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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모스크바 2박 3일 브로맨스…서로가 절실한 이유

시진핑-푸틴 정상회담…당초 관심은 '우크라 해법'이었지만 '푸틴 대선 승리 공개 지지' 화제

정영태 취재파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박 3일 러시아 국빈방문 일정을 마치고 3월 22일 저녁 베이징으로 돌아왔습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어떤 해법이 나올지가 최대 관심사였습니다. 중국이 스스로 중재자를 자처하면서 이른바 평화 계획, 휴전 방안을 내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이 같이 내놓은 공동성명에서는 별다른 진전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대신 시 주석의 '내년 러시아 대선 푸틴 승리' 공개 지지 발언이 더 이목을 끌었습니다.
 

러시아군 점령지 철수 없는 평화안…휴전은 난망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주년을 맞은 지난 2월 24일 중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위기의 정치적 해결에 관한 중국 입장>이란 이름의 제안을 내놨습니다. 중국은 '전면 휴전을 위한 직접 대화 조기 개시'와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 금지'를 이 제안의 핵심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서방이 주목한 부분은 달랐습니다. 중국의 제안에는 러시아군이 기존 점령지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권한 위임을 거치지 않은 모든 형태의 독자 제재에 반대한다'고 밝혀 미국과 유럽의 대러시아 석유 금수 조치를 비롯한 대러 제재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 '각측은 이성과 자제를 유지하며 불에 기름을 부어 갈등을 격화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이 역시 러시아 편들기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각측의 책임'…우크라 전쟁을 보는 중국의 시각


중국의 입장문을 보면 얼핏 중립적 입장에서 양측에 긴장해소를 촉구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와 유럽, 미국에도 갈등 격화의 책임을 돌렸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책임이 훨씬 크다는 서구의 시각과는 달리 '각측'의 책임, 즉 양측 모두의 책임론을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중국의 인식은 '각국의 합리적 안보 우려가 존중돼야 한다'는 입장문 내용과도 연결됩니다. 이 표현은 미국과 유럽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확대를 추구하면서 우크라이나까지 끌어들이려 하자 '합리적 안보 우려'를 갖게 된 러시아가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 코 앞까지 나토를 확대하려는 위협에 맞선 방어적 전쟁'이라는 러시아 중심의 전쟁관은 중국 전반에 퍼져 있는 시각이기도 합니다.  

정영태 취재파일

중러 정상회담에서도 반복된 나토 책임론


이 같은 나토 책임론은 중러 정상회담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됐습니다.

"어떤 국가나 집단이 군사적, 정치적, 기타 우위를 도모하기 위해 다른 나라의 합리적인 안보 이익을 해치는 것에 반대한다"

중러 양국 공동성명 내용입니다. 여기서 '어떤 국가나 집단'은 미국과 유럽을 의미하고 '다른 나라의 합리적 안보 이익을 해치는 것'은 나토의 동진 시도에 따른 러시아의 안보 훼손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중국 입장에서 보면 '타이완 문제에 대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개입하지 말라'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이번 중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푸틴에게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하고 전쟁을 그만두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시진핑 밖에 없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양국의 우크라이나 종전에 대한 해법과 시각에는 변화가 없다는 점만 확인됐습니다. 회담이 끝나고 '평화는 멀었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입니다.
 

시진핑의 화끈한 '푸틴 대선 승리 공개 지지' 의미는?


우크라이나 문제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이번 중러 정상회담의 시작과 함께 정작 많은 관심을 받은 건 다른 주제였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푸틴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공개 지지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시진핑 주석 : 내년에 러시아에서 대통령 선거가 열린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의 리더십 덕분에 러시아는 의미 있는 발전과 번영을 이뤘습니다. 러시아 인민들이 대통령님에게 반드시 견고한 지지를 계속 보낼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공식 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린 사전 환담에서 나온 발언인데 푸틴 대통령이 먼저 시 주석의 3연임을 축하했습니다.
 
푸틴 대통령 : 3연임을 축하할 기회를 갖게 돼 개인적으로 기쁩니다. 지난 10년간 시 주석의 노고가 높이 평가됐습니다. 중국이 지난 수년간 급속히 발전한 데 대해 세계가 주목하고 있고 심지어 러시아도 부러워합니다. 시 주석의 지도력 하에 중국이 더욱 발전할 것으로 믿습니다.


정영태 취재파일

시 주석의 '푸틴 대선 승리 확신' 발언은 3연임 축하에 대한 화답이자 내년 3월 선거를 앞둔 푸틴에 대한 덕담 성격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거에선 '특정 후보'일 뿐인 푸틴을 "러시아 국민들이 변함없이 지지할 것"이라고까지 한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 언론 비공개 시간에 이런 말을 주고받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굳이 전 세계에 동영상으로 공개되는 환담 모두 발언에서 공개 지지를 한 것을 보면, 사전에 준비된 발언이라고 해석하는 게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화끈한 지지 선언에 오히려 러시아 대통령실이 "푸틴 대통령의 내년 대선 출마는 아직 결정된 것이 아니"라면서 표정 관리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러시아 국민들이 내년 대선에서도 푸틴을 지지할 것'이란 요지의 이 발언은 자칫 외국 정상의 러시아 대통령 선거 개입으로 보일 위험도 있습니다. 선거가 끝난 뒤 선거 결과를 두고 축하를 했다면 모를까, 내년 3월 선거까지는 아직 1년이나 남았습니다. 확대 해석하자면 중국이 타국과의 외교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른바 '내정간섭'으로 비칠 여지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 주석이 이 같은 발언을 내놓은 건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와 속내가 있다는 분석입니다. 
 

장기집권 25년, 15년…차르와 황제의 '브로맨스'


지난 1995년 러시아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시작한 푸틴은 대통령 3연임 제한 때문에 잠깐 총리로 있은 적은 있지만 곧 다시 대통령으로 복귀했고 연임 제한도 철폐했습니다. 이미 25년 간 권좌를 유지했고 내년 3월 선거에서 다시 당선되면 30년 넘는 장기집권을 보장받게 됩니다. 2013년 3월 중국 국가 주석에 오른 시진핑 역시 3연임 제한 규정을 없앴고 15년 장기집권을 보장받은 상황입니다. 오는 2027년에는 4연임, 20년 집권에 도전할 거란 예상도 나옵니다. 장기집권 뿐 아니라 1인에게 집중된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은 현대판 '차르', '황제'라는 별명도 갖고 있습니다. 푸틴에게 호감도가 높은 편인 중국 사람들도 '푸틴 황제'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이런 공통점 만큼이나 두 사람의 친분도 두텁습니다. 서로 '친애하는 친구'라고 부르며 이번 정상회담까지 포함해 모두 41번이나 만났습니다. 시 주석이 첫 국가주석에 오른 2013년 첫 해외방문도 러시아였고 3연임에 성공한 올해도 역시 첫 해외순방 선택은 푸틴 대통령이었습니다.  특히 이번 방문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안팎에서 위기에 처한 푸틴 대통령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모스크바를 찾아 힘을 실어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는 '황제의 장엄함으로 가득 찬 의전'이란 평가가 나올 정도로 초특급 환대했습니다. 2박 3일 일정 중 첫째 날과 둘째 날 모두 두 정상이 식사를 같이 했는데 두 번 모두 푸틴 대통령이 문밖까지 같이 걸어 나가 차를 타는 시 주석을 배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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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에 가까운 '무제한 협력'…서로가 필요한 이유


푸틴 대통령이 지금 중국의 지지와 시 주석의 도움이 절실한 이유는 비교적 선명합니다. 한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이 1년을 넘어가고 있고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로 경제적 고통도 받고 있습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전쟁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습니다. 하지만 시 주석은 "푸틴의 지도하에 러시아는 발전과 번영을 이뤘다"면서 중국 공식 방문을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서방의 제재에 신경 쓰지 않으며 푸틴에게 힘을 실어준 겁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국의 공식입장은 '중립'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러시아를 돕고 있어 '푸틴의 생명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판로가 제한된 러시아산 석유를 중국이 대거 사들이면서 최대 규모 수입국이 됐습니다. 중국입장에선 싼 가격에 그것도 달러가 아닌 중국 위안화로 석유를 살 수 있는 실익을 챙겼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푸틴 대통령은 '중국에 석유와 액화천연가스 공급을 늘리겠다'고 밝혔고 '철수한 서방 기업들을 대체하는 중국 기업들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해 양국의 교역규모는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아디다스, 자라, 리바이스 같은 서방 브랜드 매장들이 모스크바의 쇼핑몰에서 철수했는데 그 빈자리를 샤오미, 리닝, 안타 같은 중국 대표 브랜드들이 속속 채우고 있는 게 상징적입니다.

정영태 취재파일

시진핑에게 푸틴이 필요한 전략적 이유는?


우크라이나 전쟁 후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고 즉각 철군을 요구하는 유엔 결의안이 압도적인 지지로 채택됐을 때 중국은 기권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 합병을 규탄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당사국이자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됐을 때도 중국은 기권했습니다. 지난달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됐을 때도 역시 중국은 기권했습니다.

러시아군의 철군에 따른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다시 말해 러시아의 패배는 중국이 원하지 않는 결과라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겁니다. 시 주석이 "러시아 인민들이 내년 대선에도 푸틴을 지지해 줄 것"이라고 말한 걸 보면 정확히는 '푸틴의 몰락, 푸틴의 패배'를 바라지 않는 걸지도 모릅니다. 혹여 우크라 전쟁 책임론 때문에 푸틴이 실각하고 러시아에 친서방 성향의 정권교체가 이뤄진다면 중국 외교로서는 반드시 막아야 하는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북쪽과 동쪽의 러시아땅과 4,300km가 넘는 긴 국경선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늘 사이가 좋기만 했던 것도 아닙니다.  지난 1960년대 중소 분쟁으로 불린 중국과 소련의 적대적 대치 상황은 무력충돌로까지 이어졌고 핵무기 사용도 가능한 전면전 직전까지도 갔습니다. 중국은 소련의 침공에 대비해 수도 베이징에 급하게 지하 요새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문화 대혁명 당시에는 소련 대사관이 이른바 수정주의자 소굴로 몰려 홍위병들에게 포위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정영태 취재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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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역사가 있는 러시아에서 푸틴이 권력을 잃고 난 뒤 그 빈자리에 미국, 유럽과 관계 개선에 나서는 지도자가 들어선다면 중국으로선 머리 위의 우군이 강력한 적군으로 돌변하는 셈이 됩니다. 푸틴의 러시아가 과거 소련처럼 중국을 무시할 정도로 힘이 강해서도 안 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모든 것을 잃고 몰락해도 안 되는 겁니다.  따라서 시 주석의 '내년 대선 푸틴 승리 확신' 발언은 푸틴 대통령에게 무기만큼이나 중요한 정치적 힘을 공개적으로 실어주는 동시에, 중국의 진심이 담긴 발언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정상회담 뒤 공동성명에서 양국의 긴밀한 파트너십이 '냉전 시대와 같은 군사·정치 동맹'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한미 동맹, 미일 동맹처럼 어느 한쪽이 침략을 받으면 반드시 군사적으로 도와줘야 하고 공동의 적에 맞서 군사적으로 협력해야 하는 관계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중러 정상회담에선 양국이 '무제한 협력 관계'를 천명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또 중러 양국 군대의 연합 훈련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양국의 설명처럼 현재의 중러 관계, 시진핑-푸틴 관계가 '냉전 시대의 동맹'은 아닐지 모르지만 신냉전 시대의 신동맹 관계 정도로는 불러도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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