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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태국 절벽 추락 임산부 사건…3년 만에 기적처럼 재활

반전에 반전 거듭한 사건…아픔 딛고 휠체어에서 일어나

정영태 취재파일

지난 2019년 태국의 한 유명 관광지 34미터 절벽에서 한 30대 중국인 여성이 떨어져 크게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추락 직전 나뭇가지에 걸리면서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전신에 다발성 골절을 입었습니다. 

이 사건이 당시 큰 충격을 준 건 사고를 당한 여성이 임신 3개월 상태였고, 다름 아닌 남편이 밀어 절벽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이 경찰조사에서 뒤늦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 여성은 부상 정도가 워낙 심했기에 5번이나 수술을 받아야 했고 평생 휠체어를 타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3년여간 굳은 의지로 치열한 재활 과정을 거쳤고 놀랍게도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최근 알려지면서 중국 사회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1987년생으로 태국 이민 생활을 하다 끔찍한 사고를 당한 36살 왕누안누안(王暖暖, 왕난난)씨 이야기입니다.

정영태 취재파일

2015년 시작한 태국 생활에 성공…운명처럼 만난 남편


왕 씨는 지난 2015년 태국에서 말린 망고를 파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창업 초기엔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태국어를 배우며 서너 시간밖에 못 자고 그야말로 주경야독을 한 끝에 성공했습니다. 망고 사업 외에도 홈스테이, 레스토랑 등 관광 사업에도 투자해 성공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고 태국에 자리도 잡았습니다. 30살 생일이 있었던 2017년 파티에서 같은 중국인 남성 류사오동을 만났고 빠르게 가까워졌습니다. 밝고 따뜻하며 자기 관리도 철저한 류 씨의 모습에 만난 지 두 달 만에 결혼을 결정했습니다. 류 씨가 태국에 오기 전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현재의 모습에 만족했고 타국에서 만난 운명으로 여겼습니다.

정영태 취재파일

결혼 후 달라진 남편…숨겨왔던 과거

 
남편 류 씨는 결혼 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습니다. 일하러 나가지도 않고 매일 집에서 게임을 했고 아내 왕 씨를 무시하기도 일쑤였습니다. 도박으로 큰 돈을 잃은 후 아내 왕 씨의 사업체에 있던 돈에도 몰래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류 씨가 눈물을 흘리며 반성하는 모습에 왕 씨가 도박 빚을 갚아주었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남편의 도박장 출입은 끝나지 않았고 숨겨왔던 과거도 드러났습니다. 결혼 전 강도와 절도죄로 12년 동안이나 감옥에 있었던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겁니다. 왕 씨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류 씨가 새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고 2019년 아이를 임신하게 됐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사랑스러운 아기가 태어나면 남편도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암벽 절경 유명한 태국 국립공원…남편의 속삭임


2019년 6월 남편 류 씨는 임신한 아내를 데리고 암벽 절경으로 유명한 태국의 한 국립 공원으로 일출을 보러 가자며 여행을 갔습니다. 고대인의 벽화가 있다며 절벽 가장자리로 아내를 이끈 류 씨는 갑자기 포옹을 하고 뺨에 입을 맞춘 뒤 "지금까지 후회할 일은 없어?"라며 뜻밖의 귓속말을 했습니다. 왕 씨는 의아했지만 곧 태어날 아기와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업 등을 떠올리며 "후회는 없지"라고 말했는데, 갑자기 류 씨가 "그럼  죽어라"는 말을 한 뒤 왕 씨를 절벽 아래로 밀어 추락시켰습니다. 34미터 절벽 아래로 떨어진 왕 씨는 원시림 속에 꼼짝없이 누워서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17곳이나 골절됐고 출혈도 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연히 길을 잃은 관광객이 숲을 지나가다 왕 씨를 발견했고 죽음에서 그녀를 구해냈습니다. 

정영태 취재파일

24시간 병실 지킨 남편…처음엔 "현기증 때문에 추락했다"


병원으로 이송돼 대수술을 마친 아내 왕 씨.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되찾고 보니 병상 옆을 지키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남편 류 씨였습니다. 류씨는 24시간 떠나지 않고 감시하면서 진실을 말하지 말라고 위협했습니다. 치료가 채 끝나지 않았음에도 병원에서 아내를 데리고 나가려고 했지만 의료진이 제지했습니다. 병상에 누운 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고 남편의 보복이 두려웠던 왕 씨는 첫 경찰조사에서 "현기증이 나서 절벽에서 떨어졌다"고 거짓 진술을 했습니다. 

하지만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한 뒤 아내 왕 씨는 가까운 친구를 불러 사실을 털어놨고, 남편과 자신이 나누는 대화를 몰래 녹음하게 했습니다. 남편이 방심한 틈에 경찰에게 사실대로 재신고하면서 이른바 '절벽 살인 미수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습니다. 친구가 녹음한 대화에서 류 씨가 아내에게 절벽에서 민 사실을 인정한 것이 중요 증거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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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과 보험금 노린 남편의 배신?…치열한 재활의 노력


태국 법원의 1심 재판은 살인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남편 류 씨가, 아내가 임신한 뒤 들었던 사망 보험의 수혜자를 자신으로 지정한 뒤 그 보험금을 노렸던 것으로 본 겁니다.

아내 왕 씨가 태국에서 사업에 성공하며 이룬 재산 30억 원을 독차지할 생각이었다는 것도 범행 동기로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2심에서는 고의 살인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에 징역 10년으로 형이 줄었습니다. 왕 씨는 2심 판결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3심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7곳이 골절돼 1백 개 가까운 의료용 나사못을 온몸에 시술해야 했던 왕 씨. 사고 당시에는 복중 태아가 무사했지만, 중상 회복 과정에서 계속되는 약물치료를 받아야 했고 결국 임신 5개월 만에 아이를 잃어야 했습니다.

스스로 씻고 먹고 움직일 수도 없는 그녀를 어머니가 돌봤고 회복과 수술을 오가는 긴 재활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고통을 이겨내고 살아갈 이유를 찾기 위해 2020년 SNS 계정을 열었고 자신의 아픔을 사람들과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 생일날에 첫 SNS 생방송을 시작하며 남은 삶은 '환생'으로 여기겠다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정영태 취재파일

이름 바꾼 이유…"사랑은 빛과 같아, 굴절 있지만 끝이 아냐"


SNS 생방송으로 물건을 파는 이른바 소셜 커머스 진행자로 변신한 그녀에게 일부 네티즌들은 '비참한 과거와 아픈 몸을 내세워 물건을 판다'며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소송 비용에 대한 부담과 치료비, 코로나19로 인한 관광수입 감소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태국에서 사업을 책임지던 자신이 오랫동안 병상에 있어야 했기 때문에 기존 사업의 수익도 점점 떨어졌습니다. '비참함을 팔아 돈을 버는 구걸이나 다름없다'는 비난에 그녀는 "삶을 직시하고 곤경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라고 항변했습니다.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왕 씨는 누안누안(暖暖, 난난)이라는 이름이 본명이 아니라 SNS를 시작하며 새로 지은 이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따뜻하고 따뜻한'이라는 새 이름의 뜻처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하고 싶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만족스럽지 못한 삶에 직면하고 좌절할 때 자신 같은 사람도 살아남아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햇볕을 기다린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라고 했습니다. 불행을 만나기도 했지만 그 불행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따뜻한 도움도 받았다는 겁니다.

왕 씨는 "사랑은 하나의 빛과 같다고 생각한다"면서 "나의 사랑은 많은 굴절점 중의 하나일 뿐이며 빛의 끝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3년이 넘는 힘든 재활을 거쳐 기적처럼 일어서 걸을 수 있게 됐다며 최근 그 재활 과정을 공개한 그녀의 SNS에 계정에 많은 중국인들이 응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정영태 취재파일

(사진 출처 : 바이두, 웨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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