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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미국 사회의 가장 위험한 신화에 종지부를 찍자

By 알리사 카트 (뉴욕타임스 칼럼)

뉴욕타임스
*알리사 카트는 곧 출간할 책 "Bootstrapped: Liberating Ourselves From the American Dream.(뭐든 스스로? 미국 사회의 신화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법)"을 썼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독립심을 대단한 미덕으로 칭송하는 사회를 마주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뭐든지 스스로 해내는 것'이 성숙함의 척도로 여겨진다. 나도 어린 딸이 읽을 책을 스스로 골랐을 때 딸을 칭찬했다. 딸은 구름사다리를 탈 때도 늘 어른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하길 원했고, 손에 물집이 잡힐 때까지 사다리를 타고 놀곤 했다. 이제 딸은 열두 살인데, 혼자 기차를 타고 등하교하거나 체육관에서 혼자 몇 시간이고 암벽 타기를 하는데, 부모로서 나는 그런 딸의 독립적인 면모를 응원하고 있다.

그렇다. 세상에는 칭송받아 마땅한 독립심이 있다. 그러나 바람직하지 않은 종류의 독립심도 있다. 일례로 몸이 아프거나 제대로 된 의료보험이 없을 때 '독립적인 사람'이 되도록 요구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근처에 국공립 어린이집이라고는 하나도 없어서 오로지 직계 가족만의 힘으로 자녀를 돌봐야 한다면 그것 역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나와 자녀가 대학 교육을 받고 등록금을 내는 것만으로 빚더미에 오르게 되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뭐든지 혼자 해내야 한다고 배우기 때문에, 종종 그 모든 일, 그리고 그 외 중요한 인생의 경험을 외로이 헤쳐 나가며 고군분투하게 된다. 그리고 어쩌다 도움을 받게 되면, 정부나 가족이나 이웃으로부터 받은 도움을 애써 축소해서 말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끼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란 미국인이다. 도움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의식은 미국 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미국 사회의 가장 해로운 신화는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는 식의 개인주의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도움을 구하는 행위조차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 하는 일로 여겨진다. 타인에게 심리적 지원을 구하는 일을 가장 꺼리는 집단인 나이 든 남성들 사이에서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태도는 말 그대로 치명적일 수 있다. 팬데믹으로 인해 우울증과 불안증이 사상 최대치로 높아진 상황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가까운 친구나 파트너에게 기대는 것을 '공동 의존'이라고 부른다. 많은 자기 개발서가 정신적인 웰빙을 달성하는 일이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가르친다. 정신적인 웰빙에는 불가피하게, 또 생물학적으로도 사회적 연결이 필수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제는 삶의 또 다른 면에 가치를 둘 때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의 힘과 기대는 방법 - 나는 이것을 '의존의 기술'이라고 부른다.

'의존의 기술'이란 우아하게 도움을 받아들이고, 타인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 동료, 나아가 국가에 잘 기대는 일에도 품위와 기술이 필요하다. 협력에도 요령이 필요하다. 내게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복지 제도의 혜택을 누리는 일에는 행정적인 부담이 따르기 마련이다. 복지 혜택을 받는 데도 노력과 지식,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모든 인간은 태어났을 때부터 서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의존을 병처럼 취급하는 사회에서 취약성을 내보이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의존의 기술을 인정한다는 것은 또한, 대부분 미국인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똑바로 인식하는 일이다. 미국 성인의 약 25%는 어떤 형태로건 장애가 있으며, 고령자를 위한 의료보험 제도인 메디케어(Medicare)에 가입된 사람은 5,600만 명에 달한다. 다시 말해, 수천만 명의 미국인들이 이미 어떤 방식의 지원에 기대고 있다는 이야기다.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지원을 받는 것, 심지어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실업 급여나 학자금 지원 양식을 채워내는 일까지 모두 세상과 관계를 맺어가는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다른 이와 협력하는 데는 실제로 인내심과 겸허함, 조직력, 사회생활의 요령이 필요하다. (실질적인 기술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학자 윌리엄 헌팅 호웰은 저서 '자립에 반대한다(Against Self-Reliance)'에서 '의존의 기술'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초기 미국 여성의 자수 같은 공예 기술이 파생적이고 집단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나라에서 주는 몇 장 안 되는 식료품 할인권으로 5인 가족이 먹고살기 위해서는 과연 기술과 요령이 필요하다. 교통 통제를 위해 만들어놓은 건널목이라 하더라도 휠체어를 타고 건널목을 건너는 일,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탁아소를 찾는 일, 마지못해서라도 병가를 쓰게 해주는 직장 상사를 찾아내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경제적 불평등의 주요 원인이 개인의 선택이라고 주장하는 미국인들(2020년 퓨 리서치센터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공화당원의 60%가 저 주장에 동의했다)은 스스로가 독립적인 인간이며 자기 인생을 능숙하게 꾸려나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마저도 의존에서 벗어날 수 없다. 특권층이라 해도 응당 감세 조치나 인맥, 도로, 통신 인프라, 의료보험은 물론이고, 돈을 많이 버는 고용주라면 바로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들에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존의 기술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타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하고, 동시에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이들이 공개적으로 선전하는 '자수성가'의 신화가 거짓임을 드러내는 일이다.

나는 의존의 기술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위한 건강한 의존과 상호의존의 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을 여럿 인터뷰했다. 그중에는 자신의 지역구인 브루클린에서 상호 부조 단체를 만든 뉴욕시 정치인, 회복력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타인을 챙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믿음으로 어린 시절의 부정적인 경험으로 괴로워하는 성인들을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를 만든 상담 전문가도 있었다.

오레곤주 포틀랜드에서 만난 겸임 교수이자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내가 그를 인터뷰했을 때 그의 연봉은 3만 달러 정도였다. 그는 매우 적은 수입으로 아이들을 부양하고 여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정신 건강 상호 부조 단체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 일이 바쁘고 불안정한 일상에서 한숨 돌릴 여유를 찾아준다고 했다. 모임에는 그가 경제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 매일 같이 일터에서 어떤 식의 평가절하를 경험하고 있는지를 잘 이해하는 사회복지학과의 교수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는 모임에서 '늘 고용이 불안한 상황 때문에 얼마나 취약한 상태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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