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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오픈 런 필수라는 '웨딩스냅'을 아시나요

① 진화하는 스냅

스프 어쩌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30대 김송이 씨(가명)는 패닉에 빠졌습니다. 결혼식을 반년가량 앞둔 지금이면 여유 있게 준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평소 점찍어두고 있던 웨딩스냅 사진작가에게 예약 문의 메시지를 보냈더니 내후년 하반기에나 예약이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아뿔싸, 하는 생각이 들었던 김 씨. 해당 작가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잉하는 사람 수를 무심코 쳐다보니 무려 10만 명이 넘습니다. 나의 '로망'은 모두의 로망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스스로를 모질게 탓하며 부랴부랴 다른 작가를 알아봅니다. 그리고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단지 거대한 '오픈 런' 전쟁의 서막일 뿐이었다는 것을.
 

"식장부터 오픈 런 뛰어야" 예비 신혼부부들은 어쩌다

예비 신혼부부에게 결혼식장과 날짜를 확정하고 바로 착수해야 하는 과제 중 하나가 바로 '사진'입니다. 택일의 큰 산을 넘고 숨 고를 시간도 없이 바로 그날에 필요한 다른 숙제들이 한 줄기에 매달린 고구마처럼 줄줄이 따라옵니다. 결혼식 당일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담아줄 '스냅사진' 업체를 선정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취향에 따라선 사진뿐 아니라 본식 영상을 담아줄 촬영업체를 선정하기도 합니다. 물론 둘 다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날짜와 시간이 정해져 있고, 평판이 좋은 가성비 업체는 한정돼 있기 때문에 각종 웨딩 카페나 블로그 등지에선 유경험자들이 신입들에게(?) '예약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패스트트랙으로 식장 예약 후 '본식 스냅'과 'DVD 업체'를 논스톱으로 알아보는 일정을 안내하곤 합니다. 김 씨는 "뭔가를 선택하는 일 자체가 동시에 그다음 선택으로 내모는 기분"이라며 결혼 준비의 어려움에 대해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스튜디오'와 '드레스', '메이크업' 예약이 그다음입니다. 이른바 '스드메'입니다. 이 스튜디오에선 모바일청첩장 등지에 넣을 사진을 찍습니다. 여기에 드레스 업체와, 원본 사진을 보정해 줄 업체, 분장업체는 물론, 장시간 촬영하는 동안 흐트러진 머리를 정돈해 줄 출장 헤어전문가 그리고 요즘에는 사진에 꽃을 예쁘게 연출해 주는 이른바 '플라워 디렉팅'도 유행입니다. 물론 적잖은 비용이 들어가는 항목들임에도 불구하고. 마찬가지로, 예약이 만만치 않습니다.

"결혼할 사람이 없다는데 왜 예약은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결혼 준비를 하는 대부분의 평범한 예비 신혼부부들의 공통된 하소연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걸까요?

스프 어쩌다
예식장 구하기부터 하늘의 별따기가 됐습니다. 혼인 건수는 명백하게 줄어들고 있지만 이 속도보다 예식장이 더 빨리 줄어든 게 문제였습니다.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전국 예식장 수는 2018년 1013곳에서 2022년 750개로 줄었습니다.

코로나19로 경영에 큰 타격을 입은 업체들이 잇따라 폐업한 것에 비해 반대급부로 결혼 시점을 살피던 예비부부들의 수요가 반짝 폭증한 겁니다. 예식장으로 인기가 많은 서울 서초구의 한 호텔 관계자는 "내년인 2024년 하반기 예식장 상담 일정마저도 올해 몇 남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예식장을 잡기 위한 상담 일정마저도 '오픈 런'하는 상황입니다. 바뀐 사회 분위기에도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이들에게 오히려 결혼 난이도가 더 높아진 겁니다.

물가도 예비 신혼부부의 오픈 런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 웨딩홀 90곳의 대관료를 조사한 결과, 이 중 65곳이 최근 1년 새 대관료를 인상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예식장 식대는 물론이고 촬영비와 드레스 대여료 등이 크게 올랐고, 인건비도 올라 드레스 업체 소속 일일 도우미나 식장 소속 촬영기사의 임금도 평균 5만 원 정도 인상됐습니다.

예물 반지로 사랑받는 명품 주얼리 브랜드들은 새해 벽두부터 줄이어 가격 인상에 나섰습니다. 프랑스 브랜드 부쉐론은 2월 중 약 10% 가격을 인상했고, 스위스 브랜드 쇼파드도 시계와 주얼리 등 전 제품 가격을 8% 가량 일괄 인상했습니다.

'국민 예물 브랜드'로 알려진 까르띠에는 4월 중 시계와 주얼리 등 주요 제품 가격을 최대 15% 이상 인상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상 소식을 들은 예비부부들은 식을 1년 이상 앞둔 시점에서도 백화점 앞에서 '오픈 런'을 뛰고 있습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발표한 '2023년 결혼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예식홀 예약비와 웨딩패키지 비용을 합산한 평균 예식 비용은 1390만 원으로, 1278만 원이었던 전년 대비 8% 이상 올랐습니다.
 

파생 산업으로 폭풍 성장 중인 '웨딩 스냅'

이 모든 예약 전쟁과 가격 인상의 틈바구니에서 급성장한 파생 산업도 눈에 띕니다. 앞서 '패스트트랙'으로 소개해드린 '스냅사진' 산업입니다. 스냅사진은 크고 작은 인위적인 연출 없이, 의도적으로 구성하지 않는 순간을 찍는 사진입니다.

'웨딩스냅'이라는 파생 상품은 처음엔 갖은 결혼 준비의 굴레에 이른바 '현타'를 맞은 젊은 부부들의 대안으로 지목됐습니다. 최장 10시간에 이르는 '스튜디오 촬영'에 들어가는 노력과 비용이 부담이다 보니, 결혼을 기념하는 사진을 남긴다는 실용적 목적과 체험형 콘텐츠의 어디쯤에서 복수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스튜디오 촬영에서 핵심만 추려 2시간 내로 빠르게 찍는 이른바 '세미 촬영', 제주도의 멋진 풍광을 배경으로 간편한 드레스를 입고 찍는 '제주스냅', 창경궁이나 경복궁 같은 궁을 배경으로 한복을 입고 촬영하는 '한복스냅'은 물론, 골목이나 공원에서 드레스나 양복 같은 복장으로 구색을 맞춰 찍는 '빈티지스냅' 등 종류도 매우 다양합니다.

스프 어쩌다
처음에는 웨딩 산업의 '간소화 버전'으로 등장했지만 SNS 등을 통해 급속하게 유행으로 번지면서 웨딩스냅 역시 너도나도 뛰어드는 필수코스가 되어가는 모양새입니다. 비단 결혼이라는 행사가 계기가 되지 않더라도 일상을 기록하고 전시하는 일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의 구미에도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문제는 가격입니다. 인생의 한 번이라는 테마로 통상 '가성비'를 따지기 어려운 웨딩산업의 구미에도 맞아떨어졌습니다. 앞서 언급한 상품들의 가격도 아마추어 작가부터 프로까지 부르는 게 값입니다. 간단한 상품이라도 적게는 50만 원에서, 많게는 기백만 원이 넘어가는 해외 로케이션 촬영(신혼여행지 스냅)까지 비용이 적지 않습니다.

전문 사진작가가 찍어주는 이른바 '본식스냅'은 보정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이런 빈틈을 노려 바로 결혼식 당일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은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한 이른바 '아이폰 감성'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아이폰 스냅'도 출현했습니다. 말 그대로 '아이폰'으로 찍어주는 사진입니다. 1시간 남짓한 예식에 30~50만 원 정도 비용이 듭니다. 업체들은 "하객처럼 입고 가서 하객 동선을 그대로 따라가, 티 내지 않고 찍어주겠다"며 홍보 중입니다.

적잖은 비용에도 '느낌이 좋다', '감성이 괜찮다'고 입소문을 탄 업체엔 예약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인스타그램 포트폴리오와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져 예약이 어려워진 한 인기 작가는 밀려드는 촬영 문의에 심지어 "커플의 사연을 받아보고 찍을지 말지 결정하겠다"고 해서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스프 어쩌다
이렇게 별다른 진입 장벽 없이 오로지 포트폴리오와 경력, 입소문으로 승부하는 스냅사진이 '돈이 된다'는 소식에 너도나도 뛰어들면서 '사진업' 규모는 통계청 등록 기준 사업체수는 2011년 8,599개에서 2021년 15,957개로, 종사자수는 18,155명에서 25,567명으로 성장했습니다. 모두가 카메라 등 촬영기기를 다루기 쉬워지고 접근성이 높아져 그리 전망이 밝지 않아 보였던 사진업이 '스냅' 산업과 SNS 전시유행을 타고 이른바 '폭풍성장'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기록이 추억을 규정하는 시대, '스냅'의 새로운 존재론

'힙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스냅사진의 전신은 사실 '저널리즘'입니다. 1920년 말 독일의 포토 저널리스트 에리히 잘로몬은 당시 처음 시판된 35mm 카메라를 숨겨서 법정과 국제연맹회의에 찾아가 몰래 사진을 찍으며 참여자들의 생생한 모습을 기사로 보도했습니다.

당시 전통적 방식의 '기념사진적인 보도사진'보다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잘 전달할 수 있었고, 그래서 이를 숨김이 없고 솔직하다는 뜻에서 캔디드 사진(Candid Photograph)으로, 추후 '스냅사진'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요컨대 '스냅사진'의 핵심은 피사체가 촬영 사실을 인지하거나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찍는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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