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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Q&A] "한국군 학살 없었다"는 국방부…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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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현 퐁니 마을이란 곳에서 민간인 일흔네 명이 숨졌습니다. 대부분 노인과 여성, 아이들이었습니다. 약 한 달 전 법원은 이 사건 가해자가 한국군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우리 정부에 배상 책임을 지웠지만, 지난주 목요일 정부가 이 판결,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했습니다.

퐁니 마을에서 학살이 벌어진 그날, 눈앞에서 가족을 잃고 자신도 복부에 총상을 입은 응우옌 씨는 SBS와 만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응우옌 티 탄 / 퐁니 마을 생존자
"국방부는 학살을 부인하면 안 됩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 마을에 와 줬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한국에 가서 아무 말이나 하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국방부는 민간인을 학살한 사실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실제 재판에선 국군으로 위장한 베트콩의 소행일 가능성부터 교전 중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불가피론, 불법이었다 하더라도 수십 년이 지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등의 여러 논리를 '동시에' 폈습니다.

우선, 응우옌 씨를 비롯한 생존자와 남베트남 민병대원 등 여러 목격자들은 그날 마을 주민을 향해 총을 쏜 이들이 한국군이었다고 입을 모아 증언했고요. 당시 촬영된 사진과 정황상 일치하는 미군 등의 진술도 있습니다. 근처에 있던 초소에서 퐁니 마을이 공격당하는 걸 지켜봤던 한 미군 중위는 대한민국군이 그 지역에서 작전 중이라는 이유로 마을 진입도 거절당했습니다. 피해자들이 베트콩의 동조 세력이고 교전 중에 이들이 숨진 거라면 그건 '전과'여서 내용을 충실히 기록했을 텐데, 파월한국군전사에는 이와 관련한 어떠한 언급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피해자 가족 중에는 남베트남의 군인이나 민병대도 있었습니다. 전쟁 중이라 하더라도, 적대행위를 한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살상하는 건 당시 잣대로도 엄연히 불법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무기를 들지 않은 노약자를 사살했다는 우리 참전군인들의 증언도 나왔습니다. 퐁니 사건 이듬해 지금의 국정원, 중앙정보부가 진상조사를 벌였던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조사를 받은 소대장들의 이름 등이 적힌 목록이 소송 끝에 처음 공개된 겁니다. 정부는 재판 과정에서 이 보고서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답변했습니다. 베트남 안에는 한국 군대에 의해 가족을 잃었다고 말하는 또 다른 탄, 또 다른 퐁니 마을이 무수히 많지만, 진상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승전국이기 때문에 우리의 사과를 거부한다, 진상 규명에는 우리가 아니라 베트남이 더 소극적이란 주장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와 긴밀한 경제 협력 관계인 데다, 오랜 내전을 거친 베트남 정부 입장에서 과거사 문제는 열고 싶지 않은 판도라의 상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항소 결정 직후 베트남 외교부는 '매우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는데, 적어도 사실 관계가 어느 정도 확인된 영역에서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듯 보입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생존자와 함께 이 정도의 사실 관계라도 드러낸 건, 한국의 언론과 시민단체, 법조계였다는 점입니다. 진상 규명을 위한 양국 간 공동 조사가 당장 어렵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거죠. 퐁니 마을과 같은 피해를 봤다며 진실 규명을 신청한 하미 학살 사건 피해자들에게, 직권으로 조사가 가능한 진실화해위원회가 응답부터 하는 게 가장 우선일 겁니다. 무엇보다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할 대상은 베트남이란 국가가 아니라 그 나라 안에 살고 있는 개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취재 : 김상민 / 영상취재 : 이승환 / 구성 : 전형우 / 편집 : 김복형 / 제작 : D콘텐츠기획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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