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제프리 엡스틴이 트럼프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렇게 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을 못했는데 순식간에 진행되고 있어요. 한국에서는 실제 정치 상황이나 드라마, 영화 같은 데서 많이 봤던 내용이에요.
희대의 악마 엡스틴과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관계냐? 둘이 친했던 건 주지의 사실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람이 나쁘다는 걸 알고 끊어냈다고 주장하고 있는 중이고, 엡스틴은 죽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둘이 나쁜 짓을 같이 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확한 근거는 없는 상황이에요.
시작은 2025년 11월 12일, 정부 기관을 들여다보는 하원의 감독위원회에 있는 민주당원들이 주도해서 자기들이 들여다보고 있던 사건 중에 엡스틴 사건도 있었고 자료들이 있었는데 이메일 3개를 콕 집어 공개한 겁니다.
첫 번째 이메일은 2011년 4월입니다. 제프리 엡스틴이 약간 꼬리가 밟혀서 감옥에 짧게 갔다 온 직후에 보낸 이메일인데 '짖지 않은 그 개가 트럼프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피해자는 트럼프와 우리 집에서 몇 시간을 보냈지만, 단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 걔들은 원래 짖는데 안 짖은 개가 하나 있어요. 언급되지 않은 개 한 마리가 바로 트럼프라는 겁니다.
"피해자하고 우리 집에서 몇 시간 있었는데 아직 트럼프가 거기 걸렸다는 얘기는 없어"라고 길레인 맥스웰이라는 자기 여자친구에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친구도 약간 공범이에요. 트럼프 대통령, 멜라니아 여사, 제프리 엡스틴, 길레인 맥스웰. 알고 지내던 사이예요. "맥스웰한테 '트럼프가 있었는데 안 걸렸다'라는 이메일을 보낸 것이다"라는 게 민주당의 주장입니다.
두 번째 메일은 2015년 12월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 출마를 하겠다고 한 이후인데 마이클 울프라는 언론인한테,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던 사람이에요. 마이클 울프가 "CNN이 오늘 밤 트럼프한테 엡스틴하고 무슨 관계냐고 물어본답니다." 엡스틴이 보낸 답장은 "만약 우리가 답변서를 써주면 뭐라고 써주면 좋을까요?"
두 사람이 서로 "너 내가 얘기한 거 다 알고 있지? 다 기억하잖아. 그럼 너라면 뭐라고 조언을 해줄 거야?"라고 물어본 거죠. 마이클 울프가 이렇게 보냅니다. "나는 그가 자살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대선에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이 보인다면 네가 그(트럼프)를 구해줘서 빚을 지게 만들 수 있다" 이런 식의 이메일을 보낸 겁니다.
세 번째 메일은 2019년이에요. 대통령 당선 이후 다시 마이클 울프에게 이렇게 보냅니다. "물론 그가 길레인(여자친구)한테 멈추라고 요구했기 때문에, 그 소녀들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무딘 칼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민주당이 그냥 홧김에 한 거다. 내가 그랬다는 증거가 어디 있냐? 엡스틴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민주당의 가짜 뉴스다'라고 밀어붙이면 되는 거예요.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이 그렇게 했고요.
그런데 이메일 3개가 나오고 4시간 뒤에 예상하지 못했던 대형 폭탄이 하나 떨어집니다. 아까는 민주당 의원 일부가 3개를 뽑아서 발표를 해버린 거고, 공화당도 들어가 있는 감독위원회가 같은 날 4시간 뒤에 엡스틴 관련 문서를 공개하겠다고 하고, 2만 페이지 분량의 문서를 아무런 설명 없이 인터넷 공간에 투척해 버립니다. 퍼즐 2만 개를 뿌려놓은 겁니다. 이걸 맞춰야 돼요.
근데 조금씩 맞추고 있다 보니까 '어? 이걸 왜 공개했지? 트럼프 대통령한테 유리하지 않은데. 내용이 쉽지 않은데'라고 나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대표적으로 스티브 배넌, 트럼프 1기 백악관 수석전략가로 트럼프의 핵심 측근입니다. 이 사람이 엡스틴과 나눈 대화들이 들어 있는 거예요.
배넌도 백악관에서 나온 이후인 2019년 6월 28일, 엡스틴과 얘기를 하면서, 당신에 대한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고 해서 이미 둘이서 실컷 정보 교환을 한 이후에 엡스틴이 뭐라고 썼느냐. 체포되기 일주일 전인데, "이제 트럼프가 당신(배넌)과 내(엡스틴)가 친구라는 말을 들으면 한밤중에 땀을 흘리며 깨어나는 이유를 알겠죠" 트럼프에 대해서 무슨 말을 했길래 한밤중에 (트럼프가) 땀을 흘리면서 깨겠느냐.
그다음도 의미심장한데 엡스틴이 배넌한테 전세기를 빌려주고 "세상에서 제일 비싼 여행사 쓰시는 기분이 어때요?"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감사합니다"라고 오고, 거기다가 "마사지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마사지'는 엡스틴이 범행을 저질렀던 주요 수법입니다. 이 수법을 이용해서 미성년 여성들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던 건데 이걸 농담이랍시고 이렇게 보낸 거예요. 배넌이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했다는 얘기잖아요. 엡스틴이 배넌에게 범죄를 수차례 얘기했다는 걸 암시한다는 겁니다.
2019년 7월 6일 체포되던 날에도 둘이 문자를 주고받았어요. "만약 우리가 인터뷰를 한다면 섬에서 찍을 수 있겠느냐?" 이 섬이 엡스틴의 주요 범행 장소입니다. 여기서 찍자고 했더니 "네." 한 다음에 "늦은 오전 11시쯤에 촬영할 수 있을까요?"라고 엡스틴이 대답을 한 거예요.
이게 왜 또 논란이 되느냐. 이걸 보내고 나서 직후에 체포가 됐거든요. 그리고 한 달 뒤에 구치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숨진 채 발견이 됩니다. 이렇게 (다큐 제작 협의가) 진척이 되고 있는 와중에 바로 그날 체포가 됐다, 섬에서 인터뷰를 하려고 하는데 체포됐고, 이렇게 뭔가를 밝히려는 의지가 충만했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음모론의 바탕이 될 만한 내용들이, 일부 조각만 맞췄는데도.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민주당이 뿌려놓은 이메일 3개라는 작은 잔불만 끄려고 했는데 뒤에서 들불이 터진 거예요. 어처구니가 없죠. '이것들이? 얻다 대고?' 이 생각을 트럼프 대통령이 할 거 아니겠습니까? '니들이 막아야 되는데 막지 않고 터트려?'라고 생각을 할 거 아니에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어쨌든 간에 공개하고 싶지 않은 건데 공화당에서 그걸 공개한 거잖아요.
범인 색출 작업에 들어갑니다. 주동자로 지목된 인물, 마조리 테일러 그린이라는 인물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밀고 있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마가(MAGA)'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돌격 대장을 했던 사람이에요. 온갖 폭언, 욕설에 가까운 말을 다 도맡아서 하던 사람이에요.
이 사람이 하원 감독위원회 위원 중에 한 명이었고 공개하자는 의견을 굉장히 강하게 제시를 했고, 결정적으로 하원에서 민주당은 법안 발의가 불가능한데, 11월 12일에 엡스틴 관련 자료를 공개하라는 법안이 올라갑니다. 공화당에서 이탈한 4명 중 한 명이 마조리 테일러 그린이었던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정말 화가 날 수밖에 없죠. 내 행동 대장, 돌격대장을 하던 사냥개가 갑자기 나를 물어? 화가 나죠.
그래서 SNS에 파문 글을 올립니다. "마조리 테일러 그린에 대한 지지를 철회합니다. 미치광이다. 만약에 저 사람 지역구에 적임자가 출마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지지하겠다." 나가서 저격해라. 인정해 주겠다. '마조리 테일러 그린'이 아니라 '마조리 트레이터(배신자) 브라운(배설물)'이라며 막말을 퍼붓기 시작합니다.
돌격 대장 입장에서는 파문을 당하면 움찔할 만한데 단 50분 뒤에 반격하는 글을 올립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저를 공격하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저는 도널드 트럼프를 숭배하거나 섬기지 않습니다. 저는 미국을 섬깁니다. 미국 대통령이 나를 협박하는데 제프리 엡스틴과 그의 측근에게 희생된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를 지금 내가 느낀다."
엡스틴과 트럼프를 묶어버립니다. 보스와 행동대장 혹은 주인과 사냥개가 미국에서는 싸워도 안 보이는 데 가서 싸우는데 이렇게 대놓고 SNS에서 대형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드라마, 영화에서도 많이 봤죠. 저는 영화 <달콤한 인생>이 생각나더라고요.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또 하나 생각나는 영화가 <남산의 부장들>. 중앙정보부장이었는데 대통령을 등지고 미국에 와서 비리를 온갖 폭로하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이런 관계가 틀어지면 정말 무섭죠.
그래서 실제로 어떤 사태로 발전하느냐. 트럼프 대통령 지지 세력인지 아닌지 모릅니다만 마조리 테일러 그린에게 파이프 폭탄 테러 위협, 아들 살해 위협이 쏟아지는 겁니다. 피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기자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물어봅니다. '마조리 테일러 그린이 이런 위협까지 받고 있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더니 모욕감을 느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한번 들어보시죠.
도널드 트럼프 | 미국 대통령 (11월 16일)
마조리 배신자 그린. 전 그녀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솔직히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조리 배신자 그린. 전 그녀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솔직히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라는 얘기를 하지 않죠. 스톱 사인을 주지 않습니다. 미국 정치가 상당히 거칠게 가는 모습을 보실 수가 있는데, 마조리 테일러 그린은 왜 저러는 거냐? 상원 의원이 되고 싶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했다, 나가지 말라고 말렸더니 화가 나서 덤비는 거라고 트럼프 대통령은 얘기를 하고 있는데 마조리 테일러 그린의 얘기는 다르죠.
제프리 엡스틴을 이용해서 미국의 유명한 갑부들이라든가 정치인들을 범죄로 엮어서, 한마디로 약점을 잡아서 미국을 뒤흔드는 배후 세력이 있다는 게 바로 이 '딥 스테이트론'이잖아요. 그러니까 저걸 다 까서 누가 접대를 받았고 누가 이 나쁜 일에 연루가 됐는지 확인이 되면 이 딥 스테이트를 다 들춰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마가 세력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서, 마조리 테일러 그린 본인은 그렇다고 말은 하지 않습니다만 뉘앙스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조리 테일러 그린 | 미국 하원의원 (11월 16일)
부유하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잘못을 저질렀다면 말이죠. 그래서 저는 여성들과 함께하며, 파일 공개를 위해 제 작은 몫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부유하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잘못을 저질렀다면 말이죠. 그래서 저는 여성들과 함께하며, 파일 공개를 위해 제 작은 몫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자' 바로 민주당 계열 사람들을 의미하는 겁니다. '나는 저 사람들을 잡으려고 하는 거다. 트럼프가 연관이 안 됐다고 나는 믿는데 왜 저러시는 거죠?' 이런 식으로 계속 덤벼요. 멈추질 않습니다.
마조리 테일러 그린 | 미국 하원의원 (11월 18일)
저는 트럼프 지지 없이 첫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예비선거에서 여덟 명의 남성을 제치고요. 그에게 빚진 건 전혀 없습니다. 배신자가 무엇인지 말해 드리죠. 배신자란 외국과 자신만을 위해 일하는 미국인입니다.
(하지만 11월 21일 결국 의원 사퇴 발표)
저는 트럼프 지지 없이 첫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예비선거에서 여덟 명의 남성을 제치고요. 그에게 빚진 건 전혀 없습니다. 배신자가 무엇인지 말해 드리죠. 배신자란 외국과 자신만을 위해 일하는 미국인입니다.
(하지만 11월 21일 결국 의원 사퇴 발표)
여기서 또 한 번의 반전이 벌어져요. 대통령이 일요일 밤에 갑자기 '하원 공화당 의원들, 엡스틴 파일 공개 법안에 찬성표 던져라. 숨길 게 아무것도 없다.' 찬성표를 던지게 할 거면 마조리 테일러 그린은 왜 파문을 한 겁니까? 갑자기 왜 이러는 거예요?
뒷얘기를 조사해 봤더니 마조리 테일러 그린을 때리면서 다른 하원의원들한테 다짐을 받기 시작한 거죠. '튀어나가지 마. 가만히 있어. 쟤 때리는 거 맞지? 너 맞는다 조용히 해. 가만히 있어'라고 겁을 주기 시작한 거예요. 하원의원을 백악관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이 설득에 법무부 장관과 FBI 국장이 나섰습니다. 사법권을 꽉 쥐고 있는 이 두 사람이 의원들을 앉혀놓고 '대통령 말 들어' 이렇게 얘기를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의원들이 말을 안 듣더라는 겁니다. '할 건데요. 왜요?' 뭐 이렇게 나서기 시작했고 숫자를 세다 보니까 통과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거죠. 트럼프 대통령에 그걸 보고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노발대발한 다음에 저 글을 썼다, '그래, 찍어!'라고 썼다는 겁니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죠. 하원 의원들은 왜 말을 안 듣기 시작한 것인가? 435명 하원의원들은 내년에 전부 선거를 치러야 돼요. 하원은 2년마다 매번 새로 다 뽑습니다. 근데 여론조사를 보니까 47대 42로 공화당이 밀리고 있어요. 또 다른 여론조사를 보시면 공화당원의 90%가 트럼프 대통령을 아직도 지지합니다. 굳건해요. 근데 그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모든 문서가 공개돼야 한다'는 응답이 3분의 2입니다.
내 지지층에서도 이 의견이 훨씬 더 세요. '쉽지 않네. 법안이 안 올라왔으면 모르겠는데 올라와 버렸으니까 찍어야 되겠다'라는 의견이 하원 의원들 중에는 굉장히 많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앉아서 패배하기보다는 쿨한 척이라도 하자. '찍어 봐!'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 427 대 1이 나와 버렸습니다. 반대 1표 나왔습니다.
이 법안이 어떤 법안이길래 이렇게 지금 폭탄이 됐느냐. 법무부 장관이 엡스틴과 여자친구 길레인 맥스웰 관련된 모든 기록과 문서, 통신, 조사 자료를 다운로드가 가능하게 공개하고 법무부 내부 통신까지, 그동안 너희들끼리 얘기한 것까지 다 내놓으라는 내용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인한다고 했어요. 사인을 하는 순간 30일 내에 이 내용을 내놔야 되는 겁니다. 이걸 만약에 다 깠다? 어떤 후폭풍이 발생할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그러면 트럼프 대통령은 정말로 이걸 공개할 생각인가? 아닙니다. 아직도 공개할 생각이 없어요. 트럼프 대통령은 막을 겁니다. 어떻게 막을 거냐. '민주당 사람들 수사해라. 빌 클린턴, 래리 서머스, JP모건, 체이스, 돈 있는 놈들, 민주당 돈줄 다 조사해서 엡스틴하고 관계있는지 수사를 하라'고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어요. 그러면 법무부 입장에서는 수사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얘기할 수 있는 이유가 생겨버립니다. 이미 검사를 지명해 버렸어요. 수사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① 수사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자료를 낼 수 없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동영상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