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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몸값 높아진 시진핑…우크라 총성 멈추게 할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박 3일 일정으로 20일 러시아를 방문했습니다. 지난 10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직 3연임을 확정한 뒤 첫 외국 방문이자, 2019년 이후 4년 만의 러시아 방문입니다. 시진핑 주석이 러시아를 찾은 것은 이번이 9번째. 하지만 이번 방문은 여느 때와는 위상이 달라 보입니다. 중국과 러시아 언론은 물론, 서방의 언론까지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모스크바 공항 도착 사실을 앞다퉈 1보로 타전했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상세히 전하고 있습니다. 다름 아닌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시 주석의 첫 러시아 방문이기 때문입니다.
 

시진핑, 푸틴이 가장 필요로 할 때 방문


10년 전 바로 이맘때 시진핑 주석이 첫 국가주석으로 취임했을 때도 시 주석은 최초 순방국으로 러시아를 택했습니다. 그때는 시 주석의 필요 때문에 러시아를 갔습니다. 새로운 중국 지도자로 등극했음을 국제 무대에 알리고, 동시에 가장 큰 우방국인 러시아로부터 경제·안보 협력을 얻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입장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러시아가, 푸틴 대통령이 가장 필요로 할 때 시진핑 주석이 방문한 것입니다.

모스크바에 도착한 시진핑 주석

푸틴 대통령이 시 주석을 모스크바로 초청한 것은 지난해 12월 말이었습니다. 새해를 맞기 전 화상 회담을 통해 "내년 봄 모스크바를 방문하기를 기다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시 주석이 진짜 러시아를 갈 줄은 몰랐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이었고, 전황이 교착되면서 러시아가 갈수록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코로나19 확산과 봉쇄 반발 시위 등으로 중국 국내 상황도 복잡했습니다. 무엇보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시진핑 주석의 러시아 방문 사흘 전인 지난 17일 푸틴 대통령에게 체포 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전쟁 범죄 혐의였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황이었고, 시진핑 주석은 '전쟁 범죄자'를 만나는 데 대한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시 주석은 러시아 방문을 강행했습니다. 나아가 시 주석은 러시아 도착 직후 첫 일성으로 "러시아와 함께 세계 질서를 수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푸틴 대통령 입장에선 고마울 수밖에 없습니다. G2 국가 지도자가 자신을 만나러 오면서, 전쟁 범죄자라는 낙인은 한순간에 무색하게 됐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푸틴 대통령의 이미지 반전을 도운 셈입니다. 모스크바 공항에는 시 주석을 환영하는 군악대 연주가 울려 퍼졌고, 모스크바 거리에는 '시진핑 주석의 방문을 열렬히 환영한다'는 광고판이 곳곳에 설치됐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방문을 열렬히 환영한다'고 적힌 광고판

시진핑, 푸틴 공개 지지…'백지 수표' 받아오나


푸틴 대통령이 감사할 일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많은 사상자 발생, 강제 징집 등으로 국내에서도 입지가 크게 위축된 상태. 시진핑 주석은 20일 푸틴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내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러시아 인민이 반드시 당신에게 계속 견고한 지지를 보낼 것으로 굳게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단순한 덕담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시 주석의 이 발언은 중국 외교부와 관영 매체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시 주석이 푸틴 대통령의 재집권을 공개 지지한 셈입니다. 푸틴 대통령의 국내외 우려를 시진핑 주석이 일거에 덜어 준 것입니다.

시진핑 주석의 행보는 다분히 계산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격해지는 미·중 갈등 속에 중국은 러시아라는 '든든한' 우군을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대중국 압박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러시아를 이용해 미국의 눈과 발을 유럽으로 분산시킬 수 있습니다. 나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반발로 푸틴 정권이 무너지고 러시아에 친서방 정권이 들어선다면 중국 입장에선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입니다. 그럼에도 현상적으로는 푸틴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큰 '빚'을 지게 됐습니다. 존 커비 백악관 전략소통조정관이 "시진핑 주석은 푸틴 대통령의 생명줄"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의미로 받아들여 집니다. 이번 기회에 시진핑 주석은 푸틴 대통령한테서 '백지 수표'를 받으려 할 것입니다. 이 수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중국이 중재에 나설 때나 언젠가 중국이 타이완을 침공할 때, 혹은 언제든 반미 연대를 구축하고자 할 때 쓰일 수 있습니다.

회동 이후 시진핑 주석이 탄 차량에 손을 흔들고 있는 푸틴 대통령

시진핑, 우크라이나전 중재 성공할까


이번 러시아 방문으로 시진핑 주석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당장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이 제안한 우크라이나전 평화 중재안을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화답했습니다. 다른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 역시 "중국이 러시아에 영향력을 발휘해 전쟁을 끝내도록 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시 주석의 역할에 기대감을 내비쳤습니다. 미국 백악관도 "시 주석이 푸틴 대통령에게 군대를 철수하도록 압박하길 희망한다"는 입장을 냈습니다. 현 시점에서 푸틴 대통령을 움직일 수 있는 건 시 주석 뿐이라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회동 모습

시진핑 주석 입장에서도 중재에 성공한다면 국제사회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앞서 중국은 중동의 앙숙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국교 정상화를 중재했습니다. 미국이 못한 일을 중국이 했습니다. 이번 우크라이나전까지 중재한다면 미국을 제치고 국제 사회의 새로운 조정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러시아 방문에 앞서 "이번 방문은 우정·협력·평화의 여정"이라고 밝혀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시 주석은 러시아 방문 이후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과도 화상 회담을 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중재가 녹록지는 않을 전망입니다. 중국은 앞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직접 대화 재개, 휴전 모색, 미국과 유럽의 대러시아 제재 중단 등의 입장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당장 영토의 완전 회복을 전제하지 않는 한 우크라이나가 중재안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또 미국 등 서방도 중국의 중재에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현 상황에서 중국의 휴전 주장은 러시아의 불법 점령을 인정하는 의미라고 평가 절하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서방 모두 러시아군의 철수를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중재 의지가 얼마나 진정성이 있느냐도 관건입니다. 서방은 중국이 민간 기업을 통해 러시아에 무기를 팔려 한다며 중국의 중재 의지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중국에 득이 된다는 겁니다. 실제 러시아에서 철수한 서방 기업들의 자리를 중국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 장기화에 따른 세계 경제 침체에서 중국도 자유로울 순 없습니다. 이제 막 코로나 봉쇄 정책에서 벗어난 중국 입장에선 국내 경제를 회생시키는 게 중요한 목표 중 하나입니다. 이제 막 3연임 임기를 시작한 시진핑 주석 입장에선 새로운 세계 질서 주도자라는 이미지를 원할 수 있습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18일자 사설에서 '우크라이나 위기 해결의 열쇠는 중국이 아니라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손에 있다'고 적었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중국이 스스로 중재 성공의 기대치를 낮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진핑 주석은 러시아 방문에 앞서 러시아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복잡한 문제에 간단한 해법은 없다"고 썼고,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18일자 사설에서 "우크라이나 위기 해결의 열쇠는 중국이 아니라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손에 있다"고 적었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중재 성과를 거두지 못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중국이, 시진핑 주석이 겉으로는 '평화의 중재자'를 자처하면서 속으로는 무기 거래와 같은 실리를 챙기려 하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중국의 향후 행보를 지켜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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