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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거지방' 챌린지: 얼마를 가져야 행복할까?

스프 어쩌다
"거하!"

오픈 카톡방에 입장하자 기존 참여자들의 경쾌한 인사가 쏟아집니다. '거지 하이'라는 뜻입니다. 세간의 화제라는 이른바 '거지방'입니다. 고물가 시대에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소비 내역 또는 소비 충동을 자백하고 서로가 서로의 절제를 돕는 이른바 무지출 챌린지의 일환입니다.

'거지방'으로 오픈 카톡방 수백 개가 검색되지만, 참여자 수가 제한 인원에 이른 '풀(Full) 방'이 여전히 많습니다. 절약과 무지출에 대한 요즘 사람들의 관심이 뜨겁다는 걸 보여주는 방증이랄까요.

취지는 '절약'이지만 다소 과격하게 '거지방'으로 부릅니다. 무절제한 소비로 거지가 되기 싫은 사람들이 모이는 방 또는 이미 소비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더 이상 쓰면 안 되는 사람들이 모인 방이기 때문입니다. 참여자들은 닉네임에 월간 누적 소비액수를 수시로 업데이트하고, 그때그때 어떤 품목에 돈을 썼는지 고백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돈 써도 될까요?" "기각합니다" 거지방 등장

챗방에 이모티콘을 쓰면 "다른 사람들에게 소비를 유도하지 말라"는 경고가 날아오고 이윽고 누군가가 해당 이모티콘을 어설프게 따라 그린 그림을 올리면서 "이건 공짜니 이걸 쓰라"고 말합니다. 속옷에 구멍이 나 새로 샀다고 소비 내역을 올리면 "바느질을 배우라"거나 "물려받아 입으라"는 조언이 날아오기도 합니다.

'무지출 챌린지'에 걸맞게 소비라면 사정없이 꽂히는 비난과, 또 지출을 반려하는 다른 사람들의 잔소리(?) 때문에 소비 내역을 애써 위장하는 대화들도 '거지방'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사회적 품격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 1만 5천 원", "똑바로 말하세요", "친구한테 커피랑 조각 케이크 사줬습니다", "더 나은 나를 위한 한 발자국 20만 원", "구체적으로 쓰세요", "옷입니다" 등.

스프 어쩌다
지난 3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4.2%를 기록했고, 또 외식 물가 상승률은 7.4%에 이르렀습니다. 원자재 가격, 가공비, 인건비, 물류비 오르지 않은 게 없죠. 그러다 보니 실생활에서 체감하는 경기가 매우 팍팍하기 그지없습니다. 매월 급속도로 줄어드는 잔고를 지켜보고 있으면 '이대로 살다 간 거지꼴 면하기 어렵다'는 말이 바로 이해됩니다.

혹독한 경기에 대응하기 위해 소비를 줄여야 하는 사람들에게 '거지방'은 유쾌한 무지출 챌린지로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오픈 카톡방에서 가장 많이, 자주 접하는 건 바로 소비와 관련된 정보입니다.
 

'거지방'에서 명품 소비 고백…변종 소비문화?

약 열흘 간 5개의 거지방에 참여해 참가자들의 대화를 지켜봤는데요. 쓸 것이냐, 말 것이냐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이용자들에겐 단호하게 '쓰지 말 것'을 주문하는 집단지성은 잘 통하지만, 이미 써버리고 소비 내역을 익살스럽게 통보하는 경우엔 오히려 '소비 정보방'이 되어 버리고 만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보라카이 여행 전까지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며 거지방에 들어온 포부를 밝히는가 하면, 어버이날을 맞이해 부모님께 수백만 원의 명품가방을 사드렸다는 '넘사벽' 고백이 인증 사진과 함께 이어지고, "부모님이 나에게 수 억 원을 쓰셨는데 이 정도는 해드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설명엔 그럴 수 있다, 소비를 용인한다, 인정하는 분위기로 흘러가는 식입니다.

20만 원어치 영양제를 샀다는 고백엔 무작정 나무라는 대신, 비슷한 함량의 더 싼 제품을 소개해주기도 합니다. 영양제엔 관심도 없었지만 그 정보를 보니 솔깃합니다. 이쯤 되면 '소비 정보방' 맞나요?

무지출과 절제를 요구받는 썩 유쾌하지 않은 상황에서 함께 절약할 수 있는 '거지방'이 우후죽순 만들어지고 있지만, 첫 유행이 시작된 지 2주 차에 접어든 지금은 소비를 엄격하게 제지받기 위함이라는 애초의 목적보다 '소비여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였다'는 동질감과 안도감을 느끼려는 용도가 더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돈이 (충분히) 없다"는 한탄을 그야말로 하루 종일 해도 그 누구도 눈총을 주지 않는 대화방이니까요.

하지만 '거지방'이 아무리 유행이라 해도 사회 전체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분위기라 보긴 어렵습니다. 여행업계에 따르면 5월 해외여행 수요는 전년 동월 대비 많게는 3000%, 적게는 1000% 이상 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내 고급호텔 '호캉스' 수요 역시 폭증했습니다. 각종 해외 브랜드 명품업체들은 가격 인상에도 식지 않는 '오픈 런' 소비를 등에 업고 한국 영업이익을 연일 역대 최대치로 갈아치우고 있죠.

이렇듯 한편엔 극도로 소비를 절제하며 3천 원 미만의 편의점 도시락 매출을 올리는 '거지방' 등의 무지출 챌린지가 있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에선 그동안 억눌린 소비욕구를 마구 분출하는 럭셔리 '보복소비'의 이분화 된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빈곤은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SNS를 통해 타인이 전시하는 보복소비 내역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또 욕망의 전파가 쉽게 일어나는 지금, 스스로를 '거지'라 자조하며 소비를 억제하려는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빈곤'으로 인식하고 있을까요?

스프 어쩌다
OECD는 2019년 중산층의 기준을 중위소득의 75~200%으로 정해두고 각 국가별로 비중을 계산해 비교하고 있는데요. 지난해 NH투자증권에서 낸 이른바 '중산층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이 '중산층'에 해당하는 소득 범위는 월 385만~1천20만 원입니다.

그런데 이 기준에 따라 중산층인 사람들도 절반에 가까운 45.6%가 스스로를 '하위층'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들의 셈법에 따르면 한 달 소득은 686만 원, 또 한 달 소비 지출이 427만 원가량은 되어야 중산층입니다.

이들이 평균치라 생각하는 지출 수준은 그러나, 상위 9%에서나 가능한 수준입니다. 세상은 과시 소비와 전시로 가득한데 나의 가처분소득은 그에 미치지 못하니 만성적 빈곤 상태로 스스로를 인식합니다.
 

우리는 얼마를 가져야 행복할까

중요한 건 절제와 절약을 통해 참여자들이 달성하고자 하는 '행복'입니다. 왜 갑자기 행복이냐고요? '거지방' 참여자분들이 인용하셔도 좋을 새로운 연구가 나와서 이 기회에 소개를 해드리려 합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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