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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15년 전과 다르다"는 미 금융당국…믿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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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을 시작으로 미국에서 일주일 새 은행 3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미 금융당국의 신속한 개입으로 다행히 아직 추가 도산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위기설이 돌았던 퍼스트리퍼블릭은행도 주가 폭락을 겪긴 했지만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는 피해 갔습니다. 현지시간 14일 이 은행을 포함해 상당수 지역 은행들도 주가가 반등세로 돌아섰다는 소식입니다. 당국의 조치가 효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지만 지역 은행주를 중심으로 불안감은 여전합니다.
 

"15년 전과는 다르다" 미 금융당국 자신감

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하자 재닛 옐런 미 재무 장관은 연방정부 차원의 구제금융에 나서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대신 상황이 15년 전과는 다르다면서 "미국의 은행 시스템은 정말로 안전하고 자본이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미국인들은 우리의 은행 시스템의 안전과 건전성에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서실리아 라우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도 "우리 은행 시스템은 10여 년 전과 근본적으로 다른 상태"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불안감을 차단하기 위한 대국민 메시지인 동시에, 2008년 금융 위기 때 은행 시스템 안전성 강화를 위해 투자했던 미 금융 당국의 자신감 표현이기도 합니다. 당시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은행에 대한 규제와 자본 요건을 대폭 강화하고, 매년 은행들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하는 등 가상의 위기 시나리오에 대비해왔습니다.

하지만 미 금융 당국도 결코 자신만만한 건 아닙니다.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예금 전액 보호 조치'를, 그것도 일요일 저녁에 급히 발표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당국 역시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은행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가 어떻게 나왔었기에 불안감 속에서도 미 금융 당국이 2008년 같은 금융 위기 재연은 없다고 자신하고 있는 걸까요?
2022 미 연준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미, 은행 스트레스 테스트란?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지난해 6월 23일 도드-프랭크법에 따라 대형은행들을 대상으로 매년 실시하는 스트레스 테스트 (DFAST: Dodd-Frank Act Stress Tests)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총자산 2,500억 달러 이상, 총자산 1,000억 달러 이상인 은행 가운데 2021년 스트레스 테스트에 참가하지 않은 은행 등 모두 34개 대형 은행이 대상이었습니다.

연준은 은행들의 안정성을 평가하기 위해 평시와 위기로 나눠 2가지 시나리오를 설정했습니다. 향후 13분기 동안 경제 확장이 지속되는 기준 시나리오(Baseline)와 상업용 부동산 및 기업부채 시장에서의 높은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심각한 세계 경기 침체 시나리오(Severely Adverse)입니다. 테스트 결과, 2022년 스트레스 테스트에 참여한 34개 모든 대형은행이 매우 불리한(severly adverse) 시나리오 하에서도 계속 영업을 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테스트 결과처럼 미 금융 시스템의 근간인 대형 은행들은 안전한 걸까요? 적어도 제가 이번 사태를 취재하면서 통화한 한 전문가는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라고 말했습니다. 스트레스 테스트가 금융 당국의 실사가 아닌 해당 은행의 자체 제출 자료를 근거로 이뤄지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 전문가는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 역시 당국이 실사를 해봐야 정확한 피해 규모가 나올 거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금융당국이라고 해도 해당 은행에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직접 실사에 나서는 건 어렵다고 전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안심하라'는 바이든 대통령과 미 금융 당국의 잇단 메시지에도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현지시간 14일 미국의 전체 은행 시스템에 대한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에는 다를까…변수는 '불안감'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느냐 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도 처음 시작부터 요란했던 건 아닙니다.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연준이 금리를 올린 게 출발점이었습니다. 금리가 오르자 주택시장에 돈줄이 막히면서 집값이 하락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거나 돈 빌려 집 산 사람들은 금리 인상에 이자 부담이 커졌고 집값 하락까지 겹치면서 집을 팔아 빚을 값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결국 개인 파산이 속출했고 금융기관 연쇄 도산으로 이어졌습니다.

지금 상황은 어떨까요? 지난 1년간 지속된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지역 은행들의 '삐걱거림'이 시작됐지만 현 단계에서 금리 인상을 멈추기 어렵습니다. 40년 만에 최악의 물가 상승을 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금리 인상 여파로 채권 등 가격이 하락하면서 미국 은행들이 입은 미실현 손실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약 6천200억 달러, 우리 돈 806조 원에 이르는 걸로 추산됐습니다. 하지만 이는 연방예금보험공사의 추정치일 뿐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해당 금융기관을 실사해보지 않고는 정확히 알 수도 없습니다.

제가 통화한 전문가가 가장 강조한 변수는 '불안감'이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의 금융 안정성이 강화된 건 확실해 보입니다. 따라서 지금처럼 흘러간다면 통제 가능할 걸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다만, 사람의 심리만큼 다루기 어려운 게 없습니다. 합리적인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언제, 어떤 계기로 갑자기 불안감이 증폭될 경우 불똥이 대형은행들로 튀면서 주가 폭락과 대규모 예금 인출 같은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대비해서 나쁠 리 없습니다. 우리 금융당국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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