도는 불법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공공의 정보에 대한 이익보다 보도 대상자의 인격권 보호에 따른 이익 등에 더 무게를 두는 입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든 비슷한 사안에 적용하는 기준 자체는 일관적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공공의 정보에 대한 이익보다 당사자의 인격권 보호에 무게를 싣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합니다. 그러나 야구선수나 다른 연예인의 청소년 시절 '학교폭력'에 대한 실명보도에 대해서는 공공의 정보에 대한 이익을 우선시하는 입장을 취하다가, 특정 정치 세력과 친화적인 것으로 알려진 조진웅 씨의 청소년 시절 '강도 및 성폭행 미수' 의혹 실명보도에 대해서는 인격권 보호 이익을 우위에 두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허용될 수 없습니다. 어떤 가치를 우위에 둘 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른 답을 할 수 있겠지만, 나와 관련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공공의 정보에 대한 이익을 중시하는 입장을 취했다가, '우리 편'인 사람에 대해서는 인격권 보호가 더 중요하다고 외치는 것은 '내로남불'이자 그 자체로 비윤리적인 태도입니다. 실명보도의 공정성 여부를 판단하는 양팔저울의 한쪽 끝에 '우리 편'이라는 무게 추를 몰래 올려놓는 셈입니다. 윤리적 속임수입니다.
■ '진영주의'가 훼손하는 공익성 기준…남는 것은 '약육강식' 뿐
우리나라에서 범죄 관련자의 실명보도의 공익성 여부를 판단하는 법적 기준은 상당히 추상적입니다. 평가하는 사람마다 가치관에 따라 공익성 여부를 다르게 판단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어떤 사람은 공공의 정보에 대한 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당사자의 명예나 사생활을 보호하는 이익이 더 크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느 가치를 더 중요하게 판단할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사람마다 다르고, 이에 따라 실명보도의 공익성 여부에 대한 판단도 엇갈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편'이 아닌 유명인들에 대해서는 공공의 정보에 대한 이익을 우위에 두는 입장에서 실명보도를 옹호하거나 묵인하다가, '우리 편'에 대한 실명보도가 나오면 당사자의 인격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태도입니다. '우리 편'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진영주의'에 불과합니다.
보도의 공익성에 대한 한 사회의 기준이 '진영주의' 때문에 흔들린다면, 윤리적 기준 자체가 일관성과 정당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누가 더 힘 센 진영에 가담했느냐를 가리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남게 될 뿐입니다. 비리를 저지른 범죄자들이 자기 보호를 위해 '진영'을 동원하는 경향도 더욱 노골적이 될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은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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