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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교육부의 '학교복합시설 활성화' 계획을 반길 수 없는 이유

지역 주민에게 개방된 학교 시설…우려가 앞서는 까닭

정부, 학교복합시설 관련 브리핑

지난 17일 교육부가 학교복합시설 활성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학교 부지에 도서관이나 수영장, 공연장 같은 시설을 만들어 지역 주민과 함께 쓰도록 하겠다는 건데, 오는 2027년까지 매년 전국 40개 학교를 선정해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발표 당일, 저는 경기도 시흥시 배곧신도시에 다녀왔습니다. 새로 만들어진 아파트 3개 단지 가운데 배곧누리 초등학교가 있고, 같은 부지에 시흥시가 예산을 투입해 만든 배곧너나들이 센터가 있습니다. 교육청 관할인 초등학교 부지 일부를 시 당국에 내주고, 학생과 주민이 함께 사용하는 복합 시설인데, 운영과 관리도 시흥시가 맡고 있습니다. 교육부가 활성화하겠다고 밝힌, 딱 그 모델입니다.

배곧누리초등학교는 지난 2019년 3월 개교 당시만 해도 15 학급이었는데, 불과 4년 만에 전교생 750여 명, 31 학급 (특수반 2 학급 별도)으로 규모가 커졌습니다. 이 때문에 같은 해 10월 개관한 학교 복합 시설, 배곧너나들이 센터의 중요성이 더 커졌습니다. 학생 수 급증으로 돌봄 교실을 운영하려 해도 공간이 부족했는데, 배곧너나들이 센터에서 35명, 2 학급을 맡아줬습니다. 돌봄을 신청하지 않은 일반 학생의 방과후 교실도 여기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평균 학생 3-4백 명이 센터를 이용한다고 하는데, 학교가 끝나자마자 우르르 아이들이 달려오는 모습을 보니 이 시설이 없었다면 큰일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도시마다 학생 수 급증에 과밀 학급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니까요.

시흥 배곧너나들이 센터

배곧너나들이 센터는 주민들에게도 소중한 공간입니다. 도서관과 공연장, 카페를 이용할 수 있고, 다목적방에서 소모임을 열 수도 있습니다. 열람실로 지정된 방에서 공부하는 주민들도 있었습니다. 학부모들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녀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어서 즐겨 찾는다고 말했습니다. 또 방과후 수업이 이곳에서 열리는 것에 대해서도 만족감을 나타냈습니다. 차를 타거나 도로를 건너 학원을 가는 것보다 학교 바로 옆에서 방과후 수업을 들을 수 있어 교통사고 걱정을 덜 수 있다는 겁니다. 조용한 동네, 안전한 학교, 믿고 보낼 돌봄/방과후 교실, 주민들의 자부심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저로서는 담 없는 학교, 주민에게 개방된 학교 시설을 보면서 불안과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2010년 쉬는 토요일, 방과후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나온 어린 학생을 운동장에서 끌고 나간 김수철 사건 때문입니다. 인면수심의 성범죄자가 학교에 들어와 학생을 데려간 엄청난 범죄에 여론은 들끓었고, 교육부는 각종 대책을 쏟아냈습니다. 밤낮으로 활짝 열려있던 교문을 닫고 정문에 학교 보안관을 배치했습니다. 학부모조차도 신분증을 제출하고, 출입 목적을 기록해야 하는 등 학교 출입 절차가 매우 까다로워졌습니다. 괴한이 운동장에 침입했더라도 교실까지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건물 현관 출입문에 시건 장치를 달았습니다. 학생들이 교실로 들어간 뒤엔 아예 외부인과 접촉할 수 없도록 한 겁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지만, 다시 학교를 안전한 장소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아침에는 조기 축구회의 훈련장으로, 오후에는 어르신들의 공원으로, 저녁에는 직장인과 학생의 운동장으로 쓰였던 학교를 철저히 학생들만의 공간으로 돌리기까지 반발이 적지 않았지만, 이 끔찍한 사건 이후 "학생 안전"이 최고의 가치가 되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고, 결국 새로운 정책은 스며들었습니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학교 운동장과 시설을 개방하라는 주민의 요구가 일선 학교에서 쉽게 수용되지 않는 것도 안전에 대한 우려 때문입니다.

아이들-학교보안관

그래서 8시 뉴스에 교육부의 학교 복합 시설 확대 기사를 쓸 때 우수 사례로 시흥의 배곧너나들이 센터를 소개하면서 학생들의 참여율, 주민들의 긍정적인 반응과 함께 '학생 안전'이라는 숙제가 남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지적에 학교와 센터에서도 좀 더 안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교육부는 앞으로 5년 동안 2백 개의 학교에 이런 복합 시설을 짓겠다는 계획입니다. 이 시설에서 '늘봄 학교' (돌봄 교실 + 방과후 에듀 케어) 를 운영하면 출산율을 높이고, 지역 소멸을 막는 데도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안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주민들의 편의도 중요하지만 학교는 먼저 우리 아이들이 안심하고 다닐 공간이어야 하니까요. 초기부터 외부인을 분리시키는 설계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중, 삼중의 장치를 고민하고 만들어야 합니다. 부모들이 피땀 흘려 키운 아이를, 더 이상 학교라는 공간에서 이무기의 제물로 빼앗겨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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